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AND ONLY

쓰임을 다한 원단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더메이드 가방을 만드는 디자이너와의 인터뷰. 

CDY

다양한 패브릭을 수거해 가방을 만든다. CDY는 어떤 곳인가?
CDY는 가방 가게다. 또한 이곳은 우리가 느끼는 어떤 종류의 좋음, 아름다움을 실현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 만난 두 디자이너 윤혁, 김소현이 CDY를 이끌고 있다.
어림잡아 700페이지 정도의 양장본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지난한 날들을 보냈고 지금은 서로를 ‘선택한 형제’라고 정의한다. 내부적으로는 팽팽하게 서로를 밀어내는 자석의 양극처럼, 외부에서 바라봤을 땐 완벽한 균형을 맞추는 시소처럼 보이길 바란다. 

CDY의 출발은 2014년 ‘의릉세탁소’다. 캠퍼스 안 버려진 공간에서 바지 한 벌로 가방 하나를 만들기 시작했고 학교 앞 김밥천국에서 이름을 딴 가방천국을 운영했다. 지금의 CDY가 있기까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아름다운 기억보다 따끔하게 데인 기억들이 되레 깊게 각인되어 있다. CDY가 동아리에서 막 사업장이 되었던 시기에, 우연히 작업실 앞을 지나던 동네 주민이 오더 메이드를 의뢰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창작욕을 불태우며 그분의 주문을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해 가방을 디자인했다. 의기양양하게 결과물을 보여드렸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회의에 갈 때 멜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달라 했지, 예술품을 만들어달라고 했냐’는 일침이 오갔고 다시 제작해드린다는 제안마저 거절하셨다. 정교한 스케치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노력 끝에 현재는 제법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CDY 가방은 어떻게 제작되는가?
서울 온갖 곳에서 수집한 패브릭을 세탁한 다음 해체하고 재결합한 뒤 오랜 시간 다듬어 가방의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담아내고 표현해낼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집중한다. 이런 프로세스는 초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많은 고객이 만족할 만한 가방을 위해 기꺼이 민낯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방을 주문하러 온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 것도 같은 이유다. CDY의 오더메이드 서비스는 매월 1일 낮 12시에 예약할 수 있고 신청이 완료되면 온라인 또는 작업실에서 상담 가능하다. 

1 CDY의 오더메이드 서비스를 통해 선보인 게코 백팩. 2 키키 토트백.
3 비 오는 숲속에 푹 빠진 콘셉트로 제작된 가방.

가방을 만들며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착용감과 유용성. 편하게 멜 수 있는 가방이 맞는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다. 백팩을 만들었다면 등에 착 붙는 것이어야 하고, 크로스백을 만들었다면 어깨에 참새가 앉아 있는 것처럼 가벼워야 한다. 독특한 미관을 가진 가방이 매우 편하기까지 하기를 바란다.

CDY를 치유한 오더메이드 가방은?
‘막 숲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하게’라는 주제로 오더메이드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이전의 가방들은 기술자로서 ‘구현’해낸 결과물에 가까웠다면, 이 가방은 창작자로서 최초로 ‘표현’해 작품과도 같았다. 마치 알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된 이 가방은 스스로에게도 한계를 깨부술 수 있을 만큼 동력을 준 터닝 포인트였다.

미술관에서 여러 가지 테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가들이 패브릭을 작업할 수 있는 CDY 스튜디오도 선보이고 있다. 이런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본캐와 부캐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 시대 일반적인 노동 형태라고 생각한다. 창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나를 위한’ 작업과 ‘남을 돕는’ 작업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럴 때는 말년에도 이직을 고민했다는 바흐나 평생 그림 한 점 팔지 못한 고흐를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우아하게 가방을 만드는 지금에 감사하게 된다. 모든 활동은 가방을 만드는 일에 도움을 주고 동시에 가방 만드는 일은 모든 활동에 적용할 수 있다.

수익금의 일부를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일에 쓴다고 들었다.
그림을 사는 행위는 가장 확실하게 남들과 나를 구별해준다. 좋은 음식을 사 먹은 기억도, 멋진 옷을 사 입는 기분도, 그 어떤 것도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고르는 흥분을 대체하지 못한다. 

올해 목표는?
원단을 생산해보고 싶다. 늘 나름의 엄격한 조형 원칙 아래 작업하지만, 온갖 천 조각을 짓이기고 결합시킨 우리의 가방이 누군가에게는 변칙과 무질서의 결과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가 수용하는 불규칙이 어떤 규칙을 따르는지 보여주는, 체계적이면서도 도식화된 원단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 과연 그것들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스스로도 궁금하다.

기시히

기시히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
대학에 합격한 2013년, 디자이너라면 이름을 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원초적인 생각과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 제 이름 김승희의 자음으로 ‘기역시옷히읗’이라는 상호를 지었다. 다만 발음이 매우 힘들어 동기들끼리 ‘기시히’로 줄여서 부르던 게 ‘기시히’로 굳어졌다. 2014년도에 정식으로 로고를 디자인했고 지금도 가방 안쪽에 이 로고로 제작된 라벨을 달고 있다. 

