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서퍼가 될 수 있을까? 그 시작을 실내 서핑장에서 해보기로 했다. 

날렵한 보드 위에서 바람과 파도를 가르는 서핑은 여름과 자유의 이미지 자체였다. 해마다 여름이면 강원 양양과 속초의 위치 태그가 올라오는 인증샷을 바라만 보다 언젠가 서퍼가 되리라는 막연한 로망을 키워가던 때, 코로나19가 해변을 덮쳤다. 더 이상의 바다도, 파도도 없었다. 국내에 인공 서핑장이 하나둘 들어선 건 그 즈음부터였다. 환경의 제약 없이 서핑을 보다 안전하게 즐기려는 서퍼의 발걸음은 곳곳의 인공 서핑장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실내 서핑장은 완만한 언덕 형태인데, 솔직히 좀 만만해 보인다. 잊고 있던 서퍼의 꿈이 꿈틀거렸다. 그럼 나도 한번 타볼까? 실내 서핑을 검색하니 서울 근교에 여러 지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교통편이 편리한 곳을 찾았고, 그렇게 광역버스에 몸을 맡긴 채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서핑라이더로 향했다. 

처음이라면
실내 서핑장은 정시를 기준으로, 시간 단위로 운영한다. 3시간을 연속으로 예약했더라도 정시마다 5~10분간 설비 정비를 위해 휴식 시간을 갖는다. 입문자는 강습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첫날에는 강습 1시간, 자유 서핑 1시간 구성으로 즐기는 편이다.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이 장비와 복장이다. “일반적으로 하의는 래시가드를 입습니다. 상의는 비치웨어를 이너로 착용하고, 위에 티셔츠를 입는 걸 추천해요. 보드는 무료로 대여하고 있고요.” 서핑라이더 최종황 대표의 설명이다. 예약과 동시에 친절히 안내해준 덕에 고민을 덜 수 있었다. 이 외에 액세서리는 분실의 우려가 있어 착용하지 않는다. 야외 서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하의 모두 가능하면 짧은 편이 좋다는 것. 물이 얕은 실내 서핑장에서는 넘어질 때 물에 퐁당 빠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닥에 부딪치고 곧바로 물살에 밀려 이동하게 된다. 바닥은 매끈한 매트리스나 다름없기에 넘어져도 아프지 않지만, 소매가 긴 래시가드나 슈트를 입으면 바닥과 옷의 마찰로 인해 피부가 쓸릴 수 있다. 

ON THE BOARD
강습은 물살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드 없이 한두 번쯤 서핑장을 몸으로 타보며 물살의 강도를 느낀다. 워터파크에서 워터슬라이드를 탈 때와 비슷하다. 보기에는 강하고 빠르지만 막상 타보면 속도감이 유쾌하다. 그새 긴장이 좀 풀린 몸으로 잘 넘어지는 법을 배운다.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해 손으로 뒷목을 감싸고, 뒤로 넘어져야 한다. 물론 타다 보면 균형을 잡는 데 정신이 팔려 뒷목을 생각할 새도 없지만, 다음 날의 근육통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으면 잘 넘어지는 기술이 필요하다. 비로소 보드에 서는 순간이다. 그리고 고난의 시간은 시작됐다. ‘서핑보드가 날 거부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3초도 서 있지 못하는 것이 수차례 이어졌고, 5분 만에 물에 빠진 생쥐꼴로 기가 푹 꺾이고 말았다. “금세 감을 잡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많이 넘어져요. 지금 넘어질까 봐 몸을 너무 움츠리고 있어요. 서핑은 온몸의 힘을 빼는 게 중요해요. 보드를 ‘탄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여기 발만 대고 있다고 생각하며 몸을 맡겨보세요.” 강사는 거듭 힘을 뺄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누구나 그 감각만 익히면 어느새부턴지 혼자 탈 수 있게 된다는 말로 응원했다. 그렇게 걸음마를 하듯 조금씩 나아갔다.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리드줄을 양손에 잡고, 그 길이를 점차 늘리며 위태위태하게 나아갔다. 결국 넘어지게 되는 것은 같았지만 버티는 시간이 늘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어느새 혼자 위, 아래, 앞, 뒤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한쪽 리드줄은 잡고 있기는 해도 제법 태가 나는 자세로 타기 시작했다. 체득의 경험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잡아주는 사람 없이 처음 자전거를 타는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몸으로 배우는 일은 그렇게 어느새 벌어진다.
물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그러하듯, 실내 서핑 역시 보기보다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초반 20분은 거의 30초마다 넘어졌으니 당연한 걸까. 다음 타임을 기다리며 몸을 말리고 있던 중 옆 레인에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던 서퍼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겨울에 타면 더 좋아요. 물이 따뜻해서 하나도 안 추워요. 여름에는 오히려 더울 때도 있거든요. 익숙해지면 하루 3시간도 짧게 느껴질 거예요. 친구 따라 우연히 탔는데 이젠 제가 더 빠져서 일주일에 두 번씩은 와요.” 그에 따르면 취미로 타더라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면 기술을 충분히 선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옆 레인에는 서퍼가 4명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같이 온 일행은 아니었다. “따로 왔더라도 같은 레인을 쓰는 일은 자연스러워요. 넘어지면 서로 격려하고, 기술에 성공하면 환호해주기도 해요. 실내 서핑은 암묵적으로 1분의 매너타임이 있어요. 돌아가며 최대 1분씩만 타고 다음 사람에게 양보하는 거죠. 타봐서 알겠지만 1분이라는 시간이 보드 위에서는 그렇게 짧지만은 않아요.” 그는 마지막으로 오늘밤에 꼭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자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힘이 들어간 건 하체인데 웬 어깨?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목과 어깨를 엄습하는 묵직한 근육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서핑은 온몸으로 타는 스포츠다.

다 같은 서핑이 아니다
실내 서핑을 다녀왔다는 말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그럼 이제 바다에서도 탈 수 있어?”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몸을 운용하는 방식이 유사할지라도 바다 서핑과 실내 서핑은 다른 레저 스포츠기 때문이다. 실내 서핑의 정확한 명칭은 플로우보드다. 이는 바다 서핑보다는 스케이트보딩에 가깝고, 바다 서핑과는 물을 타는 방향과 방식, 사용하는 보드, 활용하는 스킬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바다 서핑은 뒤에서 오는 파도를 잡아 물살과 함께 움직여요. 플로우보드는 앞으로 오는 물줄기를 역방향으로 거스르며 타는 스포츠고요. 보드의 크기만 비교하더라도 플로우보드가 훨씬 작고 가벼워서 보드 위에 서는 난이도만 따지면 실내 서핑이 더 어려운 편이에요.” 강사의 설명이다. 그래서 실내 서핑에 익숙하더라도 바다 서핑을 처음 한다면 꼭 기초 강습을 받아야 한다. 실내 서핑은 바다 서핑의 리허설 내지는 모의 체험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스포츠다. 바다보다 훨씬 가깝고, 1시간이면 금세 배울 수 있고, 수영을 못하더라도 상관없고, 계절과 날씨에 무관하게 혼자서든 여럿이든 즐겁게 탈 수 있다. 이어지는 장점 릴레이에 벌써 친구 두 명이 넘어왔고, 다음 주말에는 함께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쉬는 시간에는 나란히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