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브랜드에서 지속가능 이슈를 쏟아내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중고 마켓 플랫폼이 오픈한다. 사람들은 왜 중고 상품에 열광하는 걸까.

 

플라워 패턴 원피스는 이자벨 마랑 에뚜왈 (Isabel Marant Etoile).

요즘 어디에서나 세컨드핸드 제품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세컨드핸드 제품은 말 그대로 타인의 손을 거친, 타인이 사용했던 제품이라는 뜻으로, 중고 상품, 빈티지 제품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최근 이 세컨드핸드 제품 또는 그것을 파는 플랫폼이 뜨거운 인기다.

중고 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코로나19로 인한 긴 경기 침체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 세대의 소비 성향이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힌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비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곳은 명품 부티크뿐이었다. 애매하게 수만, 수십만원짜리 옷을 사느니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나중에 되팔거나 대물림할 가치가 있는 제품을 산다는 것이다. 되팔 때를 생각해 처음부터 이름 있는 중고 명품을 선택한다는 사람도 꽤 많이 보았다.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가치 지향적 소비를 하는 MZ 세대에게도 중고 마켓은 좋은 선택지가 된다. 가치와 경험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썼던 제품이라는 사실도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 불필요한 물건이라 단정지은 제품을 내가 취함으로써 버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 옛날에도 ‘구제시장’이라는 이름의 중고마켓이 있었다. 동대문 거평프레야나 종로 광장시장 한켠에 자리했던,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제품이 잔뜩 쌓여 있고, 지나갈 때마다 상인들이 “학생~ 뭐 필요한 거 없어?” 하면서 호객행위를 하던 곳. 냄새와 호객행위를 견뎌내고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뒤지다 보면 더러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청바지 브랜드의 레어템이나 유행에 맞지 않지만 너무 입고 싶었던, 나만 아는 실루엣 코트 등을 찾을 수 있었다. 간혹, 너무 새것 같거나, 헐기만 했지 가짜 같은 느낌이 풍길 때는 온갖 촉을 세워 가짜와 진짜를 분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아주 잠시 구제 청바지에 빠져 이곳을 제 집 드나들 듯했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켜켜이 묵은 냄새를 견디기에 의외로 비위가 약했고, 진품명품도 아니고, 갈 때마다 진짜와 가짜를 따져 묻는 데 피로가 쌓였으며, 가장 큰 이유는 구제의 흐름이 한 번 가시기도 했었고, 점차 다양한 브랜드를 취급하는 쾌적한 대형몰이나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여 굳이 갈 필요를 찾지 못했다.

오늘날의 중고 시장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세계적인 중고 거래 사이트 더리얼리얼(TheRealReal)만 봐도 제품을 직접 보지 않아도 신뢰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제품 정보를 사이트에 자세히 올려놓았고, 오프라인 숍은 여느 유명 편집숍과 다를 바 없이 꾸며 소비자로 하여금 중고 제품을 산다는 것보다 가치 있는 구매 행위를 한다는 느낌을 부여한다. 지난 3월, 현대백화점에 모습을 드러낸 중고 판매 플랫폼, 어플릭시도 중고 마켓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언제나 가장 최신 유행 상품만을 취급하고(지금 유행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백화점의 디스플레이를 참고하라!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월된 제품은 대행사장으로 물러나야 하는 백화점에 중고 마켓이라니! 물론 팝업 형태로 한정된 기간 동안 운영했지만,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세컨드핸드 제품이 모두 좋기만 한 걸까? 지난해 H&M 그룹은 중고 마켓 플랫폼인 셀피(Sellpy)를 열었고, 리바이스는 오래 입지 않고 방치해둔 제품을 가져오면 새로운 제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모두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각에서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에 지나지 않는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 중 무려 10%를 차지하는 패션산업. 특히 저렴한 금액으로 판매해 유행이 지나면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당연했던 스파(S.P.A) 브랜드의 인기는 환경오염을 상승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H&M 그룹이 2012년부터 재활용 소재만 이용해 만든 지속가능한 라인,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소개하고 중고 마켓 플랫폼까지 열었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환기하는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이다. 리바이스도 마찬가지다. 청바지 하나가 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쓰는 물 양이 7000리터 정도인데 생산 공정의 변화 없이 중고 상품을 수선해 되파는 것으로는 그들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되돌리기엔 너무 미미하다고. 그럼에도 브랜드가 환경 이슈를 어필함으로써 얻는 마케팅 효과는 상당하기에 이를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패션산업에서 지속가능한 패션 이슈는 미래 세대에게 사랑을 받을지 외면당할지에 대한 생존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를 바꾸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린 컨슈머로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공들여 중고 제품을 구입했지만, 비닐을 비롯 과대 포장지를 뜯으며 자괴감이 든 적이 있다. 단지 덜 버리고 덜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판단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환경 이슈가 먼 미래,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내 가족이 겪을 절박한 일이라 생각하면 좀 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쇼핑 리스트를 수정하며, 수많은 가치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