가방을 만들게 된 계기는?
바늘은 초등학생 때 잡았고, 중학생 때부터 원단 시장에서 혼자 원단을 사다가 손바느질로 파우치나 필통 같은 걸 만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땐 패션 디자인으로 진로를 정하고 가정용 재봉틀도 샀다. 대학교 4년 내내 가방만 만들다가 졸업했다. 가방을 만들게 된 시작 시점을 말해야 한다면 고등학교 3학년 때 분명히 가방 디자인과가 있는지 찾아봤었고, 그해에 만들기 시작했다. 

많고 많은 소재 중에서 재활용 데님으로 가방을 만드는 이유는?
고2 때 엄마가 재봉틀을 사 주셨다. 입시 미술을 시작하고 바빠지면서 재봉틀을 옷장 구석에 넣어두었는데, 그 옆에 버릴 청바지도 함께 모아뒀었다. 버려지는 청바지가 너무 아까워서였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바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데님을 사용했지만 청바지를 뜯어서 사용하진 않았다. 주변에 처음 보는 신소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 사용하려니 질려서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데님은 다 똑같아 보이는데 묘하게 달랐다. 특히나 청바지를 뜯어서 작업하면 워싱이 들어가니 새것보다 훨씬 다양한 매력이 있었다. 뜯은 청바지를 이어 붙이며 바탕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는 재미 등등. 일은 많은데 재미있다. 정말.

기시히를 소개하는 한 줄의 글은 ‘청바지를 보내주시면 가방을 만들어드립니다’이다. 수집부터 세척, 분해, 제작까지 어렵고도 험난한 데님 리메이크 숍을 오픈하게 된 계기는?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는다. 패션 디자인과만 합격한 점, 전액 장학금 이상을 받고 학교를 다닌 점, 데님으로만 가방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를 떠올리며 ‘신은 내게 어떤 결과물을 원하길래 나를 이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패션으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내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결론 내렸고 그때부터 기시히를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방의 필수 요건이란?
눈길을 끌어야 한다. 가방은 패션 액세서리로 분류된다. 액세서리의 필수 요건은 꾸밈이다. 많은 사람이 무난한 디자인에 무채색 옷을 많이 입는다. 가시히의 가방은 그 무채색 옷 위에 강렬한 포인트가 되었으면 한다. 가방 제작자로서 가방이 제일 튀었으면 한다.

1 기시히의 디자이너 김승희가 디자인한 데님 소재 백팩. 2 청바지 라벨을 그대로 살린 버킷백.
3 자투리 데님으로 만든 오브제.

사연 있는 오더메이드 가방이 있다면?
기시히에서 맞춤 제작을 가장 처음으로 주문해주신 고객님의 가방이다. 이후로 똑같은 디자인으로 가방을 제작해달라고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어떤 고객분은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 입으셨다는 한정판 폴로 청바지를, 또 다른 분은 따님께서 미국 어학연수에서 돌아올 때 친구들이 바지에 편지를 써주었다며 기시히로 보내주셨다. 이외에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청바지, 전 남친과의 커플 청바지, 친구들이랑 교환하고 남은 청바지 등을 가방으로 만들어달라고 보내주신 고객님들도 있었다. 

청바지 한 벌이 가방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이 신기하다. 가방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또는 기능적 요소가 있나?
가방을 조금 오래 쳐다봐야만 ‘혹시 저 가방은 청바지로 만든 건가?’라고 의문이 들 수 있는 수준으로 가방을 만들려고 한다. 누가 봐도 청바지로 만든 것 같은 가방은 촌스럽다. 대부분 바지를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다. 기시히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바지의 뒷주머니를 뜯어내면 남는 뒷주머니 자국을 가방 뒷면이나 밑면에 활용하는 것이다. 웬만하면 앞부분에는 바지의 형태가 보이지 않게 제작한다. 또, 로고는 앞면에서 보이지 않게 제작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가방에 장식이 많이 달려 있다. 로고보다는 장식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주로 가방의 디자인은 어떻게 구상하나?
옷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외부 환경이 반영된 요인이 아닐까 싶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터라 학교에서 옷만 4년 배웠으니 4년 동안 얼마나 많은 디자인의 옷을 봤겠나. 이런저런 옷을 보다 보면 갑자기 가방 디자인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옷을 본다. 소재가 같다 보니 옷에서 구현 가능한 디테일은 거의 가방으로 재현할 수 있다. 

쓰임을 다한 데님을 재활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란?
내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은 질 좋은 옷을 구입하는 것이다. 패션 쓰레기 문제가 생긴 게 옷 가격이 싸지면서가 아닌가. 싸니까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 쉽게 사라고 싸게 만드니 쉽게 해져버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다. 그냥 질 좋은 옷을 제값에 사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질 좋고 잘 만들어진 청바지를 제값 주고 구매해 5년 정도 입다가, 어디 한 군데 구멍 나서 못 입게 되면 기시히로 보내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의 순환이다.

이루고 싶은 다음의 목표는?
청바지 중고 거래소를 운영해 청바지 본연의 수명을 늘리고,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청바지는 뜯어서 가방 만들고, 청바지 뜯는 일로 직업을 갖기 힘든 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남은 자투리를 파쇄해서 또 재사용하는 기시히를 꿈꾼다. 기시히를 통해 더 많은 쓰레기가 처리되길 원한다. 한국의 모든 청바지 쓰레기가 기시히를 거쳐가면 좋겠다. 

    에디터
    이선화
    포토그래퍼
    COURTESY OF CDY, KIS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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