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간 밤 11시 52분, 지금쯤이면 샤워를 하고 이불에 싸여 노곤하게 잠들 준비를 끝내고 있겠지. 그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야.

 

나는 자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잠은 나에게 휴식을 주고, 행복을 준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몸 구석구석 어디 하나 힘주지 않고, 늘어져 있는 상태. 그 상태로 잠드는 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힐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잠드는 게 쉽지 않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은 늘 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침대 위에 몰아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은 휴대폰 속 분 단위로 쪼개져 있는 알람이 대신 말해준다. 그렇다고 일찍 일어나느냐고? 당연히 아니다. 몸이 피곤하면 밤에 ‘꿀잠’을 잘 수 있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고 잠자리에 든 날은 피곤해서 더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게 불면증인가? 졸리고 피곤하고 자고 싶은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잠을 못 자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독립해서 잠자리가 바뀌자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다. “수맥이 흐르는 거 아냐?” “머리를 북쪽으로 두면 안 된대.” 귀가 얇은 나는 온갖 조언과 미신에 휘둘리기 딱 좋은 캐릭터였고, 날마다 수맥을 차단한다는 봉과 동판 매트를 검색하기 바빴다. 따뜻한 우유를 마셔본다. 혈액 순환을 돕고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본다. 뭔 말인지 모를 지루한 책을 골라서 읽어본다. ASMR을 들으며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자극해본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엔 스르륵 잠이 든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소용이 없다. 잠을 못 자니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못 자니 잠이 더욱더 고프다. “어차피 죽으면 평생 잘 텐데?”라는 말은 위로도 경고도 되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고 싶어도 잠이 들지 않는 이 고통의 밤을. 그렇다고 약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매일 새벽 3~4시를 넘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사회 초년생 때부터 잠을 줄이는 건 죄책감을 덜어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할 일이 태산인데 잠이 와?’ 낮부터 쌓아온 산더미 같은 할 일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해마다 몸을 상하게 하는 다이어트는 하루가 다르게 신진대사를 떨어뜨렸다. 그 와중에 노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을 빼앗기 일쑤였다. 부족했던 수면시간은 하루 이틀에 몰아서 채웠다. 그렇게 나는 건강하고 규칙적인 수면 패턴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자도 자도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나를 망쳤다.

줄무늬 파자마는 아밤(Avam).

나는 다시 잠을 잘 자고 싶었다. 먼저 매트리스를 바꿨다. 허리가 좋지 않아서 등이 꺼지는 푹신한 것 대신 등과 엉덩이가 꺼지지 않도록 탄탄하고 지지력이 있는 매트리스가 필요했다. 이불은 가볍지만,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러면서도 자주 세탁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 파이버 충전재를 사용한 이불로 바꿨다. 그리고 그 이불에는 내가 좋아하는 색의 커버를 기분에 따라 바꾼다(의외로 기분전환에 아주 좋다). 베개는 너무 높지 않고 목의 C자형이 유지되는 것이어야 한다. 매트리스와 베개에도 궁합이라는 게 있어서 단단한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나에겐 너무 푹신한 베개는 잘 맞지 않는다고. 누웠을 때 목주름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목을 받쳐주는 것을 골랐다. 잠옷도 중요하다. ‘잘 때는 아무거나 입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고 입은 목 늘어난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대신 땀 흡수가 좋고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넉넉한 사이즈의 면 파자마를 꺼내 입었다. 또한 잠자기에 좋은 적정 온도(18~22℃)를 맞추기 위해 자기 전 에어컨을 잠시 틀어놓는다. 이제 잠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잠을 깊이 자야 되는 게 맞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불면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나의 잠, 나의 리트리트를 제대로 되찾지 못했다. 새벽 1시 58분 나는 아직도 사무실이고, 꼭 지켜보겠노라 다짐했던 규칙적인 잠자리 시간은 이미 깨져버렸다. 쏟아지는 졸음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우면 또다시 눈은 말똥말똥해지겠지? 그렇게 나의 행복해야 할 하루가 사라져간다. 언제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언제쯤 나의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또다시 마감을 핑계로 다음을 기약한다. 자고 나면 좀 더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