과거 속박의 굴레였던 코르셋이 현재 젠지를 대표하는 가장 쿨한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그린 영화나 책을 보면 왕비가 많은 하인과 의기투합해 코르셋을 조이고 또 조였다는 일화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무려 17인치까지. 벽을 잡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조이고 또 조이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다. 그 당시 사회가 합의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가는 허리를 중심으로 풍성한 가슴과 힙 라인을 지닌 모래시계 모양의 몸매였기에. 그 시대를 산 많은 여인이 코르셋이나 뷔스티에(브라와 코르셋을 연결한 란제리)에 의지해 극단적인 몸을 만드는 데 사투를 벌였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여성을 위태롭게 한 코르셋과 뷔스티에가 젠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활약 중이다. 그들은 코르셋이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거나 과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치라고 여긴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을 봐도 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많은 디자이너가 그들의 반응에 화답이라도 하듯 앞다퉈 코르셋과 뷔스티에를 캣워크에 올렸다.

가장 먼저 관능적 여성의 에너지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인 베르사체부터 이야기해보자.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여성의 관능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코르셋과 뷔스티에를 택했다. 선택은 쉬웠지만 디자인의 폭은 깊고도 넓다. 본래의 기능처럼 몸을 힘주어 조이지는 않되, 가슴부터 허리까지 사선의 뼈대를 넣어 실루엣을 만들거나 허리 라인을 사선으로 컷아웃해 잘록한 허리를 부각하는 식이다. 실키한 칵테일드레스와 저지 소재 이브닝드레스, 캐주얼한 데님 소재와 하운즈투스 체크 패턴까지 ‘관능은 곧 코르셋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디올과 발맹은 한발 더 나아가 가슴 부분의 패널을 단단하게 만드는 식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언급하며 모두의 연대를 독려했다. 그래서인지 금속 패널을 장식한 발맹의 코르셋은 미래에서 온 여전사의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그 여전사가 우리를 희망의 세계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디올 역시 포수의 보호 장비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소재로 뷔스티에를 디자인했는데, 투박한 그것을 시스루 소재 드레스와 믹스매치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완성했다. 펜디와 캐롤리나 헤레라처럼 지적인 분위기의 코르셋도 환영을 받는다. 1980년대 테일러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킴 존스는 그때 그 시절 ‘핫 걸’이 입던 보디콘셔스를 우아한 셔츠, 무릎까지 오는 미디스커트와 매치했다. 포켓에 연결한 가방 모티프 메탈릭 참이 완벽한 스커트 룩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위트가 된다. 캐롤리나 헤레라는 여성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는 축하의 의미가 담긴 드레스를 대거 선보였다. 많은 드레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팬츠 슈트 하나. 가슴을 강조한 디자인의 코르셋과 볼드한 네크리스에 더한 블랙 팬츠 슈트는 어떤 드레스보다 빛나며 지적이고 관능적인 여성의 모습을 어필했다.

그 밖에 버버리, 구찌, GCDS, 맥스웰, 포츠1961, 프로엔자 스쿨러, 리차드 퀸 등 수없이 많은 브랜드에서 허리 라인을 강조한 코르셋과 뷔스티에 룩을 만날 수 있다. 노출에 관대하고 관성에 젖지 않는 젠지에게 코르셋 룩은 여성의 우아함과 권력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편견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 꼭 탈브라와 겨드랑이 털 노출로 쟁취되는 것은 아니므로. 과거 자신을 속박하는 장치로 꼭꼭 숨기고 조였던 코르셋이 밖으로 나와 장식을 더하고 그것 자체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바. 팬츠에 입든 스커트에 매치하든 드레스에 레이어드하든 컬렉션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아한 포인트만 잃지 않으면 누구나 주체적 여성으로서 쿨한 애티튜드를 완성할 수 있다. 아무렴, 가끔은 아니예 레코즈(Aniye Records)처럼 약간의 도발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