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의 적정한 가격은 얼마일까? 온라인 속 가격을 탐구하다가 오늘도 못 샀다. 

어젯밤 잠들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100개들이 마스크를 새로 구매한 것이었다. ‘옷자락만 스쳐도 감염된다’, 또는 ‘주변에 오미크론에 걸린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것’이라는 이때에 할 수 있는 건 K94 마스크를 잘 쓰는 것뿐이니까. 지금까지도 계속 구매해온 마스크가 아닌가. 5분이면 살 줄 알았던 마스크 쇼핑은 45분이나 걸렸는데, 좀 더 싼 것, 좀 더 싸면서도 후기가 좋은 것, 싸면서 후기가 좋으면서 배송비도 무료인 것을 찾다가 그만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요즘은 모든 쇼핑이 이런 식이다. 휴대폰은 어떻고? 나는 이러저러한 보조금이나 이런 걸 알아보는 게 괴로워 공식스토어에서 ‘새 기계’를 산 후 개통만 하는 방식을 10년째 고수하고 있지만 이렇게 말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의 휴대폰을 바꿔드렸다. 남동생이 아버지를 위해 찾은 곳은 대리점이 아닌 일명 ‘휴대폰의 성지’라는 곳이었다. 오피스텔의 한 칸에서, 대화도 없이 손짓으로 이루어지는 암거래 같은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가격이 너무 쌌는데, 이 성지는 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처럼 초성으로만 정보가 공유된다고 한다. 다음에는 나도 성지를 찾아야 하나 싶지만 거래 방식을 생각하니 자신이 없다. 

‘정가’라는 게 점점 의미가 없어지다는 말은, 꼭 저렴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웃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는 뉴발란스 스니커즈에 푹 빠져버렸다. ‘327’이라는 모델이다. 처음 우연찮게 327을 신었을 때에는 이게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신발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 때나 살 수도 없다. 자, 이 327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서는 날짜에 맞춰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엔 구매자로 당첨이 되어야 한다. 나이키의 한정판 스니커즈 발매 방식인 ‘래플’을 도입한 것인데, 당첨되어야만 구매할 자격이 주어진다. 발매일에도 원하는 걸 갖기 위해 매장 앞에 줄을 서고 ‘오픈런’을 해야 된다. 나 같은 회사원 겸 게으름뱅이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인 거다. 이윽고 스니커즈가 발매되면 당근마켓, 중고나라 같은 개인거래 플랫폼은 달아오른다. 가장 예쁜 컬러와 황금사이즈는 모두 리셀러 손에 들어갔다. 정가는 분명히 10만9천원인데 18만원을 주고 샀다. 샀는데 억울했다. 영국 패션 웹사이트 ASOS에서 주문해 꼬박 4주를 기다려 받은 적도 있다. 약간 흠이 있는 상품이 왔지만 비교적 한국 정가에 가까워 감지덕지하며 그냥 신었다. 맘에 드는 운동화를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 왜 암표는 불법인데, 리셀링은 지극히 합법인 것일까. 

막스마라의 코트를 구입하는 데도 노력이 들었다. 매장에서는 인기 모델이라 시즌 시작과 함께 작은 사이즈는 모두 품절되었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밀라노나 도쿄, 홍콩에 가서 쇼핑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이제 내가 믿을 건 구글뿐이다. 구글로 검색과 검색을 거쳤는데도 내 사이즈를 찾지 못했다. 쇼핑 정보 커뮤니티를 보니 이미 여름 무렵 24S에 입고되자마자 살 사람은 다 샀다고 한다. 아멕스 카드로 구입하면 페이백이 된단다. 아, 나 아멕스 카드 없는데…. 결국 내게 코트를 안겨줄 사람을 찾아냈다. 구매대행업자, 흔히 말하는 ‘블로그마켓’ 운영자였다. “예쁘게 입으세요, 언니”라는 손글씨 카드와 함께 코트를 받았다. 진품일까? 진품이겠지. 진품이어야만 한다. 매장가보다 100여만원을 싸게 산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느끼는 건 쇼핑의 행복이 아닌 피로감이다. 더 저렴한 것이 있을 것만 같다. 저렴해도 진품일까 의심스럽다. 스마트폰 시대에 스마트한 소비자가 못 되는 것 같다. 최저가 비교, 배송비 비교, 사은품까지 비교할 것이 너무나 많은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영국의 한 리서치 회사가 2000명의 영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7%는 원래 가격으로 제품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고 대부분이 ‘프로모션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발생하는 ‘결정 피로’는 이미 심리학적으로 존재하는 용어다. 이러한 가격 경쟁은 ‘결정 피로’를 더 가중시킨다. 온라인 쇼핑 고객을 조사한 뉴욕대의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검색 엔진과 가격 비교 사이트의 발달로 많은 소비자가 검색과 휴식, 좀 더 검색과 휴식 등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10주 동안 4600명 이상의 온라인 네덜란드 의류와 슈즈 쇼핑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4600명 중의 76%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의 행동은 달랐다. 패션 웹사이트에 접속한 40% 이상은 재접속했다. 구매를 결정하기 전까지 3번가량 휴식기를 가지고, 평균적으로 한 1주일 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피로해지고, 더욱 휴식기를 가졌다. 쇼핑에도 휴가가 필요하다니. 그러고 보니 나도 중간중간 휴식기를 가졌다. ‘사지 말까?’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피곤해서 검색을 중단한 면도 분명히 있었다. 

저렴하게 잘 사야 한다는, 그런 압박 속에서는 선택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할지 모른다. 검색과 비교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의 가격은 얼마일까? 유한한 자원인 시간 역시 비용일 테니까. 책을 살 때에는 마음이 편하다. 책은 뒷표지마다 가격이 적혀 있고,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정가가 없는데 책만이 정가인 세상.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사도 같다는 행복감을 느끼며 책을 단숨에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