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거나 비가 오거나 한다. 그런 여름날엔 소설을 읽는다.

1 오향거리

1953년 중국 후난성 출신 작가 찬쉐는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된다. <오향거리>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오향거리에 자유분방하면서 비밀스러운 X여사가 이사를 온다. 어떤 사람일까? 동네 주민은 저마다 호기심을 안고 추측과 상상을 이어간다. 특히 나이가 몇 살이냐에 대한 탐구는 집요할 정도다. 오향거리의 인기인 Q선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타오른다. X부인, 그녀는 과연 누군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경쾌하다. 찬쉐 지음, 문학동네

2 멕시칸 고딕

고딕 소설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파리한 얼굴의 백인 여자다. 그의 이름은 레베카일 수도 있고, 제인일 수도 있지만 고딕 소설은 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오래된 저택, 그리고 비밀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 요소를 충실하게 비틀고, 라틴아메리카의 강렬한 에너지를 부여한 소설이 바로 <멕시칸 고딕>이다. 멕시코계 캐나다인인 작가는 장르소설 전문 독립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기도 하다. 잘 아는 장르에 더해진 식민주의,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 시선. 결과적으로 타코처럼 강렬하고 끌리는 맛이 완성됐다.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황금가지

 

3 파친코

애플TV+에서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한 이후 모두가 원작 소설을 구해 읽고자 했지만, 출간 계약 만료로 이미 귀해진 몸이었다. 그 <파친코>가 새로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과 표지를 입고 다시 독자를 만난다. 재미교포 1.5세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2017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33개국에 출간되었다. 드라마는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고, 시즌4까지 이어갈 계획이라고. 이민진 지음, 인플루엔셜

4 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는 유대계 작가로 디아스포라의 상실감을 그려왔다. 남편과의 이혼은 한동안 문학계의 이야깃거리고, 사람들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속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새로운 작품을 계속 썼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20년간 틈틈이 써온 단편인데도, 한 이야기처럼 연결된다. 사랑과 관계, 젠더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다. 니콜 크라우스 지음, 문학동네

 

5 난 사랑이란 걸 믿어

K-팝, K-드라마를 주제로 한 소설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책은 한국 드라마가 등장하는 하이틴 로맨스 소설. 전교 학생회장이며 예비 스탠퍼드대 의대생인 데시 리는 요즘 말로 ‘연애 고자’다. 전학생이 맘을 뒤흔들자 데시는 한국 드라마의 사랑 공식을 적용해보려고 한다. 그녀는 과연 전학생, 코드명 ‘원빈’과 사귈 수 있을까?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머린 구 지음, 문학동네

6 아노말리

2020년 공쿠르상 수상작. ‘아노말리’는 ‘이상’ ‘변칙’이라는 뜻으로, 주로 기상학이나 데이터 과학에서 ‘이상 현상’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파리-뉴욕 간 여객기가 석 달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똑같은 사람들을 싣고, 동일 지점에서 난기류를 겪는 일이라면, 누구나 이상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300여 명이 3개월의 시간 차를 두고 자신의 분신을 대면하게 되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미 정부가 나선다. <아노말리>는 프랑스에서 역대 공쿠르상 수상작 중 최다 판매 부수를 기록, 그만큼 평단의 마음도, 대중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결말에 놀라지 말 것.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민음사

 

7 새의 선물

은희경은 알지만. <새의 선물>은 모르는 시대. 아닌 게 아니라, 1995년생이 어엿한 사회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새의 선물>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게 같은 해다. 그렇기에 재출간은 더 의미 있다. 동시대의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은희경의 시작은 바로 <새의 선물>이고, 이 책과 함께 또 소설의 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독자와 현재의 독자가 이 책으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엄마가 읽었을지 모르는 이 책을 Z세대 독자에게 수다스럽게 권하고 싶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고. 어서 ‘나’와 이모와 할머니가 있던 1960년대의 그곳으로 가자고.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