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가족의 형태를 다시 정의해야 할 순간.

가족이 뭐길래 

주말 밤 이태원의 후미진 골목 끝에 숨어 있는 클럽에서 지금이야 고전이 된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 리한나로 이어지면 날 새는 줄 모르고 춤을 췄다. 레이디 가가가 그 유명한 노래 ‘Born this way’에서 “네가 사랑하는 존재가 남자든 여자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그러니 고개 들고 용감하게 네 삶을 살아. 태어난 모습 그대로”라고 악을 쓰면 모두 은혜받은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뭐에 홀린 듯 몸을 흔들었다. 마침 잘 알지도 못하는 이가 내 귀를 잡아당기며 다그쳤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일도, 자식을 낳아 책임질 일도 없으니 이렇게 사는 거지? 너도 이제 진실한 사랑을 해. 정착해야 해.” 대관절 이 무슨 조선시대의 잡귀인지 무시해버리고 말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그날의 저주와 우려, 물음이 맴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결혼 혹은 결합하고 가정을 꾸려 함께 생활하는 일, 나아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인생의 스크립트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시절 같은 클럽 한쪽에서 함께 비틀거리던, 지금은 알아주는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된 L을 얼마 전 촬영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산다. 단순한 연인 너머 하나의 가족, 가정이 되기로 한 것이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요. 같이 지내다 보면 서로 양보해야 할 일도 있지만 그마저 싫지 않아요. 집에 가서 둘이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안정이 돼요. 마음이 편안해요.” 가족이란 정말 그런 존재일까. 

새로운 가족의 형태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라면, 자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까지를 가족원으로 한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정상 가족의 모습이다. 그 중심에는 혼인과 혈연, 이성애가 버티고 있다. 사전적 정의의 혼인이란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법률이 규정한 정상 가족의 형태 외에 다양한 가족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무용수 이승진과 회사원 황인성은 4년 전 여름 데이팅 앱을 통해 처음 만나 연인이 됐다. 함께 산 지 2년이 넘었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한국에선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끝과 끝은 통한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진짜 다른 사람인데 그래서 더 잘 맞아요. 누가 어떻게 보든 사회적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요. 법적 부부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둘 중 누가 갑자기 아파서 수술받아야 하면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을 할 수 없다고 해요. 대부분의 병원에서 보호자의 범위를 민법상 부양 의무자에 해당하는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걸 듣고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슬펐어요. 화도 나고요.” 그게 다가 아니다. 이들은 국가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특히 주택공급 정책은 법률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비혼 동거 가족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도 등록할 수 없고, 배우자의 연간 소득이 1백만원 이하인 경우 적용되는 인적공제도 받지 못한다. 전세자금 대출 지원은 물론 동반자가 사망하더라도 법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위한 휴가 등도 받을 수 없다. 동성혼을 인정받기 위해 원정결혼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대만을 비롯한 약 10개의 국가에서는 외국인도 동성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국내 동성 커플이 원정결혼을 하고 돌아왔다.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국내에서도 동성 부부를 비롯해 전통적 가족 형태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늘어나면서 ‘생활동반자법’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지난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했지만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보수단체와 일부 종교단체 등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이라며 거세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혐오와 차별에 굴복한 셈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기를 약정한다면 법적 가족에서만 허용했던 혜택과 권리를 부여해 동성 가족을 포함한 비혼 동거 가족, 하우스메이트 등에게도 의료결정권, 시신을 인수할 권리, 공공주택 주거권 등을 보장한다.

지금, 오늘의 바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동성 커플과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비혼 동거 가족 및 동반자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생활동반자법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데 찬성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2022년 4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고해 보이던 정상 가족의 신화를 깨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국 성소수자들의 요청에 비로소 응답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주거, 의료, 재산분할 등에서 성소수자 생활공동체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만들 것과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를 수용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하고 의결할 것도 권고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현행법과 제도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생활동공체가 차별받고 있으며 혼인, 혈연 외의 사유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정보 공개 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전 세계 30개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30여 개 국가가 동성 간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사랑이 또 이긴다

이승진, 황인성 커플에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관련 기사를 공유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아직 법률 제정까지 된 건 아니니까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생각해요. 혐오와 차별은 생각보다 지독하고 뿌리가 깊다는 걸 알아요. 최근에 세상이 뒤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희망적이네요. 알죠? 그래봤자 무조건 사랑이 이겨요.”(웃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평등하게 대접받아 마땅하다. 사랑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과분하게 희귀한 존재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내용은 이렇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권리를 확인하고 보장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온기 가득한 가정을 꾸릴 권리는 웬만해선 그 누구도, 어떤 권력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