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는 두 갈림길이 있다. ‘도메스틱’과 ‘인터내셔널.’ 팬데믹으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는 사이, 우리는 국내 여행을 좀 더 발견하게 됐다. 올여름도 모두의 휴가는 망한 게 분명해 보이지만, 책으로 떠나는 여행은 더없이 자유롭다. 국내를 다룬 여행 에세이 10권.

 

전국
<밥보다 등산> 손민규

남들이 해변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 서점 인문 MD인 저자는 30여 년 동안 등산을 멈추지 않았고 신혼여행지도 한라산 영실이었다. 수십 년 동안 전국의 산이란 산은 죄다 오르면서 국토를 종주, 횡단한 셈. 셀 수 없이 많은 추억 중 결정적인 장면만을 책으로 옮겼다.

 

제주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정우열

일러스트레이터 올드독 정우열이 제주로 이주한 지 어언 8년. 그동안 수많은 육지 친구들에게 ‘맛집을 알려달라’는 요구를 들었을 작가는 이제 그만 물어보라는 듯이 먹거리 만화를 그렸다. 갈치호박국, 꿩메밀칼국수, 빙떡에 이르기까지 스무 가지 맛있는 음식이 제주 라이프와 함께 담겨 있다.

 

제주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 현요아

지금까지 이런 제주 에세이는 없었다. 모두가 겨우 며칠, 겨우 한 달을 살고 제주를 예찬할 때 제주 현씨 조상을 두고 제주에서 19년을 산 작가는 제주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가 자신의 가족이 조금은 지긋지긋하듯, 작가에게 제주도 그렇다. ‘육지 것들’은 모르는 제주 이야기를 들었다고 제주가 싫어지거나 못나지지는 않는다. 단, ‘제주사람에게 묻지 말아야 할 일곱 가지 질문들’을 마음에 적어두었다.

 

광주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김형중

몇 년 전 취재로 광주에 갔을 때, 나는 바이블처럼 소중하게 이 책을 들고 갔다. 광주에서 태어난 김형중의 에세이로,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광주 시민의 눈으로 본 광주를 차분하게, 때론 능청스럽게 소개한다. 자신의 이야기면서 굳이 3인칭인 ‘평론가 K’를 내세우지만, 그게 어쩐지 고소하게 느껴진다.

 

경주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황윤

시험을 앞두고 달달 외웠던 역사의 한 자락을 평생 쥐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소장역사학자이자 박물관 마니아인 저자는 경주를 100번도 더 갔다. ‘역덕’인 작가에게 경주만큼 흥미로운 도시는 없을 것. 왜 경주가 특별한 도시인지 한 권으로 찬찬히 안내한다. 백제, 가야 편도 있다.

 

구례
<월인정원, 밀밭의 식탁> 이언화

도시를 떠나 15년째 구례에 살고 있는 이언화의 에세이. 농가밀로 빵을 굽고 빵 수업을 하는 월인정원의 운영자다. 농부에게 밀알을 받고, 정미소에서 겉껍질을 벗겨 믹서에 곱게 가는 과정은 슈퍼에서 밀가루를 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책장마다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의 숨은 사계절 기운이 넘실댄다.

 

전국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부제는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다. 새조개철이면 새조개축제, 매실철이면 매실축제가 열린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지만, 밀양아리랑대축제나 음성품바축제는 금시초문이었다. 젓가락페스티벌은 또 뭐란 말인가. 이상한데 점점 흥이 나는, 안 가고 싶었는데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은 그 지역 축제의 현장이 열두 곳이나 펼쳐진다. 자, 들어간다 품바!

 

전국
<중국집> 조영권

피아노가 있고 관리를 포기한 게 아니라면 때마다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아노 조율사인 조영권 역시 의뢰가 오면 어느 곳이든 간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근처의 ‘중국집’을 찾는다. ‘이 동네 중국집은 어떤 맛일까?’ 고독한 조율사의 즐거운 혼잣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찾은 전국 중국집 40여 곳을 담았다. 이후 <경양식집에서>도 출간되었지만 어쩐지 중국집이 진짜 같다.

 

속초
<속초> 김영건

저자 김영건은 그 유명한 속초 ‘동아서점’을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핫플’이 되기 전의 칠성조선소라거나, 보광미니골프장처럼 속초의 중요한 장소들이 꼼꼼히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속초시립박물관에 가보고 싶었다. 보름 전 동아서점에서 직접 이 책과 <아주 사적인 여행지도>를 구입했는데, 이 책은 아들이 쓰고, 이 지도는 며느리가 만든 것이라고 하는 사장님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동해
<동해 생활> 송지현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의 작가 송지현의 청춘도 막막하기만 했다.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동생과 잠시 동해를 대여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마침 잘 곳도 있다. 그렇게 동해 생활을 시작한다. 바다를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를 맞이하거나 하는 사이 시간은 정직하게 흐르고 동해 생활도 끝이 난다. 다른 곳에서 산다고 해도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추억은 모두의 것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