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전쟁 등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어느 한 지역, 국가의 일이 아닌 전 지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속에서도 작가들은 제각기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갔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마거릿 애트우드, 레이철 쿠시너, 레일라 슬리마니, 데이비드 미첼 등 이 시대의 생존 작가들에게 단편을 의뢰한 것. 각자 고립된 시간 속에서 소설가다운 상상력을 펼친 작가들의 작품은 2020년 7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었다. 이 단편집 묶어낸 책의 제목인 <데카메론 프로젝트>는 마치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의 증명과도 같다. 700여 년 전 흑사병의 공포를 풍자와 해학으로 극복한 <데카메론>을 지은 보카치오 역시 미소 지을 것처럼. 국내 작가들이 모인 <기억하는 소설> 역시 마음은 같다. 책을 여는 ‘오늘 하루 무사하셨나요?’라는 물음조차 무증상 확진자가 가득한 이 시점에서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재난조차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주목한다. 박민규의 ‘슬’에서 나약한 사람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강영숙의 ‘재해지역투어버스’에서 자동차가 없는 사람이 대피하지 못하는 것 역시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오염된 지역으로 떠나는 강화길의 ‘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 훗날 이때를 기억할 때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소설은 조용하게 지금 가장 위기의 사람들이 있음을 전한다.

 

시집생활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있으면 좋은 곳. 그곳이 바로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작년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로 시 같은 산문을 펴낸 시인 유희경은 꼭 1년 만에 시집서점 주인으로서의 일상과 단상을 담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을 펴냈다. 2016년 신촌에서 시작해, 지금 동양서림 2층에 자리를 잡기까지 그는 항상 거기 있었다. 작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집이 있다는 것이, 재미는 하나도 없지만 ‘유희왕’이라는 자신의 별명을 좋아하는 서점지기가 있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영화 같은 순간들

누벨바그의 여러 거장 중에서도 에릭 로메르는 유독 사랑에 가치를 두었다. 난해한 스토리 대신 사람들 사이의 사건과 감정을 따라가기에, 시네필이 아닌 사람들도 그의 영화를 편안하게 추억한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영화는 문학적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자신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클레르의 무릎>을 비롯한 <여섯 개의 도덕> 연작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 여섯 편의 영화를 위한 여섯 편의 소설을 묶은 게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다. 구체적인, 물리적인 사건 없이 모든 일이 화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와는 또 다른 세계가 책장 속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