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다섯 명의 청년이 보내온 안부와 당부. 

1 붉은 지붕과 여름 프라하. 2 어떤 날 점심 메뉴. 3 출근길, 사무실 앞에서. 4 퇴근 후 금요일 밤. 5 주말의 파머스 마켓.

이린 | PRAHA

하는 일 아마존에서 일한다. 아마존 광고에서 발행하고 현지화되는 한국어 콘텐츠를 관리한다.
프라하에서의 시간 2020년 3월에 도착, 같은 해 7월에 입사했다.
프라하를 선택한 이유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돈이 모이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넓은 세상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턱 끝에 바짝 들이미는 획일적 잣대 같은 것들. 그래서 한국을 떠나게 된 거다.
결심의 순간 막상 떠나려고 보니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이 낯선 곳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삶보다 낫기는 할까? 고민했지만, 고민할 시간에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잘 왔다 싶은 순간 프라하에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유럽 지사가 있다. 유럽 내에서 실업률이 낮은 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연간 25일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가 내게 종종 말한다. “너무 오래 일하지 마.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일이 네 인생을 지배하게 할 수는 없어”.
한국이 그리운 순간 한국이 그립지는 않다. 다만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 나는 여기에 떨어져 있는데, 그들은 같은 도시에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안도감과 그리운 마음이 동시에 커진다.
떠나고 싶은 이에게 차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는 유연함과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겉치레식 예의와 배려는 이곳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좋겠다. 

 

1 출근길 패딩턴 베이슨 운하. 2 매일 이용하는 집 앞 지하철역. 3 카페 마르케시 182에서. 4 쇼핑하기 좋은 마운트 스트리트.
5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헤스턴 블루멘탈에서. 6 일본과 노르딕 문화가 어우러진 판테크 니콘.

임혜연 |  LONDON

하는 일 전략 컨설팅 회사의 경영 컨설턴트. 직종이나 규모와 상관없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답을 도출한다. 나는 주로 테크, 미디어, 투자회사와 일했고 지금은 리테일 회사와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런던에서의 시간 직장인데 입사한 지 1년 2개월째다.
런던을 선택한 이유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과 영국, 다시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접하며 시야를 넓히고 싶어 런던에 자리 잡았다.
결심의 순간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생활해서인지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는 게 익숙한 편이다. 지금은 런던에 있지만, 한국에 가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가면 그만이다.
잘 왔다 싶은 순간 컨설팅 업무의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직종과 업계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유의 유연한 업무 환경이 마음에 든다. 할 일만 잘하면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시간과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 유럽 어디든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매년 두 달 반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뉴욕에서 일하는 친구에 비하면 급여가 적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한국이 그리운 순간 인스타그램을 볼 때. 봄에 피는 벚꽃과 더운 여름날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맥주 한잔하는 친구들의 피드를 보면, 나도 저기에 있고 싶어진다.
떠나고 싶은 이에게 맹목적이거나 무모한 도전은 반대다. 철저히 준비하기를 권한다. 단순히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새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싶은 이유를 깊이 고민한 다음 도전하면 좋겠다. 

 

1 코펜하겐의 흔한 집. 2 퇴근 후 친구들과 홈 파티. 3 북유럽풍으로 꾸민 내 집 창가. 4 코펜하겐 지하철 안에서.

