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풍미한 밀레니얼, 일명 Y2K 패션으로 불리던 그때 그 시절 옷이 다시 돌아왔다.

 

택시 안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다. 데님이 인기라는 뉴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꺼내 입는 청바지가 얼마나 더 인기를 끌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듣다 보니 단순히 데님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2000년대, 밀레니얼 세대들이 열광하던 패션 브랜드의 컴백과 활약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슈들. 덧붙여지는 말들도 꽤나 흥미로웠다. 전무후무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며 바이러스와 고군분투하기 이전의 세상을 그리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는 것. 덕분에 트루릴리젼처럼 2000년대를 주름 잡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패션 브랜드 몇몇이 국내 론칭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세상의 관심이 과거로 향해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 시즌 패션계의 시곗바늘은 정확하게 2000년대, 이른바 Y2K 패션이 거리를 점령하던 그때를 가리키고 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밀레니얼 패션, 혹은 Y2K 패션으로 불리는 이 유행이 국내에서 이슈가 된 건 제니의 효과가 크다. MZ 세대의 대표주자 격인 20대 소녀가 어쩌다 2000년대 패션을 대변하게 되었을까. 시작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광고 촬영장에서 찍은 셀피다. 그날 제니는 그린 컬러로 깔(!) 맞춘 트레이닝 후드 점퍼와 팬츠를 입었다. 부드러운 벨벳 소재였고 크롭트 점퍼에 후드가 달려 있었으며 팬츠는 몸에 꼭 맞게 슬림했다. 바로 20년 전 길에서 보던 쥬시 꾸뛰르의 트랙 슈트처럼. 제니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셀피를 본 대중은 한물간 트레이닝 패션이 다시 돌아왔음을 직감했고 새로운 트렌드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일명 쥬시 꾸뛰르로 통용되던 이 패션의 선구자는 패리스 힐튼이었다. 지금이라면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로 불렸겠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동경하는 힐튼 가의 상속녀로 이름을 날렸다.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였던 그녀는 자주 벨벳 소재 트랙 슈트를 입고 다녔고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처럼 컬러 선택도 과감했다. 상속녀 패션이라는 후광에 힘입어서일까.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옷 좀 입는다는 여자들 옷장에는 위, 아래를 같은 색으로 맞춘 벨벳 트랙 슈트가 한 벌씩 놓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느 유행처럼 서서히 잊혀갔지만 2021년 지금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2000년대를 주름 잡았던 또 하나의 패션은 크롭트 톱과 로우 라이즈 팬츠다. 몇 시즌 전부터 다양하게 보이던 크롭트 티셔츠지만 옷이란 게 원래 무엇을 어떻게 받쳐 입느냐에 따라 온전히 달라진다. 그 시절에는 배꼽이 보인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 때문에 배꼽티로 불렸고 골반에 걸쳐 입는, 일명 골반 바지와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잡아당기면 벗겨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로우 라이즈, 바로 이 팬츠가 이번 가을/겨울 시즌 주목해야 할 대표적인 키워드다. 2000년대에는 록 스피릿이 충만한 밀레니얼 펑크 뮤지션이 인기였다. 그들이 입은 옷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배가 훤히 보이는 상의를 입거나 셔츠 배꼽 부분의 단추를 풀어 헤쳐 연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카무플라주 패턴이나 주머니가 달린 카고 스타일, 워싱 데님처럼 다양한 디자인의 로우 라이즈 팬츠를 입었고 좀 더 멋을 내고 싶을 땐 벨리 체인처럼 주얼 장식을 더한 벨트를 착용하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나, 에이브릴 라빈 모두 당시 패션을 보여주는 세기말 아이콘으로, Y2K 패션을 추종하는 미미 커트렐, 헤일리 비버, 오브 카멜론의 스타일을 완성해준 원천이다.

그렇다면 2021년도를 강타한 새로운 Y2K 패션의 선구자는? 바로 벨라 하디드다. 지지 하디드의 동생이자 패션 모델로 활동 중인 그녀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밀레니얼 패션 마니아다. 작고 컬러풀한 틴티드 선글라스, 얇은 체인 벨트, 짧은 티셔츠, 한껏 내려 입는 로우 라이즈 바지를 입고 종횡무진 2000년대와 2021년도를 넘나드는 중이다. 패션 업계도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쥬시 꾸뛰르는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듯 브랜드의 오랜 뮤즈인 패리스 힐튼, 뮤지션 스위티와 캠페인을 촬영했고 마크 제이콥스 역시 데본리 칼슨, 포에버 21과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론칭했다.

인스타그램에 등록된 #Y2K 해시태그 수만 해도 220만여 개. 이렇듯 세계적으로 2000년대 패션이 주목받으며 국내에서도 2000년대, 세기말 패션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7월, 싱글 앨범 ‘Weekend’를 발매한 태연은 두건과 틴티드 선글라스, 트랙 슈트를 입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밀레니얼 세대를 재현했고 레드 벨벳의 조이 역시 2000년대 인기 가요를 리메이크한 스페셜 앨범 커버 패션으로 복고풍 줄무늬 티셔츠, 미니스커트를 선택했다. 선미는 ‘Welcome back y2k era’라는 글과 그 시절을 오마주한 근사한 스타일링을 선보였으며 제시 역시 누구보다 대담하게 밀레니얼 패션을 재해석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실제 2000년대를 살았던 밀레니얼보다 1990년도 중반에서 2000년도 초반에 태어난 Z세대들이 이 유행에 더욱 열광한다는 점이다. 미국 디지털 미디어 그룹 리파이너 29는 “코로나 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되며 소설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졌고 화려했던 2000년대 대중 문화와 패션을 그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며 지금의 현상을 평가하기도 했다. 공공연하게 다시 돌아오면 안 될 패션으로 불려온 비운의 밀레니얼 패션,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흑역사를 남기기도 했지만 그 시절 입던 옷들은 이렇게나 힙하게 달라졌다. 세상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올해가 지나고 나면 이 패션은 또 어떻게 기억되고 남겨지게 될까 조금은 궁금해진다.

스냅백은 56만원, 셀린느(Celine).

 

하트 모양 귀고리는 13만8천원, 페페쥬×마뗑킴(Pepe Zoo×Matin Kim).

 

캣아이 선글라스는 61만5천원, 마르니(Marni).

 

직사각형의 볼드한 선글라스는 28만원,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로고 이어링은 1만6천원, 포에버21×쥬시 꾸뛰르(Forever 21×Juicy Couture).

 

분홍색 크롭트 톱은 45만원대, 알렉산더왕(Alexander Wang).

 

골드 체인 네크리스는 1백12만원, 생 로랑(Saint Laurent).

 

체인 네크리스는 18만원, 콜드 프레임(Coldframe).

 

파란색 버킷백은 2백99만원, 프라다(Prada).

 

복고풍 선글라스는 28만원, 젠틀 몬스터(Gentle Monster).

 

브라운 컬러 롱부츠는 가격미정, 구찌(Gucci).

 

카디건은 65만원대, 알렉산더왕.

 

메리 제인 슈즈는 14만9천원, 드로게리아 크리베리니 바이 샵 아모멘토(Drogheria Crivellini by Shop Amomento).

 

분홍색 로고 벨트는 42만5천원, 발렌시아가(Balenciaga).

 

줄무늬 니트 톱은 36만원대, J.W. 앤더슨 바이 마이테레사(J.W. Anderson by Mytheresa).

 

호보백은 2백86만원, 구찌(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