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즐거운 공간, 구스테이크의 주인 김현석은 눈과 마음마저 재미로 흠뻑 채우고 싶다.

 

구스테이크. 스테이크 좀 먹으러 다니는 이들에겐 유명한 집이죠.
마니아들이 있죠. 2009년 가로수길에서 시작했는데 메인 스트리트에서 좀 떨어진 데였어요. 작게 시작했어요, 간판도 없이. 사람들 다 다니는 큰길에서 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마니아들이 찾아오거든요.

많고 많은 메뉴 중에 왜 스테이크였어요?
제가 스테이크를 좋아해요.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데 그때만 해도 먹을 만한 데가 마땅치 않았어요. 미국에서 먹던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어요.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웃음)

그렇게 한국에서 처음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이게 됐나요?
서울뿐 아니라 LA에도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드문 시기였어요. 뉴욕이나 시카고에 가야 있었죠. 그냥 말린다고 드라이 에이징이 아니거든요. 되게 민감하고 까다로워요. 적합한 방식을 찾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어요. 10kg의 생고기를 냉장 숙성하는 웨트 웨이징을 하면 그중 약 85%를 상품화할 수 있어요. 드라이 에이징을 하면 많아야 65% 정도만 판매할 수 있고요. 마르는 동안 수분이 빠지고 딱딱하게 굳은 겉면은 다 도려내야 하니까요.

드라이 에이징의 매력은 뭔가요?
맛있어요. 확실히 달라요. 건조 과정에서 고기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아미노산화 돼요. 고기에서 천연 조미료가 생기는 셈이죠. 농축된 진한 맛이 꼭 치즈 향 같기도 하고요. 부담스러울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단 먹어봐야 해요.

드라이 에이징 했을 때 가장 맛있는 부위는요?
안심과 등심을 다 먹고 싶으면 티본이나 포터, 풍성한 마블링의 기름진 맛이 좋다면 립 아이, 담백한 고기 맛을 즐기고 싶다면 스트립 로인이 좋아요.

‘프로야구 구단까지 가지고 있었던 준재벌 가문, 미국 유학을 한 건축가, 야심만만한 사업가였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오른 다음 스테이크 전문가가 된 사실이 흥미롭더군요. 
다 지난 일이죠, 뭐. 책 한 권 써도 될 법한 드라마틱한 인생이지 않아요?(웃음)

준재벌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기업을 하셨어요. 1960년대에는 가장 유명한 방직 회사 안 부러웠죠. 프로야구 구단도 가지고 있었고요. 잘됐다가 기울어지고 잘됐다가 기울어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사업이란 게 그렇잖아요. 다 정리하고 이제 뭐 먹고 사나 싶을 때 선택한 게 스테이크예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거,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어떤 곡절을 이겨낸 사람만이 내보이는 특유의 맑은 기운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좀 그래요.
태어나 보니 잘사는 집 아들이었는데 집이 망한 거죠. 쪽팔리거나 힘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따지고 보면 그 돈 내가 번 돈도 아니잖아요.(웃음) 건축가로 일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 미니멀리즘이에요. 심플한 게 좋아요. 그게 어렵죠. 세상 복잡한 걸 다 겪어봐야 그때 비로소 심플해질 수 있어요. 음식도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변한 건 있어요. 내가 나를 잃지 않고 가는 게 진짜 중요해요. 어렵지만 지켜내야 해요. 그걸 잘 지킨 덕분에 사람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행운이죠. 밥집 하는 데 도움이 돼요.

밥집 사장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네요. 
밥집 사장이죠. 고깃집 사장. 어릴 때 좋은 삶을 살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해요. 그때 보고 듣고 먹고 했던 것들이 지금 다 제 취향으로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볼 줄 알죠.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정말 멋있는 게 뭔지.

구스테이크의 ‘구(口)’를 주제로 카라스갤러리와 다섯 명의 작가 김안선, 이동욱, 초나리, 홍성준, 황혜정과 협업을 진행한 이유인가요?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그냥 재미있는 거 하고 싶었어요. 다섯 명의 작가가 ‘구(口)’를 모티브로 작업한 걸 한남동 구스테이크 733에 전시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손님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투표도 하고, 럭키 드로우로 선물도 드리고요. 카라스갤러리와 작가 선정을 비롯해 전시에 관한 방향성을 협의하면서 준비했어요. 재미있지 않아요? 난 그거면 돼요.

카라스갤러리의 화이트 큐브가 아닌 구스테이크733에 작품을 내보인 건 어떤 의미일까요? 화이트 큐브의 권위를 반대해요?
젊은 세대는 안 그런 것 같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전시장에 가는 걸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권위가 마음에 안 들죠. 여기 보면 그냥 식사하러 왔다가 편하게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잖아요. 작가 입장에서도 더 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고요. 처음 가로수길에서 장사할 때 일부러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어요. 클럽에서 나올 법한 음악이요. ‘이런 음악이 듣기 싫고 불편하면 굳이 여기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나름의 스크리닝이었죠. 기본적으로 캐주얼한 게 좋아요.

최근 구스테이크와 이어진 이태원로의 리움 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해외 유명 갤러리의 분점이 개관하는 등 한국 미술 시장의 거점이 되고 있죠. 
젊은 컬렉터도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그런 문화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부담 없는 가격에 소장하는 거요.

당신도 컬렉터의 한 사람이죠?
좋은 작품이 있다면 구입을 하죠. 근데 ‘너 컬렉터냐?’라고 묻는다면 ‘아닙니다’라고 해요. 저는 뭔가 딱 규정하거나 규정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골프도 다이빙도 서핑도 스키도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뿐이에요. 취미죠, 취미.

구스테이크733이 있는 이 자리의 묘한 지리적 특성을 좋아합니다.
여기가 그랜드 하얏트 서울과 이태원역의 중간쯤이고 한남동과 이태원동의 경계이기도 해요. 이 길에서 상업 행위를 할 수 있는 건물이 여기밖에 없어요. 각국 대사관과 재벌 집이 둘러싼 섬 같아요. 굉장히 아이코닉하죠.

12월은 스테이크집의 극성수기죠? 추천 메뉴가 있다면요?
일 년 중 크리스마스가 제일 바빠요. 신사동의 구스테이크528이든 한남동의 구스테이크733에서 크리스마스 세트 메뉴를 드시면 됩니다. 그 안에 다 있어요.(웃음)

‘입 구(口)’를 다시 봤어요. 먹고 말하고 토하고 사랑을 나누는 게 전부 입이네요. 그중 최고는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이죠.
입이 즐거운 집이길 바라며 구스테이크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모양이 심플하기도 하고요.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처럼 좋은 게 또 없잖아요. 그러다가 너무 좋으면 뭐 뽀뽀도 할 수 있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