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은 뱀뱀이 이제 진짜 자기 노래를 부르려 한다. 여름이 다 오고 간들 그의 마음은 식지 않을 것 같다.

 

터틀넥 니트는 산드로(Sandro), 플라워 프린팅 슈즈는 반스(Vans). 데님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흘 전이 생일이었죠. 태어난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요?
데뷔 초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는 생일을 제대로 챙긴 적이 잘 없어요. 비행기 안에 있거나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식이었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생일이 5월 2일이거든요. 5월 1일에 비행기를 탔는데 도착하니까 5월 3일인 거예요. 생일이 사라져버리고 없더라고요.(웃음)

자가 격리는 어땠어요? 
할 만했어요. 원래 집에 있는 거 좋아해요. 집돌이예요. 은근히 즐기기도 한 것 같아요.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서요. 하루에 영화 두세 편씩 보고 동네 배달 음식은 다 먹어본 거 같아요.(웃음) 좋게 생각하려고 했어요.

무사히 격리가 끝나고 나니 밀린 일이 막 쏟아졌겠죠?
아, 요즘 머리가 터질 거 같아요.(웃음) 작업할 게 많아요. 원래 잡혀 있던 이런저런 촬영도 몰아서 해야 하고요. 쉴 틈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밤에 만났네요. 화보 시안 첫 장에 ‘밤의 호텔에서 혼자’라고 적어 보냈어요. 호텔은 익숙한 곳이죠?
한동안 그랬는데 오랜만에 왔죠. 뭔가 해외 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스트라이프 후드 니트는 JW 앤더슨(JW Anderson), 블랙 쇼츠는 키뮤어(Kimuir),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진주 발찌는 로아주(Roaju), 비즈 발찌는 블랙퍼플(Black Purple).

여기 스위스 그랜드 호텔이 1988년에 처음 문을 열었대요. 왔는데 방콕에 있는 크고 오래된 아름다운 호텔 같아서 마음에 들더군요. 
근데 이 방은 약간 미국 느낌 나지 않아요? 입구에 작은 키친이 있는 것도 그렇고. 되게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호텔이라는 데가 그래요. 꼭 무슨 스토리가 따라붙는 공간이잖아요. 어때요?
호텔 좋아해요. 제 침실이 꼭 호텔 방 같거든요. 어느 호텔에 갔을 때 너무 편한 매트리스를 발견해서 그거랑 똑같은 걸 샀어요. 호텔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잖아요. 집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내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요.

특별히 좋았던 호텔의 기억이 있어요?
음, 지금 생각나는 건 시드니 무슨 호텔이요. 룸서비스가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스위트룸에서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는데 꼭 꿈꾸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파리의 어느 호텔도 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앞으로는 축구장이, 뒤로는 에펠탑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이렇게 밀어서 여는 창문 알죠? 그걸 열면 작은 테라스가 있었어요.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건물처럼요.

출장으로 시드니 위에 있는 브리즈번 W 호텔에 간 적이 있어요. 스위트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꿈꾸는 기분이 들긴 하더라고요. 
다른 호텔이랑 좀 다른 느낌이 있죠? 우리 집 인테리어 레퍼런스가 W 호텔이에요.(웃음) 모던한 스타일.

니트는 김서룡(Kimseoryong), 베이지 팬츠는 벨루티(Berluti), 샌들은 후망(Humant).

여전히 잘 웃네요. 2017년 갓세븐 화보 촬영장에서 이렇게 만난 적이 있어요.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그때도 혼자 이렇게 웃고 있었어요. 
앞에선 친절하게 웃은 다음 일 끝나자마자 차에서 곯아떨어졌을걸요?(웃음) 아무리 피곤해도 그걸 티 내고 싶진 않아요. 혼자 일하는 거 아니잖아요. 오늘도 저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스태프가 모였는데 힘든 내색 하면 누가 저랑 일하고 싶겠어요. 아티스트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거나 더 좋은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 다 맛있는 거 같이 먹는 게 좋아요.

태국 사람은 다 그렇게 잘 웃고 친절해요? 블랙 핑크의 리사도 그랬고 방콕 여행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그렇던데.
문화가 그런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집이나 학교에서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고 배워요. 그 마인드가 좀 강한 거 같아요.

여름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특히 한국의 여름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산이 많아서 그런지 초록초록한 이미지가 있어요. 저는 태국보다 한국의 여름이 더 습하게 느껴지거든요? 습한 여름날의 냄새를 좋아해요.

보통 태어난 계절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여름을 좋아한다니 의외네요. 아, 태국의 5월은 이미 여름이죠? 
하하. 그러고 보니 또 그렇네요. 여름의 파란 하늘이나 푸른 나무 그런 게 좋아요. 좀 시끄럽긴 하지만 매미 소리도 좋고.

데님 오버롤은 리바이스(Levi’s), 슈즈는 오프화이트(Off-White), 비즈 팔찌는 누아보(Nuavo), 큐빅 팔찌는 로아주.

또 어떻게 여름을 기억해요?
냉면. 비빔면도 좋고요. 야외에서 빙수 먹는 거 좋아해요. 더운데 속은 시원한 그 느낌 있잖아요. 연습생 때 춤 연습하고 나면 엄청 덥잖아요. 단체로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그랬어요. 그것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땡모반도 아니고 냉면이라니. 아까 간장게장 먹고 싶다고 한 것도 들었어요. 이러니 한국 사람 다 됐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요. 
냉면이랑 보쌈이랑 같이 먹는 거 정말 좋아해요. 진짜 맛있는 조합인 거 같아요.

