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지만, 한층 자연스러워진 요즘 크롭트 톱
과감하지만, 한층 자연스러워진 요즘 크롭트 톱.
어떤 유행도 완전히 새롭게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은 드물다. 과거라는 위대한 유산 속에서 콩알만큼이라도 영감을 받기 마련이다. 그 씨앗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해 동시대적으로 지지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유행하는 브라 톱, 크롭트 톱, 란제리 레이어드 룩 등은 1990년대를 단단히 닮았다. 당시에는 이 같은 패션을 즐기는 세대를 X세대라고 칭했다. 그리고 찢어진 청바지에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크롭트 톱을 입고 알이 작은 선글라스를 쓰고 거리를 휘젓는 그들 모습을 세기말 현상으로 치부했다. 뉴스에서조차 남 눈치 안 보고 제멋에 사는 특이한 세대가 왔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다. 정말 옛날 일이다. 말 나온 김에 옛날 얘기 하나 더 하자. 예로부터 어른들은 배를 드러내면 배탈이 난다고, 옷을 입을 때 배꼽이 드러나는 것을 심히 경계하셨다. 복부 부근의 체온이 떨어지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을 저하시켜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는 과학적 근거를 갖췄다고 한들, 패션과 자기 표현에 울고 웃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모르긴 몰라도 ‘꼰대’라는 단어 한마디는 필시 듣고야 말 것이다. 어찌됐든 그 당시 X세대는 지금 Z세대의 부모뻘이 되었고, 원했든 원치 않았든 Z세대와 패션계의 평행이론을 이어간다. <얼루어> 편집부 막내도 크롭트 톱을 즐겨 입는 Z세대다. 그녀에게 크롭트 톱은 특이한 아이템이 아니다. 어쩌다 마음에 들게 되었는데 마침 유행이라 접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단다. 하이웨이스트 하의와 함께 연출하면 허리의 가장 가는 부분이 살짝 보여서 허리가 더 가늘어 보여 좋은 것 같다고.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지만, 가끔 어른들이 많은 곳을 갈 때면 신경이 쓰여 그럴 때는 바지를 한껏 올려 추스른다는 그만의 팁도 전했다.
‘청춘은 있지만 관습은 없다!’고 외칠 것만 같은 셀린느의 에디 슬리먼은 이 같은 Z세대의 성향을 컬렉션에 오롯이 녹인 대표주자다. 우아한 트위드 재킷에 스포츠 쇼츠를 입고, 화려한 튜브톱 드레스에 볼캡을 눌러쓰고 투박한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식이다. 어느 정도의 강박까지 느껴지는 스타일링에서 제 몫을 다하는 것은 역시나 브라 톱과 크롭트 톱이다. 격자무늬 셔츠와 러버 부츠 룩에도, 가죽 재킷과 롤업 데님 쇼츠의 매칭에도 안에 입은 브라 톱이 빛났다. 톱 밑부분 밴드에는 곧은 산세리프 서체의 로고까지 더해 힙하다는 공식은 모두 충족시켰다. 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앰부시의 윤 안도 브라 톱을 무대에 올렸다. 전체적으로 한층 성숙한 테일러링을 소개한 앰부시 컬렉션에서 적재적소에 더한 브라 톱은 자칫 평이해질 수 있는 룩에 생기를 더했다. 여성의 아름다운 면면을 강조하고자 크롭트 톱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파코라반의 줄리앙 도세나는 자신감 있는 여성의 센슈얼리티에 집중했고, 알베르타 페레티는 여성의 유연한 덕목에 주목했으며, 이자벨 마랑은 여성의 미래지향적 에너지에 초점을 맞춰 즐길 수 있는 패션을 완성하고자 노력했다. 코셰와 아크네 스튜디오처럼 도전적인 스타일링으로 낙관적인 미래와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 디자이너도 많았다.
런웨이 모델들에게서 스타일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리얼웨이의 패셔니스타들로부터 실질적인 스타일링 팁을 확인할 차례다. 크롭트 컷 룩에 관해서라면 1, 2위를 다투는 카이아 거버와 헤일리 비버가 대표 인물들이다. 카이아 거버가 청바지나 면바지에 솔리드 톱을 매치해 캐주얼 룩을 즐기는 한편, 헤일리 비버는 크롭트 블라우스에 와이드 팬츠를 매치하거나 스커트에 브라 톱, 얇은 코트를 더하는 식으로 보다 포멀한 룩까지 폭넓게 커버한다. 특히 헤일리 비버는 크롭트 컷 상의를 선택할 때 대부분 하의는 하이웨이스트 핏을 매치해 몸의 맵시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한다.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의 벨라 하디드의 스타일은 역시 과감 그 자체다. 크롭트 컷 톱에 하의를 내려 입어 허리와 골반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하고, 메시 소재 크롭트 톱에 딱 붙는 하의를 입어 실루엣을 강조한다. 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켄달 제너처럼 브라 톱 위에 시어한 소재의 아우터를 더해 보일 듯 말 듯 분위기 있게 연출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처음이 어렵지 입기 시작해 이내 적응이 되고 나면 그냥 티셔츠는 밋밋한 느낌마저 든단다. Z세대 막내 이야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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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지은
- 포토그래퍼
- GORUNWAY, SPLASH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