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월드

한 작가가 자신의 ‘월드’까지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부여한 것은 다름아닌 독자들이다. 그만큼 정세랑 작가에 대한 지지와 사랑은 대단하다. 신작은 물론 구작까지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고 있고, 서점가에서는 정세랑 작가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정세랑 작가는 올해 등단 후 첫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펴냈다. 여행의 추억 속에 작가의 사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어, ‘정세랑 월드’의 세계관이 어떻게 구성되어왔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선정한 ‘제5회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작가’의 주인공도 정세랑이었다. 모두가 정세랑을 사랑해!

 

끝없는 꿈

누구나 자신의 삶을 ‘새로고침’ 하고 싶다. ‘그때 그것을 선택했더라면’, 또는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회한은 항상 인생과 함께 걷는 친구 같다.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인생을 다시 살고 싶은 상상을 꿈처럼 펼쳐놓은 소설이다. 죽기로 결심한 노라가 당도한 곳은 죽기 전에 열리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책장 가득한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라가 살 수도 있었던 인생이었다. 노라에겐 다시 기회가 주어지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여러 번의 삶을 살아보며 본래의 삶을 되찾는 노라의 이야기에서 치유의 힘을 발견했다는 독자가 많다. 입소문으로만 20만 부 이상 판매되며 2021년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방탄소년단의 리얼리티 ‘인더숲 BTS편 시즌2(In the SOOP BTS ver. Season 2)’에서 RM이 읽고 뷔가 오디오북을 듣는 책이 이것이다.

 

전집 완성

마니아층이 두꺼운 작품의 전집 출간은 그 자체로 화제다. 휴고상과 네뷸러상 등을 수상한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로 손꼽힌다. 황금가지에서 영화 개봉에 맞춰 신장판 전집을 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01년 이후 20년 만의 신장판으로, 기존 18권을 6권으로 정리했다. 세미콜론은 1990년대 국내 소개되었던 <세일러문>의 완전판(전 10권)을, 거북이북스는 신일숙의 1986년 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레트로 복간판(전 20권)을 펴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독자 펀딩으로 1억2천여만원을 모았다. 그만큼 독자들이 기다리고 원했다는 반증으로 모두 자신만의 새 책을 갖게 됐다.

 

어쩌면 이 책

아직 읽지 않았다면, 연말엔 이 책.

<노마드랜드> | 제시카 브루더
몸을 누일 곳이라곤 낡은 자동차뿐인 홈리스의 삶이 박탈이 아니라 해방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 2008년 <빅쇼트>의 광란 이후, 경제위기로 인해 길 위로 내몰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2만4140km를 여행하며 길 위의 삶을 담아낸 이 르포는 영화보다 더 고독하고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 김슬기(매일경제신문 기자)

 

<법정의 얼굴들> | 박주영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없다. 법은 만인에게 군림한다. 한마디의 판결로, 몇 줄의 판결문으로. <법정의 얼굴들>은 짧고 간명한 법의 언어 아래 갖가지 표정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숱한 인생을 떠올리는 책이다. 법의 한계와 법의 가능성을 제법 인간적인 영역에서 함께 고민하게 한다. 그 고민의 끝에 다다라서야 법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 서효인(안온북스 대표)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 파울로 코녜티
<여덟 개의 산>도 그랬듯이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코녜티는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면서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매번 써낸다. 이 책은 소피아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소피아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며, 다른 생의 주인공들과 관계를 맞으며 살아간다는 진실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

 

<일몰의 저편> | 기리노 나쓰오
기리노 나쓰오의 팬이라면 <일몰의 저편>을 읽고 실망 아닌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작가보다 흡인력 있고 강렬한, 한마디로 ‘쎈’ 소설을 썼던 나쓰오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이 소설은 기대에 못 미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의 시대가 소설과 소설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리얼하면서도 판타지한 방식으로 고백하듯 폭로하는 이 작품은 지금 쓰일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논쟁적인, 한마디로 ‘쎈’ 소설임에 틀림없다.
– 박혜진(민음사 한국문학팀 팀장)

 

문학상의 향방

노벨문학상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섬 출신으로 영국에서 수학한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수상했다. 소설과 산문을 발표한 작가로, 아직 국내 번역 출간된 단행본이 없다.

대거상 
윤고은 | <밤의 여행자들>
대거상은 영국추리작가협회(CWA)에서 시상하는 상으로, 세계추리문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 영역본이 대거상 번역 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작가가 국내 201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2021년에 다시 조명받았다.

페미나상
데버라 리비 | <살림비용>
페미나상은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1903년 공쿠르상의 심사위원이 전원 남자로 구성된 것에 반발하여 전원 여성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한 문학상이다. <살림비용>은 페미나상의 2020년 수상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플레이타임에서 출간되었다.

대산문학상
제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는 최은영, 김언, 차근호 등이 선정되었다. 최은영 작가는 여성 4대를 그린 장편소설 <밝은 밤>으로 소설 부문을, 시인 김언은 <백지에게>로 시 부문을, 극작가 차근호는 <타자기 치는 남자>로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선택의 키워드 

철학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김영하 작가가 지난 6월 ‘김영하의 북클럽’에서 소개하며 더 많은 독자를 만났다. 철학자 에릭 와이너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이 천착한 주제를 쉽고 짧게 정리한 책이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등의 목차로 호기심을 끈다.

어린이
과거 어린이였으나 이제 어른이 된 이들이 책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과 화해하고 보다 더 나은 어린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큰 감동과 호응을 받았다.

주식
비트코인과 주식 투자 붐이 일면서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가 사랑받았다.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등이 그것.

 

역시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행성어 서점>, <지구 끝의 온실>. 지금 서점가 소설부문 상위권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책들은 놀랍게도 모두 1993년생 작가 김초엽 작가의 신작이다. 그만큼 김초엽 작가를 지지하는 독자층이 선명하며, 작가 또한 왕성하게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단편, 장편, 글과 그림이 섞인 책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를 만나는 점도 눈에 띈다. 마치 크리스마스 정찬처럼, 김초엽의 식탁은 이렇게 풍성하다.

 

오늘도 성업 중

꿈을 사고파는 꿈백화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미예 작가가 <달러구트 꿈백화점>의 후편 <달러구트 꿈 백화점 2>를 내놓으면서 1편과 2편이 동시에 사랑받았다. 백화점의 신입사원 페니는 좀 더 능숙한 사원이 되어 새로운 구역도 드나들게 되고, 꿈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민원관리국에도 가게 된다. 꿈을 주제로 한 사랑스러운 상상력은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