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동료와 함께 살 수 있을까? 다른 듯 닮은 두 명의 동거동락의 법칙.

‘찐친’의 법칙이 그러하듯 Y와 내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얼루어 코리아>에서 만난 동료의 인연을 시작으로 매일 점심을 먹다 보니 매달 술을 마시게 됐고, 술에 취해 하루 이틀 신세를 지던 그의 집에 빈방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내가 들어가게 됐다. 허겁지겁 새 룸메이트를 구하게 된 Y와 얼렁뚱땅 첫 독립을 시작한 나를 두고 우리는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연신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Y는 살뜰한 외향성 인간이고, 나는 마이웨이 내향성 인간이니 둘이 한집에 사는 그림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던 거다. “진짜 별 걸로 다 싸운다니까. 샴푸를 많이 쓰네 마네 같은 걸로 안 싸울 것 같지? 다들 함께 살기 전에는 그렇게 말해.” 여차하면 좋은 친구를 잃기 딱 좋다며 한 마디씩 거드는데, 오히려 우리가 어떤 일로 싸울지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리는 사소한 다툼 없이 너무나 평안한 동거를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우린 잘 살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왜 같이 밥을 안 먹어?” 누가 밥의 민족 아니랄까 봐 많이도 물어본다. 다른 사람 눈에는 둘 다 집에 있을 때도 밥을 따로 먹는 게 영 어색한가 보다. 물론 같이 먹기도 하지만 우리의 디폴트는 1인분의 삶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든 걸 따로, 알아서 한다. 따로 먹고, 따로 청소하고, 따로 빨래하고, 따로 장 보고, 따로 쉰다. 사용하는 물건도 나누어져 있다. 건조대부터 샴푸와 치약, 핸드 워시, 하물며 손톱깎이까지 자기 것을 쓴다. 서로의 방은 잘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갈 일도 없다. 마감 주간에는 서로 일주일 동안 얼굴 보지 못할 때도 많고, 실제로 코로나19까지 두어 달 텀을 두고 따로따로 걸렸다.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리감이 우리에겐 처음부터 당연했는데, 무난한 동거 생활의 8할이 이 거리 덕분임을 살수록 실감하고 있다.
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다고 했을 때 모두가 생활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정작 우리는 규칙의 필요성을 한 번도 못 느꼈다. 본인이 먹은 건 설거지하고, 공용 공간을 사용하면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떨어졌으면 사고, 서로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지 않나? 서로 서운할 일 없이 돌아가며 밥값을 내는 모임처럼, 우리의 생활 전반은 굳이 말로 꺼낼 필요 없이 물 흐르듯 균형을 지키고 있다. 각자 만나는 데이트 상대나 애인을 집에 초대하는 것도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이젠 익숙하다. 둘 다 집에 있는데 도어록 소리가 난다면 으레 누군가의 애인이 왔겠거니 생각한다. 우리가 그나마 우려했던 일이라고 한다면, 걸쇠가 고장 난 화장실 문 때문에 뜻하지 않게 친구 애인의 알몸을 보게 되는 것 정도? 그때는 쿨하고 빠르게 사과하기로 했다. 우리 집의 유일한 규칙이다.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다른 사람과 사는 게 이토록 순탄하다는 게 신기해서 주기적으로 불안하다. 혹시 Y가 많은 부분을 참고 사는 게 아닐까? 속으로는 청소를 미루는 나를 경멸하고 잘 먹지도 않으면서 편의점 신상을 쟁이는 나를 피곤해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내 애인이 밤늦게 문을 너무 쾅쾅 닫아 거슬릴지도 모른다. 이 집의 계약 만료만을 기다리며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고 인사하면 어쩌지? “그랬으면 말하지 않았을까요? 난 그냥 선배가 뭘 하든 관심이 없어.” 불만 사항을 물을 때마다 Y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그럼에도 내가 자꾸 묻게 되는 이유가 있다. 둘이 함께 살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편집부 선배들은 내가 손절을 당하거나 최소한 Y가 내 머리채를 잡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사무실 책상은 너무나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먼지 하나 없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정돈된 Y의 책상과 온갖 물건이 잔뜩 쌓여 있다 못해 여기저기 틀어박혀 있기까지 한 나의 어지러운 책상. 개미라도 나오거나, 어쩌다 파리 한 마리가 들어오면 나는 제 발을 저린다. 괜히 다 청소를 안 한 나 때문인 것 같다고 하면 Y는 그저 어이없어 한다.
“더러운 것과 너저분한 건 다르잖아요. 정지원은 더럽지는 않아. 그냥 정리를 못하는 거야. 그리고 본인 방만 너저분하지 공용 공간을 그렇게 쓰지는 않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분명 집의 컨디션이 깔끔하게 유지되는 것은 모두 Y의 공이다. 그는 샤워를 하다가도 갑자기 세면대와 변기를 닦는가 하면, 마감 중 내가 미처 걷지 못한 빨래까지 쓱싹 개어놓고 쉬는 날이면 그렇게 넓지도 않은 집 안 곳곳을 부산히 돌아다닌다. “다년간의 코리빙을 경험한 바, 거슬리는 게 있으면 그냥 내가 치우는 게 편해요. 그리고 어차피 내가 더 잘 치우지 않나?”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져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을 뿐이다. 오히려 Y는 Y대로 자신이 집에서 쉼없이 움직이고 소란스럽게 뭔가를 하는 게 방해되진 않는지 걱정했다고. “내가 볼 때는 거의 천생연분 아닌가요? 서로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달라서 샤워 시간이 겹치지도 않고. 전 우당탕탕 인간이지만 선배는 잠귀가 어둡고, 반대로 나는 잠귀가 밝지만 선배는 조용조용 인간이라 딱인 것 같아. 가끔 집에 있는데도 없는 줄 알고 언제 오냐고 물어보잖아. 난 지금 너무 좋은데?” Y의 말을 이제는 의심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태원 프리덤 

모르는 사람이 아닌, 친구와 함께 사는 맛은 역시 함께 노는 맛이 최고다. 아직 체력이 남은 20대에 친구와 함께 한남동에 살면서 부지런히 놀지 않는다면 유죄가 아닐까? 마침 엔데믹의 시대로 이태원은 다시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돌아오는 금요일 밤이면 우린 지도에도 없는 곳을 찾아 나선다.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간판부터 수상하다면 더 좋다. 뭐로 만든지도 모를 술을 연달아 마시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오랜 친구처럼 웃고 떠들다 보면 금세 탄수화물과 당이 떨어진다. 새벽 2시, 신김치와 콩나물이 팍팍 들어간 김치전골에 라면 사리까지 추가해 먹는 것이 우리의 코스다. 그냥 먹으면 섭섭하니 살짝 간하듯 소주를 따르던 어느 날, Y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술이 깬 다음 날에도 어렴풋이 생각났다.
“전 이것도 하나의 사랑인 것 같아. 엄청 잔잔하고 느슨할 뿐이지. 우리가 서로에게 따뜻하게 무관심해서 다행이에요.” 속이 뜨끈하고 든든했던 건 김치전골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택시를 잡느라 날이 샐 때까지 역 앞에서 손 흔드는 사람들을 의기양양하게 지나친다. 하하. 우리는 걸어갈 수 있다고! 불이 다 꺼진 앤트러사이트를 지나며 문득 우리 너무 잘 노는 것 같다고, 우리 진짜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중얼거리면 무언의 동의가 돌아온다.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우리는 똑같은 걸 바라고 있다. 3개월 남짓 남은 계약이 연장되기를, 부디 집세가 많이 오르지 않기를, 다음 주는 이번 주만큼 취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