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의 세대가 열린 후 처음으로 ‘데스크톱’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랩톱을 옆구리에 끼고, 어디든 간다.

 

두 달 전, 나는 일생 일대의 결정 앞에 있었다. 회사 PC 교체 주기가 돌아온 시점에서, 처음으로 회사가 나의 의사를 물은 것이다. “데스크톱으로 교체하실 건가요? 아니면 랩톱으로 교체하실 건가요?” 처음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 후 지금까지 데스크톱만을 사용해왔다. 데스크톱만이 나의 PC이며, 화보 사진 등 비주얼 작업을 하려면 모니터로 보는 게 시원하고 좋으니까.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족이 있었다. ‘랩톱을 선택한 에디터는 기존 모니터를 연결해 계속 사용할 수 있음.’

내 앞자리에 앉은 후배 최지웅은 당연하다는 듯 랩톱을 선택했고, 수령하는 즉시 트랜스포머를 닮은 거치대까지 주문했다. “형한테 물어봤는데, 이번에 주는 랩톱이 꽤 좋은 거래요. 보세요, 가벼워요.” 그의 자리는 거치대에 올려 20센티미터쯤 공중에 떠 있는 랩톱, 모니터, 키보드, 혈관처럼 이어진 선으로 완성되었다. “어휴, 보기만 해도 복잡하다”는 말로 새 데스크톱을 켰지만 약간의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사실, 회사의 엄격한 보안 시스템 때문에 정산이나 기안 등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려면 반드시 사무실에 와야만 한다. 랩톱을 선택하면 아무 때나 접속할 수도 있다고 했다(VPN을 신청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더욱이 팬데믹 이후 종종 재택에 돌입하면서 줌 회의를 할 일도 늘었다. 그런 면에서는 언제든 업무에 돌입할 수 있는 랩톱이 편하다. 나도 랩톱을 선택했어야 했나?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라는데 말이야. 아니야, <얼루어> 편집부 최장기 근무 중인 에디터로서 내가 지금까지 일한 글이며 사진이며 영상이며 데이터가 많고도 많은데, 과연 이 얇디얇은 노트북에 다 들어갈 수 있겠냐고. 오직 데스크톱만이 나를 지켜줄 것 같았다.

“지금 100기가밖에 안 쓰시는데요.” 총무팀의 판정은 달랐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 용량이 겨우 100기가밖에 되지 않아, 400기가인 랩톱에 다 들어가고도 300기가가 남을 정도라는 거다. 지금까지 사용량을 보면 20년은 더 일해도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 다시 랩톱을 선택하게 했다. 백업 시간도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집에 있는 데스크톱 역시 정리한 지 오래라, 그렇게 데스크톱과 영원히 작별하게 됐다. 키보드와의 작별은 더 쉽지 않았다. 장기간 ‘키보드를 바꾸면 원고가 안 써진다’는 핑계로 쓰던 키보드를 고집해왔지만 노트북과 호환이 되지 않아 결국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글이 안 써질 때 애꿎은 키보드만 두들겼던 시간들. 키보드는 나의 전우이자 분신이기도 했다. 곤도 마리에는 아니지만 키보드를 가만히 안고, 그동안 무수한 마감을 함께해준 키보드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넨 후 박스에 담았다.

그렇게 랩톱만 사용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출근하면 책상 밑 빈 공간에 손을 휘젓는다. 전원을 켜려는 습관적인 행동인데, 이미 데스크톱 본체는 거기 없다. 그런 준비운동을 한 후에야 내 손은 머쓱하게 20센티미터 위에 떠 있는 랩톱의 전원을 향한다. 아직도 내 10여 년의 시간이 이 얇은 노트북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파일이라는 것은 바이트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런 시간의 저장소만은 두툼하고 무거워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컴퓨터’를 ‘MS-DOS 디스켓’으로 배운 1980년대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Z세대는 도스가 뭐냐고 물으실 텐데, 윈도의 뿌리입니다. 디스켓은 뭐냐면 말입니다….

흔히 80년대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두루 경험했기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풍요로운 세대라고 한다. 청소년 시절 삐삐를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휴대폰과 스마트폰 세대가 됐지만, 나도 이 속도감이 버겁다. 랩톱을 선택한 마음속에는, 편리함도 있지만 뒤처질 수 없다는 마음도 있다. 증강현실로 몬스터를 잡아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메타버스는 또 뭐란 말인가. 메타버스보다는 영원할 것 같았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26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말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달까. 이렇듯 디지털 세대 안에서도 세대 격차는 느껴진다. 미국의 뉴스 웹사이트 <더 버지(The Verge)>는 ‘File Not Found’ 기사에서 PC에 파일을 저장하는 방식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숙제를 원드라이브나 드롭박스 같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제출해온 Z세대는 디렉토리나 폴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페이스북, 유튜브도 정보를 분류하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교수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90년대생 후배들의 PC 바탕화면을 보고 경악한 일이 떠올랐다. 이들은 더 이상 파일을 바탕화면에 저장할 수 없을 때까지 저장한다. 여기서 어떻게 원고를 찾나 싶지만, ‘검색’을 하면 될 일이고 저장은 ‘원드라이브’가 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나는 아직도 ‘클라우드’를 의심하는 교수님 같다. 매달 마감마다 월 폴더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월 폴더가 12개 모이면 연 폴더를 만들고, 그 연 폴더가 저장된 ‘얼루어 텍스트’ 폴더가 있다. 나는 랩톱을 바꾼 후로도 내가 아는 폴더들을 열어보면서, 정말 내 데이터가 몽땅 랩톱으로 옮겨져 있음을, 내 시간과 작업물이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고 보관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외장하드에 복사까지 해두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안심하는 디지털 세대가 된 것이다.

요즘 나는 랩톱을 품에 안고 돌아다니지만 마왕이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번 안절부절못한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갈 때에도 발렛을 맡길 때면 반드시 가지고 내리고, 차에 두면 도난당할까봐 꼭 집에 가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후 내 자리의 텅 빈 거치대를 본 후에야 뒤늦게 집에 노트북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닫고 망연자실했다. 데스크톱을 선택한 후배 컴퓨터를 빌려 썼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일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