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식물 살인자라면, 한 번쯤 의심해보자. 혹시 나도 ADHD는 아닐까?  자신도 몰랐던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의 반려 식물 키우기 성공 경험담을 공개한다.

Photo by Andreas Rentz/Getty Images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들이 죽어 나갔다. 텅 빈 화분을 보면 운명한 식물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식물에게 안식처라기보다는 무덤에 가까웠다. 요즘 트렌드에 걸맞게 자연을 사랑하기 위해 꽤나  노력해왔고, 특히 펜데믹 이후에는 홈가드닝에 더 몰두했다. 인생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엔 식물 키우기에 대한 로망이 더 커졌다. 살아있는 식물이 나만의 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어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면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들이 죽어 나갔다. 텅 빈 화분을 보면 운명한 식물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플랜테리어를 시작한 후로 손톱에 흙때가 안 낀적이 없었고, 돈도 많이 날렸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과 돈, 그리고 수고스러움보다도 식물이 죽어 나가는 일은 나에게 좀 더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나는 집안을 꾸미는데 이렇게도 소질이 없는걸까?’ ‘식물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다니!’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ADHD 장애를 겪으며 이런 좌절을 계속해서 겪어왔다.

“과거부터 여성들의 ADHD는 과소 진단 되어 왔지요. 그 이유는 여아들이 활동에 집중하지 못할 경우, 어른들은 이를 문제적 행동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단순히 흥미가 없다고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에요. 또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질서정연하고 장시간 근무, 꼼꼼한 마무리 등  보상행동에 능하기 때문에 ADHD 증상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증상을 놓친다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소외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죠.” 

ADHD 증상을 가진 사람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남자를 떠올린다. 끊임없이 시끄럽게 굴면서 수업 흐름을 끊고 창문 밖에 ‘예쁜 새’가 지나갔다며 도무지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산만한 남자아이말이다.  하지만 최근 과학계에 따르면 ADHD 증상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발현할 수 있고 과거에는 이 질환이 남자에게 주로 발생한다고 잘못 알려져,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은 자신이 ADHD를 겪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성장해온 경우가 많다고.

뉴욕에 소재한 할로웰 ADHD 센터의 캐서린 리드 역시 이에 동의한다. “과거부터 여성들의 ADHD는 과소 진단 되어 왔지요. 그 이유는 여아들이 활동에 집중하지 못할 경우, 어른들은 이를 문제적 행동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단순히 흥미가 없다고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에요. 또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질서정연하고 장시간 근무, 꼼꼼한 마무리 등  보상행동에 능하기 때문에 ADHD 증상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증상을 놓친다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소외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죠.”

나 또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 증상을 모른 채 살아왔다. 남들에 비해 수업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사소한 과제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완벽주의자’로 오인될 만큼 과도하게 노력했다. 그 결과 대입시험 SAT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대학 지원서도 빈틈없는 그야 말로 완벽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실상은 달랐다. 단순한 학교 과제를 시간 내 제출하지 못해 새벽 4시까지 깨어있는 등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강까지 해칠 수 있는 이런 공부 습관이 ADHD 증상 중 하나에서 기인했다는 걸 성인이 되어 깨달았다. “외계인에게 나도 모르게 납치당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도 모르게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곤 했는데, 이것이 ADHD 증상 중 하나라고 하니 이제서야 모든 것이 퍼즐이 맞춰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성적표는 A로 가득 채웠지만, 깜빡깜빡하는 주의산만함은 다른 곳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교과서나 과제를 어디에 두었는지 수시로 까먹었고 내 사물함은 갈매기가  해변의 잡동사니로 만든 둥지처럼 어지러웠다. 1급 학생 운동선수로 인턴십을 따내며 학부를 졸업했고 이후에 석사학위도 취득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넓혀 대외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힘들었다.

