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YS ARE US ?
지금껏 인형의 외모가 이렇게 다양한 적은 없었다. 인형 진열대처럼 우리도 더욱 폭넓은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서 인형이 빠진 적은 없었다. 아주 옛날엔 옥수수 껍질부터 동물의 뼈, 돌, 나무, 가죽, 왁스까지, 인형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재료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형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놀잇감이었다. 1959년, 몰드에 찍혀 나온 비현실적인 몸매의 플라스틱 바비가 등장하며 인형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60년이 지난 지금은 다양한 경쟁사가 존재한다. 글리터 걸즈, L.O.L 서프라이즈! 그리고 디즈니 공주까지,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로 치장한 인형이 대거 출시된 것. 인형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럽게 유튜브 속 장난감 콘텐츠도 활기를 띠었다. 시중에 출시된 웬만한 인형의 이름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언박싱 영상을 줄줄이 만나볼 수 있다. 눈부신 금박 장식의 포장 박스부터 인형이 들고 있는 가방까지, 모든 디테일을 샅샅이 소개한다. 영상 속 유튜버들은 인형의 머리를 빗질하고, 손에 칠해진 네일 컬러를 설명하고, 옷감 소재까지 속속들이 묘사하고 평가한다. 대체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인 인형에 이렇게까지 집중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형은 우리의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겐 미적 인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문화적 시금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산호세 주립대에서 성 불평등과 장난감의 관계를 연구한 엘리자베스 스위트(Elizabeth Sweet) 박사는 “인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미적 기준을 투영합니다”라고 말한다. 18세기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인형의 대량 생산이 시작됐는데, 외모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는 시기의 여아들에게 정형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다이애너 레온 보이즈(Diana Leon-Boys)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형은 개인이 사회에서 느끼는 소속감에 크게 관여해요. 아이들은 인형을 갖고 놀며 자신을 인형에 대입하죠.” 인형의 모습에서 나와 닮은 점을 찾고 동질감을 느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더불어 아이들은 인형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까지 인형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은 건강하고 날씬한 이성애자 백인 여성으로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6년, 미국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아메리칸 걸 3종을 출시했는데 이는 모두 백인 인형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에는 아메리칸 걸 시리즈 최초로 에디라는 이름의 흑인 인형이 출시됐으나, 9살 에디는 노예제로부터 해방을 갈구하는 소녀로 그려졌다. 그 이후 차차 부유한 가정의 흑인과 유대인, 인디언 소녀도 선보이며 다양화를 시도했고, 요즘에는 보청기나 의수를 착용한 인형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2월에는 아메리칸 걸에서 2022 <올해의 소녀>로 중국계 미국인 코린 탠(Corinne Tan) 인형을 선정하기도 했다.
코린 탠은 의붓 가정에서 성장한 소녀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에 맞서고자 하는 캐릭터다. 바비와 아메리칸 걸을 1998년에 인수한 마텔(Mattel)에 따르면 2020년 두 번째로 인기가 높았던 바비는 휠체어를 탄 인형이었고, L.O.L 서프라이즈!의 인기 인형인 로열 비는 풍성한 아프로 머리 스타일을 갖고 있다. 어두운 피부톤에 백색 반점이 있는 백반증 외형의 패셔니스타 바비 #135는 작년 한 해 아마존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NPD 그룹의 부회장으로 장난감 개발 부서의 시장 연구를 담당하는 줄리 르네(Juli Lennett)는 “요즘은 누구든지 자신과 닮은 인형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그녀의 말처럼 인형 시장은 방대하다. 2021년 10월까지 1년간 미국에서는 6000만 개가 넘는 패션 인형이 팔렸다. 인형의 주 고객층은 네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소녀들. 1180만 명의 여자 아이들이 인형을 구매한 셈이다. “인형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현상은 더 포용적인 세상이 왔다는 것을 의미해요”라고 르네는 설명한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처음 감지된 시기는 2001년. 플라스틱 완구 제조업체인 MGA 엔터테인먼트가 다양한 피부색과 헤어 컬러, 모질의 브라츠(Bratz) 인형을 처음 출시했는데, 이 인형이 의외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 “백인이 아닌 여학생들 중 상당수가 어릴 때 브라츠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고 얘기했어요. 2000년대에는 다양한 피부 색과 모질을 표현한 인형이 오직 브라츠뿐이었거든요” 하고 스위트 박사가 전했다.
브라츠 인형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MGA는 구모델을 재출시했다. 브라츠 인형은 위로 치켜뜬 큰 눈과 작은 코, 뾰로통한 입술이 특징이다. 이런 브라츠 인형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L.O.L 서프라이즈!, 몬스터 하이, 마이 리틀 포니 인형도 이와 비슷한 외형의 제품을 선보였다. 브라츠는 피부톤과 모질의 다양성 덕분에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인형이 많아지자 또다시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을 전파하게 되었다. 보스턴 대학의 유색 인종 센터를 창립한 피부과 전문의 닐람 배시(Neelam Vashi)는 미디어가 우리의 미적 기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형의 외모는 실제 인간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데도, 그 왜곡된 특징이 우리의 미적 기준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2009년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캐릭터의 얼굴을 찌그러트리거나 늘려서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보여줬더니, 이후 그들의 미적 기준이 변형된 얼굴에 가깝게 바뀌었다는 것. 이쯤에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다양성을 응원하는 건 좋지만 과장된 외모 특징이 오히려 문화적 편견을 강화한다면? 그건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젠더 편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강해져요. 그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죠”라고 스위트 박사는 지적한다.
