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일상, 오늘의 안부를 묻는 새로운 전시들. 

Tom Friedman, ‘Being’, 2021. Mixed Media and Acrylic Paint, 210.8×67.3×44.4cm.

미시에서 거시로

톰 프리드먼은 전시를 관람하는 행위를 알약을 삼키는 경험에 비유한다. 같은 알약을 꿀꺽 삼키더라도 사람에 따라 생리학적으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작품을 앞에 두고 느끼는 서로 다른 감상과 비슷한 맥락일 터. 선입견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많은 그의 작품은 눈속임 효과를 이용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그의 개인전 <많은 것을 동시에>는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시에 실물 크기와 비율을 전복하는 등 전시 내내 관람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장난스러운 실험을 통해 때로는 놀라움을, 때로는 환희와 흥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낡은 규칙을 벗어던지자.
6월 25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Hito Steyerl, ‘Tower’, 2015. Video Installation, Color and Sound.

이미지의 역할

해상도가 이미지의 위계를 결정하는 이미지 계급사회에서 픽셀이 깨진 채 온라인을 떠도는 저해상 이미지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거친 이미지의 다큐멘터리는 과연 진실을 담고 있을까? 무급 인턴의 노동의 장이 된 오늘날 미술관은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전시 관람은 또 다른 의미의 노동이 아닐까? 히토 슈타이얼은 현대사회와 전통적 미술 제도를 향해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그의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는 필름 에세이 형식의 초기 영상 작업부터 인터넷, 가상현실,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재고하는 최근 영상 작업까지 망라해 소개한다. 그의 믿음은 한결같다.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고 소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작품의 의미를 전부 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9월 18일까지. 국립 현대미술관. 

 

Andreas Gursky, ‘Pyongyang VI’, 2017(2007).

사진적 사진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 공장, 아파트, 증권거래소 같은 장소를 압도적인 프레임에 담은 사진이 있다. 현대사진의 거장이라는 뻔한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개인전 <Andreas Gursky>에서 우리는 자연과 건축 등 거대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문명의 단면을 기록해온 그의 어떤 열망과 마주하게 된다. 네모난 픽셀이 모여 거대한 이미지를 일군다. 사진은 사실을 온전히 기록하는 매체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론은 여전히 유효한 진실일까? 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의 재현을 넘어 예술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했기에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믿는다.
8월 14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공명 – 두개의 음> 전시 전경.

소리로 그린 그림

올리버 비어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축은 음악이다. 더 정확히는 목소리와 건축물에 초점을 맞추고 소리와 공간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한다. 그는 어릴 적 도자기를 관찰하면서 빈 공간에 있는 물건에서는 소리의 공명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조각이나 설치작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자전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공명-두 개의 음>은 이원, 융합, 교류라는 개념을 한데 모은 신작 ‘공명 회화’를 선보인다. 수평으로 배치한 캔버스 위의 건조된 안료 파우더가 아래에 위치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음파에 의해 흩뿌려지니 소리가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연약하고 덧없이 공중분해되는 다양한 소리의 울림이 캔버스에 내려앉는 순간.
6월 11일까지. 타데우스 로팍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