차상민 | COPENHAGEN 

하는 일 디자인 에이전시 헬로 먼데이(Hello Monday)의 디자이너. 주로 웹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업무를 맡고 있다.
코펜하겐에서의 시간 2년 6개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곧장 코펜하겐으로 날아왔다. 인턴을 거쳐 현재는 어엿한 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한다.
코펜하겐을 선택한 이유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영어가 통한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평소 관심 있던 지금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 덴마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사랑에 빠졌다.
결심의 순간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낯선 나라에서 인턴부터 시작하는 갈림길에 선 상태였다. 안전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미래보다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왠지 신나는 미래를 선택하기로 했다. 당연히 후회는 없음.
잘 왔다 싶은 순간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늘 좁은 원룸 생활만 했다. 북유럽풍 가구로 예쁘게 꾸민 이곳의 넉넉하고 예쁜 집을 바라볼 때마다 잘 왔구나 싶다. 행복의 조건으로 안정과 평안함을 꼽는 사람이라면 이만한 데가 없다. 그런 목적으로 설계한 도시가 아닐까 싶은 정도다. 야근? 당연히 없음. 저녁이 넘치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지루하고 심심할 때도 있다.
한국이 그리운 순간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면 어떡하지? 진짜 그리운 건 한국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떠나고 싶은 이에게 잃을 게 없다는 당찬 마음이 필요하다. 관심 가는 회사가 있다면 당장 메일을 보내 구애하기를 권한다. 일은 한국인이 가장 잘한다. 객관적으로 그렇다. 디자이너라면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지낼 만하다. 디자인이 곧 내 언어니까. 

 

1 지난봄 출근길 벚꽃. 2 흔한 사무실 풍경. 3 여름날 어느 신사에서. 4 길에서 만난 귀여운 우체통.

김기연 | TOKYO 

하는 일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 네트워크 등 ICT 솔루션 및 국제 통신 관련 업체인 NTT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하고 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시작해 지금은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며 고객의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도쿄에서의 시간 2016년 4월부터, 올해로 7년 차.
도쿄를 선택한 이유자 살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교환 학생 때 잠시 혼자만의 생활을 맛보고 나니 도저히 가족이랑 살고 싶지 않았다. 오랜 고민과 작전 끝에 해외 취업만큼 확실한 명분이 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실행에 옮겼다.
결심의 순간 고민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마음부터 앞서는 바람에 비자가 나오기도 전에 출국하겠다며 공항에 달려갈 뻔했을 정도다.
잘 왔다 싶은 순간 사무실에 파티션이 없어 놀랐다. 일본이라는 나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좀 지나니까 직원들과 대화하기도 편하고 익숙해지더라. 개인용 물건을 회사에 두지 않는 분위기인데, 그런 문화 때문에 개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쓸데없는 걸 묻거나 말하지 않으니 한국과 비교했을 때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실히 덜한 편이다.
한국이 그리운 순간 역시 가장 그리운 건 사람이다.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 친구, 연인. 이제 내 집은 한국이 아닌 도쿄다. 한국에 살 때는 그렇게 지긋지긋했는데, 이제는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도시가 된 셈이다. 한겨울 붕어빵과 호떡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진다.
떠나고 싶은 이에게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없고, 짧은 여행지가 아닌 이상 어디든 ‘헬’인 법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그 순간 충실한 선택을 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1 쨍한 LA 하늘에 천둥번개가 친 날. 2 주말에 다녀온 멕시코시티의 도서관에서. 3 금요일 특식, 타코.
4 인적이 드문 길의 횡단보도.

손소희 | LA 

하는 일 패션 관련 업체 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한다. 고객에게 나가는 정기적인 뉴스레터, 웹사이트, 룩북, 마케팅 영상 등 대부분의 시각 이미지를 만든다.
LA에서의 시간 입사한 지 이제 100일을 넘겼다.
LA를 선택한 이유 “넌 한국보다 미국이 더 잘 맞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이길래?’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결심의 순간 막상 회사에 합격하고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 <인터스텔라>의 장면처럼 ‘Stay’를 외치고는 했다. 힘들면 바로 다시 돌아오자. 그런 마음을 먹고 비행기를 탄 기억이 선명하다.
잘 왔다 싶은 순간 캘리포니아의 쨍한 날씨와 해변, 멋지게 태닝한 사람들을 마주칠 때. 노숙자도 많고 물가도 비싼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도시지만, 어쨌든 나는 이 도시가 쿨하고 멋있어 보인다. 이 멋진 낯선 땅에서 단단하게 잘 살고 있다.
한국이 그리운 순간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립지는 않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맛있는 평양냉면 한 그릇이 그리울 따름.
떠나고 싶은 이에게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인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해결하고 이겨낼 줄 알아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다. 당장 용기를 내서 떠나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도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