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뷰티 브랜드들의 관심은 ‘제페토’로 쏠린다. 가입자 2억 명을 돌파하며 유수의 기업들과 대형 컬래버레이션을 척척 해내는 메타버스 앱, 제페토. 그곳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자그마치 2년이다. 팬데믹으로 우리의 삶이 뒤바뀐 시간. 짧지 않은 이 시간은 우리네 삶 속에 많은 흔적을 남겼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재택이 일상이 되었고, 왁자지껄한 술집보다 친구 집에서 오붓하게 마시는 와인이 익숙해졌다. 메타버스 붐도 맥락을 같이한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 생경했던 콘셉트도 잠시, 지금은 어딜 가나 메타버스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앱을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구찌, 나이키, 디즈니 등 글로벌 브랜드가 제페토와 앞다투어 협업을 했고 뷰티 브랜드들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탔다.

호기심에 회원 가입을 했다. 먼저 나의 분신인 아바타를 설정했다. 얼굴형, 눈, 코, 입은 물론이며 점 위치까지 지정할 수 있다.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패션 스타일은 얼마나 다양한지 스크롤을 끝없이 내려야만 했다. 이토록 세세한 커스터마이징 기능 덕분에 제페토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아바타를 마주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 마주친 브랜드는 디올 뷰티였다.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가 제안하는 룩을 아바타에 적용해봤다. 제품도, 도구도, 금손도 필요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아티스트의 유려한 메이크업이 완성되는 편리함이란! 나스의 체험존을 들러 포토부스에서 촬영도 했다. “TV보다 스마트폰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Z세대들이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죠. 증강현실과 AI를 활용한 첨단 가상 뷰티 기술의 도입은 온라인 시장에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겁니다.” 나스 PR&커뮤니케이션팀 정재은 대리의 말이다. 제페토 앱은 이용자의 80% 이상이 10대일 정도로, 주로 Z세대가 사용한다. 새로운 소비자를 공략하고자 하는 브랜드에게는 미래 세대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창구인 셈. 토니모리는 가상 인플루언서 ‘토니’를 구현하며 ‘토니모리 제페토 월드점’을 오픈해 루프탑, 점프맵, 드라이빙존과 같은 재미 요소도 더했다. “Z세대 사이에서는 제페토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 놀이 문화로 정착되었어요. 인증샷 이벤트도 반응이 좋았고 Z세대를 겨냥한 디자인의 백팩, 캐릭터 아이템 등의 판매량이 급증했죠. 높아진 관심을 실감하고 있어요.” 토니모리 DT혁신부문 정경희 상무의 말이다.

탬버린즈도 하우스 도산 매장을 제페토 월드에 그대로 옮겼다. 탬버린즈 제품은 물론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누데이크 디저트까지 만나볼 수 있다. 침대에 누워서도 친구와 만나 선글라스를 써보고, 화장품을 구경하고, 케이크를 사 먹을 수 있는 것. 함께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는 기능까지 갖췄으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 세계가 아닌가!

10대를 주요 타깃층으로 갖는 엔터테인먼트사들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주목하고 있다. 2020년 10월, 하이브와 YG엔터테인먼트가 각각 70억원과 50억원을 제페토에 투자했다. 블랙핑크는 신곡의 뮤비를 제페토 아바타 버전으로 제작해 공개했고, 팬사인회까지 열어 자그마치 4600만 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트와이스, ITZY 등 최근 활동하는 아이돌의 무대 헤어, 패션 아이템 대부분을 제페토 상점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고 한정판 굿즈까지 출시된다.

아직까지 제페토에서 아바타용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 외에 실물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브랜드가 이토록 메타버스 산업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시간과 공간의 구애 없이 원하는 제품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 팬데믹 시대에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브랜드 가치를 고객에게 인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경희 상무는 ‘현실세계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브랜드 가치를 보다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메타버스 플랫폼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잠재 고객으로 여겨지는 Z세대는 숨쉬듯 디지털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드러내고 꾸미는 데 적극적이다. 이에 각종 예능과 연예인들이 ‘부캐’ 콘셉트로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요즘 트렌드가 더해져, Z세대들은 가상의 나(아바타)를 통해 다양한 패션, 뷰티 경험을 쌓아 인지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브랜드는 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디지털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익숙하지 않다면 새로운 탐험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또는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 간발의 차로 Z세대에서 탈락한 에디터도 제페토에 가입한 직후에는 너무나 막막해 인터넷 강의라도 찾아보고 싶은 심정이었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며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상태. 실제로 ‘제페토 하는 방법’이 검색어 자동 완성 리스트에 올라 있고, 블로그와 유튜브에는 튜토리얼이 넘쳐난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런저런 노력으로 나는 나의 분신을 통해 가상으로 옮겨간 지구에서 눈치 보지 않고 더 많은 경험과 재미를 느꼈다. 다만 이곳도 현실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다. 마음에 드는 것은 왜 이리도 비싼지. 낮은 가격 순으로 아이템을 정렬하는데 왠지 현실 세계에서의 쇼핑과 별 다를 것 없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에스티 로더 여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가 있을 뿐!’ 끈질기게 제페토 월드를 배회하다 보면 어느새 메타버스에 푹 빠진, 또 하나의 멋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Z세대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