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의 미래를 좌우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새로운 시작과 끝. 반가움과 아쉬움을 가득 담아 정리해봤다.

 

메종 키츠네
마커스 클레이튼

파리와 도쿄의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메종 키즈네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마커스 클레이튼을 영입했다. 그는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후 장폴 고티에,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루이 비통 스튜디오를 거처 지방시, 발망, 베르사체 등 다양한 곳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최근에는 리한나와 LVMH 합작 브랜드인 펜티와 골든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앞서 메종 키츠네에 게스트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이력이 있다. 2020년부터 브랜드에 합류했지만 이제야 공식적으로 메종 키츠네를 이끌 수장으로 임명된 것. 메종 키츠네는 2022년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아 마커스 클레이튼의 참여와 더불어 캡슐 컬렉션과 다양한 협업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그는 미디어와 바이어들에게 선보일 2022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준비하며, 2022년 6월에 파리에서 열릴 2023 봄/여름 시즌 컬렉션을 통해 본격적으로 진일보한 새로운 모습의 메종 키츠네를 소개할 계획이다.

 

PIETER MULIER BY PIERRE DEBUSSCHERE

알라이아
피터 뮬리에

영화 <디올앤아이> 속 라프 시몬스 옆에 항상 붙어 있던 그 남자! 라프 시몬스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의 오른팔이자 믿음직한 동료. 라프 시몬스와 질 샌더, 크리스찬 디올과 캘빈 클라인까지 내로라하는 글로벌 패션하우스에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온 디자이너, 바로 피터 뮬리에였다. 지난해 그가 알라이아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낙점된 후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첫 번째 컬렉션이 2022 봄/여름 시즌에 공개됐다. 여성의 몸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여겼던 아제딘 알라이아의 유산에 뛰어난 쿠튀르 기술을 담은 파격적인 실루엣의 룩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알라이아의 아카이브가 미니멀리스트를 만나면 이렇게 된다. 간결하고 경이롭게.

 

겐조
니고

겐조가 지난 9월 20일부터 오프닝 세레모니의 움베르토 레온, 캐롤 킴과 8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일본 스트리트 컬처의 제왕 ‘니고’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니고가 겐조로 간다고? 우려보단 설렘이 먼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이프를 론칭해 도쿄의 스트리트 패션 신을 하이엔드로 이끈 주인공. 이후 베이프를 떠나 다시 휴먼 메이드를 만들어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다양한 행보를 보여왔으며, 퍼렐이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을 만들 때에도 퍼렐 옆엔 니고가 있었다. 또 2020년에는 버질 아블로와 함께 루이 비통의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고. 미디어를 통해 자기의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갈망을 부르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이기에 겐조의 2막이 더욱 기대된다. 이 글이 소개되었을 때쯤이면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이 공개되어 있겠다.

 

MATTHIEU BLAZY PHOTOGRAPHED BY WILLY VANDERPERRE

보테가 베네타
마티유 블라지

혜성처럼 등장해 ‘뉴 보테가’ 시대를 연 다니엘 리가 2022 봄 컬렉션 ‘Salon03’을 끝으로 하우스와 이별을 고했다. 서로 간의 원만한 협의를 통해 브랜드를 떠났다고 했고, 곧이어 약속이나 한 듯 뉴페이스의 소식을 전했다. 1984년 프랑스 파리 출생의 마티유 블라지가 새로운 보테가 베네타를 맡는다는 얘기. 그는 라프 시몬스의 남성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 셀린느, 그리고 캘빈 클라인을 거쳐 켜켜이 내공을 쌓아왔으며 2020년, 보테가 베네타의 레디 투 웨어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을 이어왔다. 꽤나 갑작스러운 발표였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정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 마티유 블라지의 첫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은 오는 2월에 공개된다. 얼마 안 남았다.

 

루이 비통, 오프화이트
버질 아블로

살다 보면 눈앞에 벌어진 일을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지난 11월 28일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 소식이 그랬다. 버질 아블로가 2년간의 희귀암 투병 끝에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2 자신의 첫 번째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을 거쳐 2013년 오프화이트를 성공 가도에 올려놓은 후 2018년 마침내 루이 비통 남성복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시작을 알렸다. 그의 첫 번째 루이 비통 컬렉션이 공개된 후 절친이었던 칸예와 눈물의 포옹을 나눈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루이 비통의 최초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시작은 이토록 감동적이었고, 이후로도 버질 아블로는 천재적인 선구안으로 패션, 아트,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성실하게 보여준 아티스트로 기억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틀 후 열린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 비통 쇼엔 그가 없었지만 밤하늘에는 <Virgil was here (버질 아블로는 이곳에 있었다>)는 문구가 유난히 반짝였다.

 

베트멍
구람 바잘리아

2019년 9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베트멍을 떠난 후 꽤나 긴 시간 공석이었던 디렉터의 자리를 동생 구람 바잘리아가 채우게 됐다. 그는 베트멍의 공동 CEO로서 브랜드의 경영을 맡아왔으며 세컨드 브랜드 ‘VTMNTS’를 이끌며 다양한 사업을 이끌어왔다. 구람 바잘리아는 지난 12월 인스타그램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제 내가 등장할 시간이야’라는 의미심장한 글로 이 사실을 알렸고, 2022-23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부터 공식적으로 브랜드를 이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임을 공표했다. 그가 디렉터를 맡은 베트멍의 첫 번째 2022 가을/겨울 컬렉션은 비트코인, 반도체 등이 연상되는 다양한 코드를 담은 오버사이즈 룩이 가득했다. 아직은 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차차 바꿔가겠지. 안 바뀌어도 좋고.

 

로샤스
샤를 드 빌모랭

처음엔 모델인 줄 알았다. ‘디자이너가 이렇게 잘생겨도 되나’ 싶을 만큼 수려한 외모의 25살 젊은 디자이너 샤를 드 빌모랭을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테다(실제로 2016년 발렌티노와 구찌 런웨이에 서기도 했다). 2019년 프랑스 파리 의상조합패션학교를 졸업하고, 2020년 프랑스 오트 쿠튀르 역사상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를 마치며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루키다. 지난해 로샤스의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를 드 빌모랭이 임명되자 패션계는 또 한 번 기대와 우려를 보냈고 마침내 그의 첫 번째 로샤스 레디 투 웨어가 2022 봄/여름 시즌 세상에 공개됐다. 우아한 프랑스 브랜드 로샤스는 어떻게 모습이 바뀌었을까? 에디터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조금은 예상했다. 특유의 기이하고 초현실적 아름다움을 입은 로샤스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걸. 강렬한 컬러, 풍성한 프릴과 러플, 해체주의를 표방한 대담한 조합으로 불타오르는 시적 세계를 표현했다고. 파리의 지하세계로 빨려 들어간 순진했던 로샤스의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