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환경,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등. 매달, 매일, 매 순간 이야기해도 모자란 것들. 

런던 템스강에 거대한 수중 초원이 들어섰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버버리의 영문명이 대문짝만 하게 장식된 압도적 크기의 초록 설치물이다. 그 정체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꽃 축제 ‘슈퍼블룸’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놀라운 것은 이 수중 초원을 완성하기 위해 영국의 강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 5천여 종을 한데 모았다고 한다. 자연 속 초원과 습지가 탄소 저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꽃식물이 꽃가루 매개자와 강변 야생동물에게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려고 이런 설치물을 기획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버버리는 이 설치물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병 5만8천 개, 플라스틱 빨대 330만 개에 상응하는 재생 플라스틱 1.4톤을 영국 전역의 강에서 수거했다. 또 수중 초원과 더불어 디지털 아티스트 존 에모니와 협업한 아트월 역시 영국 산림지대에 사는 동물과 꽃가루 매개자의 역학 관계에서 영감 받아 완성했다. 이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는 미래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생태계가 계속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연구하는 것, 곧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의 연장선이다.

지속가능성이 패션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화두가 된 것은 한두 해 전 일이 아니다. 유독 패션 기업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처럼 보이는 것은 ‘소비’에 초점을 맞춘 패션업이 그간 지속가능성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비난과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이 같은 친환경 이슈를 마케팅으로만 활용하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으나 현재는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감시자(?)에 의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현재 커다란 소비 세력으로 군림하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 덕분이기도 하다. 나의 소비가 곧 나의 성향을 대변해주는 미닝 아웃의 시대다. 특히 MZ세대는 가치소비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 원하는 것이 있고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면 비싼 가격도 서슴지 않고 지불하지만, 아무리 저렴한 금액의 물건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패션 기업은 이런 MZ세대의 구매력을 자극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물건만 잘 만들어서 끝날 일이 아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이 가방을 하나 구입했을 때 현재 기아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구호품이 증정된다. 그렇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지갑을 여는 게 그들이란 얘기다. 그렇다 보니 기업은 착한 일에 더 열심일 수밖에 없다. 스토리텔링이 되는 아이디어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지속가능성으로 향하는 브랜드의 노력이 점점 더 다채로워진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2022년 여름 캠페인으로 멋진 옷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대신 영국 요식업의 살아 있는 전설 레이몬드 블랑과 협업한 버섯 요리를 소개했다. 패션과 버섯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스텔라 매카트니는 버섯이 패션과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이유는 자연에서 곰팡이가 당분을 흡수하면서 질소와 인 같은 중요한 미네랄을 나무 뿌리 위에 퍼지게 하고, 그것이 숲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 버섯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숲이 없으면 생태계가 위태로워지므로 버섯의 이런 역할은 바로 우리 삶을 유지시키는 것과 직결된다. 또 버섯은 농업 부산 폐기물을 이용해 순환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지속가능한 식재료 중 하나다. 1파운드의 버섯을 생산하는 데 단 8.2L의 물과 1kWh의 에너지가 필요하며 오직 0.7파운드의 온실가스만 생성된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2022년 여름 컬렉션은 관능적인 여성을 떠오르게 하는데, 섹시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각적으로 풀어냈으며, 동시에 버섯이 패션의 미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사고의 확장은 다른 브랜드보다 앞서 친환경을 실천해온 스텔라 매카트니의 내공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요즘 어떤 브랜드보다 다각도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메종 하우스는 바로 발렌티노다. 사흘이 멀다 하고 환경 이슈를 쏟아낼 정도로 적극적이다. 근래에는 에어프랑스와 KLM 항공사 그룹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지속가능 항공 연료(SAF) 기업 프로그램 후원에 동참했다. 발렌티노에서 기부금을 전달하고, 에어프랑스와 KLM은 기부금 전액을 항공 대체 연료를 공급, 사용하는 데 투자해 지속가능한 항공 운송업을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이는 탄소배출 절감에 실질적으로 참여해 혁신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또 얼마 전에는 공식 웹사이트에 ‘공유 가치 창출’이라는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 발렌티노에서 진행하는 윤리와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항공 관련 내용과 더불어 퍼 프리 선언, 앙고라 금지 정책 등 발렌티노가 추구하는 3대 가치인 사람과 환경,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지속가능성 자체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인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아는 유행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는 어느덧 세계 패션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한국 의류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다. 캠페인 슬로건에서 느낄 수 있듯 소비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소비 행동 변화를 촉구하고자 마련되었다. 패션 산업 하면 옷을 만들어내는 생산단계에 치중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생산된 옷을 사용하고 폐기하는 단계까지 생각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파타고니아는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한 기준 12가지를 세우고, 책임 있고 윤리적인 소재와 제품, 생산방식을 제시한다. 일상에서 망가진 옷이나 유행이 지난 옷을 수선해 입을 수 있는 ‘리페어 튜토리얼’ 같은 실질적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밖에 프라다는 자연환경과 디자인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 연구하는 종합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타미 힐피거는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션 멘데스와 파트너십으로, 월드 투어 기간 동안 환경적 영향을 완화하고 상쇄하는 노력을 돕는다. 팀버랜드, 앤아더스토리즈, 플랜씨, 멀버리 등 친환경 소재와 공정으로 만든 제품 소식이 이번 달에만 하나 가득이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듯, 이 같은 기업의 노력과 혁신에 뜻을 함께하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행동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다. 소비자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올바른 정보 아래 신념 있는 소비를 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것이 지속가능성, 친환경이라는 단어에 ‘아이 지겨워~’ 하기보다 이달에는 어떤 소식이 있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