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 아티스트 오소진은 손톱 위에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을 올린다. 지천에 널린 보기 좋고 아름다운 풍경 대신 이끼, 조개껍데기, 곤충이 버리고 간 허물, 빙하, 훼손된 자연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새롭게 바라본다.

 

 

무 분 별 한 개 발 은 
미지의 동굴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해 양 기 름 유 출 은 바다에 치명적이다.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는 재앙이다.

 

빙하가 녹으면 녹을수록 지구는 뜨 거 워 진 다 . 

 

달 아 오 른 바 다 는 맹독조류를 키운다.

 

비요크, 빌리 아일리시, 킴 카사디안, 리한나, 릴 나스 엑스, 사와야라 미라, 루이 비통, 입생로랑 뷰티, 울프강 틸만스를 비롯한 당대의 셀러브리티, 브랜드, 매체가 당신의 네일 아트를 조명하고 있다. 어떤가?
특별한 인맥이나 연줄이 있는 건 아니다. 나열한 이름 모두 SNS를 통해 최신 트렌드와 새로운 인물을 찾아내는 데 전문가들이다. 대부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이런저런 협업 제안을 받는다. 이번 <얼루어 코리아>와의 작업처럼 내가 재미있을 것 같으면 함께하는 편이다.

<얼루어 코리아>와의 협업을 위해 몇 달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먼저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제안하지 않았나.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편인가?
맞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가장 많은 아이디어와 자극을 주는 건 바로 자연이다. 작업에 돌입하기 전 자연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 책을 충분히 봐야 뭘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곳은 캘리포니아다. 도심에서 조금만 나가면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캠핑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아이디어를 실현해간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답을 찾을 때도 있다. 씹던 껌을 뱉었는데 그 모양이 아름다워 보일 때 있지 않나? 그 모양을 그대로 네일 아트로 만든 적도 있다. 길 구석에 오랜 시간 방치된 모래 더미의 패턴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기도 하고.

자연의 어떤 면이 당신을 끌어당기나?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감이나 패턴, 질감, 거기에서 비롯한 디자인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흉내 내기 어렵다. 네일 아트를 통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갯민숭달팽이나 각종 애벌레, 기괴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멋진 버섯,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다.

흥미롭다. 사실 네일 아트와 자연환경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그걸 하나로 잇고 싶어 한다는 점이.
보통의 네일 아트는 기분 전환 겸 칠하거나 붙였다가 질리면 버리는 소모품이지 않나. 내 네일 아트 피스가 오브제처럼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이기를 바란다. 완성도와 디테일에 더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질리면 예쁜 오브제나 장식품으로 사용하면 된다. 네일 피스를 만들 때 재활용 플라스틱과 유리를 사용하거나 말라비틀어진 꽃을 활용해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네일 폴리시 제품도 무독성 비건 제품만 사용한다. 이건 내 직업을 사랑하면서 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다. 네일 아트 자체가 친환경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건 인정한다. 그게 요즘 내 고민이라면 고민이고. 내가 선보이는 네일 아트를 접하며 사라져가는 동식물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로 믿는다.

당신의 작업을 흥미롭게 바라본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아름다운 자연만을 표현하는 건 안전하다. 그런데 당신은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마저 작은 손톱 위에 올려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캘리포니아 로드 트립 여행을 다닌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나 해변에 밀려온 마모된 플라스틱이나 투명한 유리 조각은 언뜻 아름다워 보일 정도다. 그런 쓰레기를 이용해 작업해보고 싶다.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였지만 사실 긴 시간 썩지 않고 방치된 유리 조각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LA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까지 살았다. 영어 공부를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갔는데, 영어를 빨리 익히고 싶어 이런저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미술과 예술을 주로 하는 학생회에 참여하면서 예술이 주는 힘을 느끼고 경험한 것 같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대학도 그와 관련한 학과에 진학한 건가?
퀸즈 대학교 인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좋아하던 브랜드인 ‘아메리칸 어패럴’ 캐나다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브랜드 특유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덕분에 LA에 있는 본사 오피스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주로 했는데, 브랜드의 광고나 룩북 사진을 직접 촬영하며 크리에이티브한 일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렇게 여기,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정착하게 된 거다.

그러다가 네일 아티스트로 포지션을 바꾸게 된 이유는?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집 바로 앞에 미용실 하나가 있었는데 갑자기 네일아트 스쿨로 간판을 바꿔 달았더라.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저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 활동 정도로 생각하고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그게 시작이다.

취미는 취미에 머물 때 취미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직장을 관두고 취미가 직업이 된 건 단지 우연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5년 정도 일한 후 ‘YEEZY’로 자리를 옮겨 마케팅을 담당했다. 네일 아트와 함께 스쿠버다이빙을 즐겼는데, 멕시코 어느 바다 깊숙이까지 들어간 적이 있다. 바닷속 생태계는 땅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서 난생처음 보는 독특한 생물이 널려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 풍경과 생물을 네일 아트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그 마음이 확신이 된 거다. 그렇게 나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다.

당신의 네일 아트가 눈을 잡아끄는 건 손톱을 도화지 삼는 평면 채색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3D 네일 아트’라고 해야 할 만큼 작은 손톱 위에 입체적인 구조물을 세운다. 네일아트 스쿨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연습과 실험을 했다.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건 재미없으니까. 어느 날 네일용 빌딩 젤을 이용해 뭐 좀 새로운 걸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바닥에 실수로 흘려버린 빌딩 젤이 굳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젤이 굳으면서 물방울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습이 참 묘하더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게 나올 것 같았다. 그 실수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다.

진짜 승부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아닐까? 우연한 발견을 다듬고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맞다. 주변에서도 단지 재미있다,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내 느낌엔 이거 잘하면 뭐가 돼도 될 것 같더라. 캐나다에 유리 공예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와 함께 유리로 디자인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빌딩 젤을 섞으며 나만의 방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리와 빌딩 젤 모두 투명한 것이 특징인데 그 둘을 적절히 섞으면 마치 크리스털 같은 영롱함을 재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을 것 같은데?
망설이지 않고 비요크라고 답하겠다. 그와 함께한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다.

한국의 셀러브리티 중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이정현. 어린 시절 그의 무대를 보고 받은 신선한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그의 광팬이다. 언젠가 꼭 한번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미국 친구들에게 그 시절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만 하더라.(웃음)

우리에게 보낼 마지막 네일 피스를 제작하기 전, 마음을 다스릴 겸 캠핑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화려한 나비가 인상적인 작업은 태평양을 건너오며 산산조각이 났지만.
심혈을 기울인 작업인데 아쉽다. 나는 크리에이티브한 힘이 고갈될 때마다 여행을 간다. 짧아도 좋다. 깨끗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데드 캔 댄스’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면 마음이 싹 맑아진다. 삶을 살아가는 데도, 일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자연은 그토록 신비하다. 그러니 훼손되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

또 어떤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나?
이곳에서는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비밀 유지 서약서를 쓴다. 다 말할 순 없지만 아주 흥미로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준비 중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장 폴 고티에와 킴 카다시안의 언더웨어 브랜드 스킴스와의 작업을 앞두고 있다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