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에 생리가 끝 날때

생리가 끝난다고 우리에게 자유가 펼쳐질까?
‘완경’이라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게 주어지지 않는다.

완주했습니다

몇 번이나 스페인에 드나든 끝에 드디어 충실한 가이드가 되어 친구를 바르셀로나로 이끌었을 때, 친구가 보인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는 몬주익 언덕이 제일 좋았어.” 가우디의 이것저것도 아니고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파빌리온도 아닌, 몬주익 언덕? “막상 올라와보니 야… 이게 언덕이냐? 산이지. 인간이 이걸 해냈다? 나 정말 감동했어.” 황영조 선수의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친구가 말했다. 버스를 잘못 탄 우리는 그 언덕을 잠깐 걸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는데 누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그 언덕을 뛰어 완주했고 심지어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언덕을 올라보면 안다. 그게 인간 능력치를 초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가 슬슬 그 시기가 다가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몬주익 마라톤 완주’였다. 오랜 시간 더디지만 꾸준히 달려온 ‘월경’이라는 긴 길을 드디어 마친다는 것. 솔직히 40여 년을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은 온갖 불편함과 불쾌함과 통증과 들쭉날쭉하는 감정선을 겪고 인간 능력치 이상의 과정 속에 살다가 결승선에 도달했는데, 이걸 두고 ‘폐경’이라 하는 건 억울하고 부당하다. 이 긴 과정을 완성했다는 완경이라 해야 옳다. 그리고 나는 이제 완경의 단계에 돌입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매달의 과정도 고통스럽지만, 결승점을 향해 가는 마지막 스퍼트 단계도 꽤나 괴롭다. 이 글을 읽는 <얼루어> 오디언스 분들이 완경과 아직 거리가 있을지 몰라 좀 덧붙이자면, 완경 5년 정도 전부터 생리나 몸의 상태가 이상해지면서 준비 단계에 돌입한다. 한마디로 예측불허. 주기를 제멋대로 당겼다 미뤘다 난리를 치고, 어느 날은 생리대가 아까울 정도로 찔끔거렸다가 어느 날은 외부 활동을 못할 정도로 대폭발한다. 아 이젠 정말 끝났나 보다 하면 또 몇 달 지나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또 쉬었다 찾아오고를 미친 듯이 반복해서 생리대를 버릴 수도 없다. 그러는 와중에 생리대 파동이 있었고 벽장에는 각종 새로운 생리대, 탐폰, 생리컵, 밴드 등이, 전화기에는 각종 생리 주기 앱이 쌓여갔다. 그리고 생리가 끊겨 그들이 더 이상 내게 쓸모 없는 것이 되었을 때,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됐다. 이른바 ‘폐경기 증상’이라 뭉뚱그려 말하는 것들, 뼈마디 통증(특히 고관절), 질 건조증, 열감 등등이다. 친구 하나는 한창 멋부림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추위를 못 참아 빨간 내복을 입는 바람에 놀림감이었는데 너무 일찍 완경이 찾아오면서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는 체질이 되었고 자신에게 풍기는 괴로운 냄새에 지금도 힘들어한다. 물이라곤 당최 마시지 않는 나 또한 머리맡에 물컵을 놔두는 게 습관이 됐을 정도로 자다가 수십 번씩 벌떡벌떡 깨게 하는 열감 때문에 괴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힘든 건 이유도 알 수 없이 휘몰아치는 우울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우울과 엄마의 죽음에 대한 우울과 내 신세 한탄에 대한 우울과 한데 의기투합한 갱년기 우울을 겪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늙고 병들고 초라하고 낯선 여자가 있었다. 친구가 원수를 향해 “조기폐경이나 와라!”라 했던 게 얼마나 엄청난 저주의 욕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미루고 벼르다 병원을 찾았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정리도 안 된 상태였다. 선생님은 일단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서 ‘이왕 온 김에’라며 여성 질환 관련된 암 검사까지 붙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겪는 것에 비해 허무하리만치 단순하게 생긴 약 하나를 처방했다. “사실 과거엔 폐경 후에 얼마 안 돼 죽을 만큼 명이 짧았죠. 그런데 지금은 그후에도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불편 없이 ‘사람답게’ 살려면 이 약을 드세요.” 피임약 모양의 호르몬제를 며칠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그리고 상자째 서랍에 처박았다. 유방암 가족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쯤은 스스로 이겨보겠다는 허무맹랑한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게 정말 사람답게 살지 못할 과정이라면, 내가 내 자신에게 사람다운 약을 처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년 훨씬 넘게 계속해온 일본어 학습지, 난생처음 시도하는 고관절 강화 필라테스, ‘스우파’ 덕질, 홀로 되신 아버지에게 더 마음 쓰며 노동력 제공하기, 소중한 친구들과 더 함께하고 더 (술) 마시기, 시도 때도 없이 막 주접스럽게 울기… 요즘의 나는 누군가에겐 쓸데없을 모든 것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다. 별거 아닌 것에도 막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에게 완경이 주어지는 이유는, 그제야 찬찬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작 제일 중요한 숙제(쓰고 있는 책의 완성)는 뒤로 미루며 못하고 있지만 지금도 완경의 마무리 단계로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좀 걸어가면 어때. 좀 쉬어가면 어때. 조금만 더 힘내자. 완주의 날이 머지않았다.

