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흐르듯 앞을 향해 전진하는 고민시의 시작.

 

블랙 벨벳 재킷, 블랙 벨벳 팬츠, 화이트 셔츠는 모두 미우미우(Miu Miu). 발레 스타킹, 핑크 레그워머는 바디래퍼스(Body Wrappers). 발레 포인 슈즈는 고민시의 것.

마스크를 한 채 머리에 수건을 돌돌 말고 스튜디오에 들어오는데 동그란 눈밖에 안 보였어요. 그새 또 다른 사람이 됐네요.
비주얼에 있어서 온 앤 오프가 확실한 편이랍니다. 흐흐. 평소엔 선크림만 바르고 그냥 ‘후리’하게 다니는 편이거든요. 일할 땐 이렇게 쫙 변신하고요.

‘짠’하고 달라지는 그런 순간을 좋아해요?
스위치를 켰다가 껐다가 하듯 그렇게 할 때 좀 좋아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부산한 스튜디오 한복판에서 인터뷰하는 건 어때요? 자기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이런 거 너무 좋죠. 별로 상관 안 해요. 크게 영향받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대전 사람이라면서요?
‘노잼’ 도시?(웃음) 자연재해조차 알아서 피해간다는 그 대전에서 나고 자랐어요. 유명한 관광지나 즐길 거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진 않지만 고향이고 집이니까 전 좋아요. 깨끗하고 조용해요. 덕분에 큰 기복 없이 아프지 않고 평탄하게 자란 것 같기도 해요.

고민시라는 이름은 어때요? 소리내어 발음할 때 그 음률이 좋아요. 고민시, 민시 고, Go 민시. 다 달라요.
제 이름 좋아해요.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요. 중성적인 느낌도 있고요. 뜻도 좋고요.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본다.

간결하고 정확하죠. 그런 이름이 깃들어서 인지 태도 또한 그렇다고 느꼈는데 어때요?
맞아요. 되게 잘 보신 것 같아요. 그런 성향의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거 꼭 해야 하고.

핑크 풀오버는 주느세콰 앙상블(Je Ne Sais Quoi Ensemble).

요즘 사람, 지금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또 강하게 와 닿아요.
제가 지향하고 있는 바입니다. 너무 원하고 듣고 싶은 말인데, 저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몰라요.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취향 같은 걸 보면 요즘 애 같지 않다고들 하거든요. 제가 봐도 그렇고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좀 쿨하고 힙하게, 클래식한 걸 좋아하는 내면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저만의 매력과 색깔이 생기지 않을까, 더 짙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요즘 특히 더 저만의 색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이유가 있어요?
제 얼굴 안에 닮은 꼴 얼굴이 많다는 말을 되게 많이 듣거든요. 참 신기하고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이젠 고민시만의 색을 찾고 싶기도 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저만의 색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배우로서도 그렇고.

오늘 여러 번 그 닮은 꼴 얼굴의 이름을 말하려다가 말았어요. 고민시는 그냥 고민시니까. 시대를 넘나드는 얼굴이 여기 하나의 얼굴에 다양하게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메이크업을 안 하고 수수하게 있으면 2000년대 초반 밀레니얼 세대의 얼굴로 보인다고들 하고요. 화려하게 꾸민 날은 되게 요즘 얼굴 같다고 하세요. 제가 느낄 땐 그래요. 이게 다 온 앤 오프가 확실한 저의 비주얼 격차 때문이 아닌가.(웃음)

지금 자신이 몇 살쯤이라고 생각해요?
음, 아직 중학생? 하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아, 아니다. 저 요즘 좀 때 탄 거 같아요. 중학생 안 될 것 같아요. 순수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순수함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요. 전에는 사소한 거에도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도 알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면서 살았는데 꽤 많이 무뎌진 것 같아요.

요가와 발레를 열심히 하는 것 같더군요. 여전히 재미있어요?
요가를 훨씬 먼저 시작했는데요. 당시에 정신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어요.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죠. 생각이 많았어요. 병원도 찾아가봤고요. 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수련을 통해서 답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몸을 깨우고 움직이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죠. 수업 첫날 정말 펑펑 울었는데요. 그 순간 다 치유가 됐어요. 요가를 하면서 생긴 코어의 단단함이 너무 좋아요. 신체적 코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신의 코어가 이렇게 단단해졌어요.

블랙 니트 드레스, 슬리브리스 크롭트 폴로 톱, 블랙 스트라이프 스타킹, 슈즈는 모두 프라다(Prada). 더블 레이어 발레 레그워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가가 마음에 끼치는 그 영향이 신기하고 궁금해요.
요가를 하는 한 시간 남짓 삶의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어요. 동작 하나가 잘되면 그게 그렇게 기뻐요. 물구나무서기랑 비슷한 머리서기라는 동작이 있는데 그걸 성공하기까지 1년 정도 걸렸어요. 실패할 때마다 화가 났다가 눈물이 났다가 그랬는데 비로소 가능해졌을 때 오는 희열이 있어요. 요가를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이 삶을 살아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발레는 어때요?
<스위트홈> 때문에 시작했는데 이거는 요가랑 또 달라요. 가볍게 통통 튀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특히 선데이 모닝 발레는 최고예요. 인간으로서 리듬감과 유연함을 일깨워주더라고요. 요가와 발레가 주는 서로 다른 템포가 너무너무 좋아서 번갈아가며 하고 있어요.

2020년 가을에 만난 배우 예수정이 그랬어요. <지리산> 촬영을 위해 지리산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어때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천왕봉에도 올라갔는데 거기서 바라본 그 절경. 잊을 수가 없어요.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지만 좋았어요. 다 얼어붙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마저도 좋았어요.

쉴 땐 어떻게 해요?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쉴 때가 제일 힘들어요.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주변에서 휴식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제 젊음을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후회 없이. 나중에 후회하는 게 제일 싫거든요.

크림 컬러 티셔츠는 자크뮈스(Jacquemus).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2022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