3년 더 있으면 인생의 반은 태국에서 반은 한국에서 생활한 거라죠. 어때요?
뭐 되게 특별하진 않아요. 이제 태국보다 한국이 더 익숙한 것 같기도 해요. 지리도 그렇고 배달앱이나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 있잖아요. 태국에 가면 모르겠더라고요. 길도 다 변해 있고, 지하철 타는 법도 까먹었어요.(웃음)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어서 춤을 못 추는 날이 와도 어느 한쪽에 정착하고 싶진 않아요. 양쪽을 오가면서 살고 싶어요.

가끔 외롭다거나 붕 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살면서 슬플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에요. 그런 성격이 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냥 하면 또 해요.

태국에 있을 때랑 한국에 있을 때의 기분은 좀 다르지 않아요?
그건 그래요. 아무래도 제가 있는 자리가 좀 다르니까요. 그 차이가 좀 커요.

재킷과 팬츠는 뮌(Munn).

어떤 자리요?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제가 말하면 너무 재수 없을 거 같아서요.(웃음)

팬데믹 직전 방문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시내까지 각종 전광판에서 당신의 얼굴을 원 없이 봤어요. 하려던 말 이거 맞아요?
하하.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태국과 한국에서 제 자리의 격차가 너무 커요. 균형을 맞추고 싶어요.

자기 자신에게 원래 그렇게 엄격해요?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인이잖아요.
여기서는 편하게 막 다닐 수 있어요.(웃음) 태국에선 뭘 못해요. 호텔 밖을 나갈 수도 없어요. 팬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집에도 못 가요. 진짜 아무것도 못한다고요. 가끔 ‘현타’ 올 때도 있어요. 태국 공항에서 수많은 팬을 뒤로하고 한국에 딱 도착하잖아요. 그럼 아무도 없어요. 거기에 머문 며칠이 꿈처럼 멀게 느껴질 정도예요.

한국에선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저 그거 알아요. 이제 여기만 남았어요. 시작을 여기서 했는데 아직 한국에서만은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요. 태국이나 해외에선 자리 잡았거든요. 해외 활동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한동안 한국 활동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럼 좀 다른 결과가 나올 거예요.

남들은 다 해외로 진출한다고 난리인데 당신은 반대네요.
그러게요. 이제 스물다섯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돌아갈 순 없어요.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대신 즐겁게.

용감한 도전이네요.
완전 도전이죠. 좀 위험한 도전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양쪽 다 놓칠 수도 있는 도전이니까요. 뭔지 알죠? 모험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해요?
재밌을 것 같아요.(웃음)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요.

그럼 해야죠. 그건 그렇고 꼭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인정하는 서울의 태국 음식 맛집은 어디예요?
갑자기? 짬뽕 같은 인터뷰 웃기네요. 까폼이요. 거기가 진짜 태국이에요.

역시. 야근할 때 거기서 종종 시켜 먹어요. 뱀뱀의 추천 메뉴는?
족발 덮밥인 카오카무요. 최고예요. 또 랭쎕이라고 있어요. 높이 쌓은 돼지 등뼈를 고추랑 마늘이랑 해서 먹는 거예요. 거긴 진짜 인정해요. 블랙핑크 리사와 (여자)아이들 민니도 좋아해요. 저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요.

2017년에 나눈 인터뷰를 다시 들춰봤어요. 다른 멤버들도 있는데 당신의 자작곡 ‘Remember You’에 관한 이야기를 콕 짚어서 나눴더군요. 
그게 제 첫 자작곡이에요. 갓세븐 노래가 밝은 게 많았잖아요. 드라이브할 때나 집에서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후에 만든 노래들도 비슷한 궤적 안에 있어요. 그게 뱀뱀의 음악이죠?
네, 근데 아니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건 또 달라요. 이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죠. 진짜 뱀뱀의 모습.

슬리브리스는 김서룡, 블랙 팬츠는 오프화이트, 실버 뱅글은 헤이유즈(Heyuz), 네크리스는 어빗모어(A Bit Mor).

눈이 막 빛나네요. 힌트 좀 줘요.
아직은 설명하기 어려워요. 좀 더 밝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정도?(웃음) 나오면 한번 들어봐주세요. 묘한 느낌이 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요즘은 뭘 들어요? 뭘 봐요?
라디오 많이 들어요. 미국 라디오요. 유튜브에서 무서운 이야기 찾아보고요. 진짜 좋아하거든요. 괴담 같은 거 듣다가 영감을 받을 때도 있어요.

이래봬도 작업할 땐 까다로운 편이겠죠? 
당연히 그렇죠. 완벽하게 하고 싶으니까요. 집 청소할 때도 까다롭고요. 걸레질할 때요. 걸레가 지나간 자리를 이렇게 봐야 해요. 먼지가 있나 없나.(웃음) 다 그래요. 머리든 음악이든 손톱이든 옷이든.

여전히 에디 슬리먼을 좋아해요?
좋죠. 요즘은 좀 풀어진 부분도 있어요. 제가 입은 옷 말고 저라는 사람에 먼저 집중할 수 있게요. 옷이 너무 세면 사람보다 옷이 먼저 보이니까요.

오늘 밤공기를 보니까 금세 또 여름이 올 것 같아요. 올여름은 어떨까요?
또 되게 덥겠죠? 여름이니까. 자유롭게 나다닐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햇볕도 쬐고 그러면 좋겠어요. 잠깐씩이라도. 여름의 태양은 따가워요. 근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