나의 특이함과 창의성이 무기가 되고 정신 사나운 체계가 어느 정도 용인되는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학위나 상장 등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업적이 영광스러운 메달로 느껴지기보단 마라톤 결승점에 도달하면 주어지는 알루미늄 호일 담요처럼 느껴졌다. 결승점에 도달했지만 다리가 천근만근이라 더 이상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울 때 주어지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비상 물품처럼 말이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이제 반려 식물들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집안에 무성하게 자란 반려 식물의 모습이 내 증상에 차도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셀프케어의 루틴 중 일부로 자리 잡았고 내 뇌가 꼭 필요로 하는 웰니스 루틴이 되었다.

다행인 건, 이제는 나 혼자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일상의 루틴에 혼란을 초래하는 불확실한 팬데믹 상황에서 ADHD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이 주위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가을, 나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드디어 의사를 찾아갔고 ADHD진단을 받았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밀린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깊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애더럴 치료제를 처방받고 난 후로 삶은 훨씬 좋아졌다. 시간이 예전보다 느린 속도로 흘러가며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속도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업무가 생겼을 때도 예전보다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이제 반려 식물들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집안에 무성하게 자란 반려 식물의 모습이 내 증상에 차도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셀프케어의 루틴 중 일부로 자리 잡았고 내 뇌가 꼭 필요로 하는 웰니스 루틴이 되었다.

심리 치료사이자 사회복지사인  제니퍼 그랜트 슐리스만은 이렇게 조언했다. “반려 식물의 성장은 전적으로 식물을 돌보는 주인의 애정과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역시 반려 식물에게 많은 보상을 받지요. 초록 친구들을 돌보는 일은 자기 수양의 기능도 있답니다. 또한 반려 식물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그 동안 삶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 깊은 곳의 마음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게 되기도 하지요.”

식물 돌보기는 ADHD 환자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일상 생활이 파괴된 사람, 혹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보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식물 돌보기는 큰 도움이 된다. 자연에 기반한 웰니스 의식이라고나 할까? 슐리스만은 심지어 식물을 키워보는 것은 자신의 양육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경험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식물 키우기의 이점은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 이상의 정신적, 사회적 가치가 있다. 브루클린 식물원에서 스쿨 워크샵 코디네이터인 조안 디아리아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회복을 돕는 방법으로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 HT)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치료법은 종종 병원, 재활 센터, 학교 및 공동체 텃밭에서 진행되는데, 거창한 것이기 보다는 식물에 대해 배우고 돌보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예치료는 기억력, 인지 능력, 업무 능력, 언어능력은 물론이고 사회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ADHD 환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원예 치료를 추천한다.

처음엔 다들 단순히 집에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식물을 들여 놓곤한다. 하지만 숨 쉬고 살아있는 생명을 곁에 두는 행위 자체로 기분이 꽤나 좋아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창가를 따라 화분에 심어진 식물을 주르륵 나열해 나름의 질서를 만들면 집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해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집안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불안이나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자기 취향에 맞는 색감의 식물을 배치하면  중추 신경계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겨 심리적인 여유가 생기고 재택근무를 할 때 생산성도 높아지는 효과도 있어요.” 슐리스만의 설명이다.

어느 때 보다 맑은 정신으로 무장한 나는 이제 원예 전문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분갈이를 위해 화산암과 흙을 비치해두었고 최근에는 플랜타(Planta)앱을 받아 체계적으로 식물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플랜타 앱에 키우는 식물을 등록하면 식물별로 필요한 조명, 흙 종류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물을 주어야 하는지 알람도 받을 수 있고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수시로 상태도 진단할 수 있다. 아침에 식물에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무성한 엽록소를 감상하는 게 나의 모닝 루틴이 되었다. 이렇게 집에 질서가 생기니 커피를 끓여두고 까먹는 일 역시 없어졌다! 싱싱한 야자나무 잎이 태양을 바라보며 펼쳐져 있고 아기 몬스테라도 싹이 나기 시작했다. 악마의 담쟁이덩굴이란 별명이 있는 스킨답서스는 창문에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게 뻗어있다. 내 손으로 만든 환경에서 쑥쑥 자라나는 식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평화롭고 파릇파릇한 성역에서 나와 식물 모두 성장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