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시작된 후 1년. 세상은 여전히 같아 보이지만 모든 것은 달라졌다. 그럼에도 모두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 1년의 기록.

 

백신을 맞았다

나는 미국에서 내과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레이 아나토미>처럼 재미나게 산다고?” 묻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실상은 작년부터 코로나19와 씨름하면서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 너머로 샤우팅과 흡사한 대화법으로 환자분들과 소통하는 게 일상이 된 지가 오래다.

2020년 12월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승인(Emergency Use Authorization) 허가가 났다. 의료계 종사자는 백신 우선순위 접종이다. 곧 나의 근무처인 병원에도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공급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다시 우선순위는 있다. 초기 공급 수량이 많지 않았기에 “누구에게 기회가 먼저 돌아가야 할까?”라는 난제를 모든 병원이 마주하게 되었다. 병원마다 직군별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곳이 있었던 반면 직군 무관 선착순으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우리 병원은 ‘직군 무관 선착순’ 방법을 채택했고, 나는 2020년 12월 23일과 2021년 1월 20일 각각 1차와 2차 모더나 백신을 맞았다.

이번 백신은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FDA 승인이 나지 않은 만큼, 임상실험군의 대다수가 ‘환자’ 그룹이 아닌 ‘의료인’ 그룹이라는 점을 다들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임상실험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료인이 반색하며 백신을 맞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백신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은 중환자실에서 마주한 코로나19 환자분의 증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차 접종 후, 그날 밤 미열을 느꼈고 접종 부위 화끈거림과 근육통이 3일 정도 지속되었다. 근육통은 예전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았던 때와 비슷한 강도였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3번에 걸쳐 맞아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 2번보다 한 번 더 아팠다. 시간이 지나 2차 접종 시기가 왔다. 나보다 1차 접종을 먼저 한 동료들이 2차 접종 후 다음 날 병가를 내는 패턴을 보여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살짝 겁을 먹었다. 2차 접종 후 당일 밤부터 몸살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 날은 나무늘보가 된 것마냥 천천히 움직이며 침대 밖으로 몇 발자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건강함과 체력을 자부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그 순간만큼은 나의 면역시스템이 열심히 항체를 만들어낸다는 뿌듯함과 아픈 몸에서 오는 뭔지 모를 억울함이 뒤섞인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에도 반나절 정도 식은땀이 흘렀지만 아픈 기운은 사라졌다.

아직도 여전히 마스크와 개인보호장비를 사용하며 진료를 보고 있다. 백신을 맞고 나니 한 겹의 보호막이 더 있다는 든든함을 느낀다. 코로나19 백신의 보급이 조금 더 수월해진 이 시점에 점점 더 많은 분들에게도 백신의 기회가 닿아서 2021년이 끝나기 전에 ‘코로나 병동’이 사라지길 소망하고 있다.

– 민경희(내과 레지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