바비가 만약 실제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바비 인형의 신체 치수를 환산해 적용해보면, 허리가 너무 가늘어 간은 반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발도 지나치게 작아 바비는 사족 보행을 해야 한다. 2016년에는 키가 작거나, 체형이 통통한 바비도 출시됐다. 현실적 몸매를 반영하려는 시도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레온 보이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통한 체형의 바비 허리 둘레를 실제 사람 사이즈로 환산하면 겨우 24인치 정도예요. 통통하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죠.” 방향성은 옳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개선이 필요하다. 바비 외의 다른 인형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완구회사 해즈브로의 디즈니 공주 인형이 만약 실제 사람이라면, 공주의 허벅지 두께는 탄산음료 캔 두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작년, 영국에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초슬림한 인형을 가지고 논 소녀들은 날씬한 몸매를 선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스위트 박사는 모든 아이들이 인형을 선망하는 것은 아니며, 비현실적인 외형을 거부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인형의 외모는 사회적으로 미와 젠더의 기준을 획일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인형의 외모를 좋게 평가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속한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여자의 이상적인 몸매는 이런 거야”라는 편견이 퍼지기 시작한다는 것. 즉, 인형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미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형은 외모뿐만 아니라 젠더 메시지도 던진다. 텍사스 A&M 커머스 대학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며 젠더 이슈를 연구하는 토니 스터디번트(Tony Sturdivant) 박사는 인형 업계는 극심하게 젠더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1905년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인형 카탈로그를 수집해 변화를 분석했다. 20세기 초에는 놀랍게도 장난감에 성별이 크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즉 인형 마케팅은 성 중립적이었다. 하지만 여권 신장과 양성평등이 발전할수록 인형 업계에서의 성 역할 구분은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요즘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인형은 핑크나 보라색으로 도배되어 있고, 공주풍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라푼젤 같은 긴 머리에 풀 메이크업을 한 모습 일색으로, 전통적 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텔의 하위 브랜드인 크리에이터블 월드(Creatable Wordl)는 의문을 제기하며 2019년 짧은 머리에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체형의 인형을 출시했다. 가발, 모자, 바지, 치마 등 각종 액세서리와 세트로 구성되어 있어 인형에 무슨 옷을 입힐지, 어떤 성별을 부여할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이 인형이 출시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시중에서 취급하는 가게가 별로 없어서 안타깝더라고요.” 레온 보이즈 박사가 말했다
심지어 현재는 해당 인형의 생산 라인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생산 업체가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기의 척도로 여겨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살펴보면 극명한 차이가 보인다. 바비는 220만 명에 달하는 데 반해 크리에이터블 월드는 1만3000명으로 확실히 열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남자 아이들도 인형놀이를 좋아해요. 하지만 ‘인형은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거야’라는 주변 시선에 포기하게 되죠”라고 스터디번트 박사는 말한다. 이는 문화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소속감 형성과 소근육 운동에 도움이 되는 인형놀이의 또 다른 이점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젠더화를 탈피하려는 인형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 세대가 자라면서 이 고정 관념을 탈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940년대에 실행된 클라크 인형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흑인 아동에게 흑인 인형과 백인 인형을 주고 더 좋은 인형을 선택하게 하고, 자신과 닮은 인형이 무엇인지 물었다. 놀랍게도 흑인 아동 3명 중 2명은 백인 인형을 선호했고 몇몇은 흑인 인형을 “나쁘다”라고까지 표현하며 백인 인형이 자신과 더 닮았다고 응답했다. 클라크 인형 실험은 이후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인종 분리 문화를 불법화하는 근거로 채택되었다. 스터디번트 박사는 과거의 일이 현대 사회에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녀는 2019년에 클라크 인형 실험과 유사한 실험을 소규모로 진행했다. 라틴계 인형을 추가해 흑인, 백인, 라틴계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 클라크 인형 실험으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전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흑인 인형을 거부했다. 스터디번트 박사는 이 실험에서 아이들의 외모 취향도 관찰했다. 어떤 아이는 흑인 인형의 머리가 너무 곱슬이라서 싫다고 이야기했고, 화장 놀이를 하면서 피부톤을 밝게 만들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인종을 표현했다. 인종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인형의 변신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인형은 장난감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형은 아이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성인인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이 오직 인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또한, 인형은 미의 기준이나 젠더 편견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인형은 사회적 현상과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본질적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인형 업계만 힐난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 식의 접근이라는 거다. 스터디번트 박사는 말한다. “인형이 의미하는 바는 꽤 큽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인형을 생산하는 것만이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거죠.”
- 에디터
- 신지수
- 포토그래퍼
- BOBBY DOHERTY
- 글
- JENNIFER G. SULIV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