– 이현수(미디어2.0 편집장)

미안한 마음

그 무렵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다. 차라리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했다. 갑자기 화를 냈고, 갑자기 울었고, 갑자기 괴롭혔다. 그럴 땐 미친 사람 같았다. 길게는 2년, 짧게는 1년여의 그 시간.

엄마는 갱년기였다. 엄마만 유난했던 걸까? 나중에서야 많은 여성들이 엄마와 비슷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엄마는 ‘화증’으로 왔지만, ‘울증’으로 온 어머니들도 많았다. ‘울증’은 ‘울증’대로 비극이라 우울함이 신체적 건강을 망가트렸다. 덥다, 뜨겁다 하며 잠을 못 이루는 건 폐경기의 모든 여성이 겪는 일이라 이런 증상이 일과 일상에 영향을 주었다. 엄마가 그 시기를 겪을 때 나는 갓 서른이었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나의 기질의 얼마간은 엄마한테서 왔다는 게 점점 분명해졌다.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투는 더 처절했다. 엄마는 모든 것을 후회했다. 내 부족함은 그렇다 치고 30년 전의 한을 털어놓을 때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의 비합리성을 공격했고, 약점을 찾아서 물어뜯었다. 엄마는 웃다가도 갑자기 터지는 시한폭탄이었다. 다행히 폭탄은 스스로 터지기를 멈추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어떤 시기를 애써 묻었다.

메리 루플의 <나의 사유재산>에 실린 여러 글 중 ‘멈춤’은 생리의 멈춤, 즉 폐경을 다룬다. 그는 19세기 정신병원 수용소에 입원한 여자들 중 40대 이상의 입원 사유가 모두 ‘월경 중단’이었다고 언급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정신이 나간다는 뜻이다’, ‘마흔다섯 살의 경험과 일상을 가진 열세 살짜리가 된다,’ ‘삶의 배치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애정이 넘치든 간에, 빠져나가고 싶어진다’… 여느 책처럼 읽어내리다 독백하듯 이어지는 작가의 글들이 바로 엄마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말해, 엄마만이 느끼고 있던 감정과 고통의 이야기였다. 또한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터였다.

최근 10년간의 여성주의 무드로 여성의 심리와 몸에 대한 책도 더 많이 등장했다. 다시 스타인키의 <완경일기>나 <불 위의 여자> 같은 책을 읽으면서 폐경기, 갱년기의 여성에게 생기는 일을 비로소 알았다. 어떤 고통이 생기고, 어떤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도 말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폐경기에 접어드는 어머니가 있다면, 혹은 나 자신이 만 35세를 넘었다면(<불 위의 여자>를 쓴 산부인과 전문의 실라 드 리즈는 만 35세 이상부터 몸이 달라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이야기를 책으로 봤다. 그제야 나는 물론 엄마 역시 아무것도 몰랐음을 알았다. 1950년대에 태어난 엄마는 아이 셋을 낳았으면서도 자기 몸에 대해선 몰랐다. 엄마는 호르몬 처방 같은 것을 나약함으로 치부했지만, 호르몬 처방이야말로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의학적 도움이었다. 갱년기라는 것은 한 여성의 생식 기능이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시간 앞에서 약해지는 시기이고 그건 정신력 같은 걸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엄마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에 갔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순간조차 생리는 지긋지긋한 굴레다. 중요한 시험은 물론 아주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도 우리를 방해한다. 여름의 긴 고통을 말할 필요도 없고, 촬영 중에도 화장실에 갈 틈을 잰다. 건강 검진도 마음 편히 잡을 수 없다. 그런 생리가 끝날 때조차 해방감을 느끼는 대신 여러 신체와 정신의 변화를 겪어야 하고, ‘여자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사회적 낙인까지 찍힌다. “갱년기인가 봐”, “생리 중인가 봐”라는 말은 지금도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쓰인다. 누구도 자의로 생리를 시작할 수 없고, 자의로 멈출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억울한 욕이다. 왜 여성의 몸은 늘 비밀과 무지와 비난으로 둘러싸여 있나. 그 대신 여성들의 건강을, 닥쳐올 변화를 더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생에 생리가 끝날 때, 모든 여성들에게 폭풍 같은 한때가 마침내 찾아올 때, 누구도 놀라지 않길, 외롭지 않길, 모쪼록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다.

–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 

    에디터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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