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밍이 가능한 스키웨어에 주목하자. 이러나저러나 확실한 겨울의 맛은 봐야 하므로.

 

지금 스키 트렌드를 논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잠시 의문을 가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스키장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꺼리는 시국이므로. 그러나 당장의 슬로프는 포기하더라도(아니, 연기하더라도) 겨울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스키어에게 시즌의 즐거움까지 외면하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슬로프를 활보할 그때를 위해 벽장 속 낡은 스키웨어와 스키용품을 꺼내 정리하고, 재단장하고, 새롭게 구비해야 할 때가 아닐는지. 다행히 많은 스키웨어가 슬로프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감성의 그것으로 가득하다.

이번 시즌 스키웨어에서 가장 강력한 트렌드는 광택이 있는 메탈릭한 소재와 수백 미터 바깥에서도 식별 가능한 강렬한 패턴이다. 스키장에 갈 수 없는 답답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저마다 화려하고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전체적으로는 레트로의 영향권에 있어 슬림한 실루엣이 눈에 띈다. 상의의 경우 짧은 길이와 피트되는 라인이 대거 출시됐고, 실루엣 안쪽으로 라인을 더해 컬러 블로킹을 만든 제품도 상당수다. 하의의 경우에는 다리가 길어 보이는 플레어 라인의 하이웨이스트를 적용해 어떤 체형에나 멋스럽게 어울린다. 스키웨어라는 이름을 단 이상, 눈밭에 굴러도 아무 탈 없는 신체 보호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 트랜스포밍이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일상에서도 쉽게 스포티 캐주얼 룩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

레트로 퓨처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스키웨어를 소개하는 퓨잡은 이번 시즌 유행하는 대부분 트렌드 키워드를 두루 갖췄다. 퓨잡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틸드 라코스테는 가볍고 기술적인 소재는 기본, 여성이 입어 아름다움을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재킷의 경우는 길이는 짧게, 라인은 보다 슬림하게 디자인해 스키 팬츠가 아닌 데님 팬츠나 조거 팬츠와 매치해도 무리가 없도록 디자인했다. 하프 코트에는 벨트를 더해 밸런스를 강조했고, 인조 모피를 사용해 쿠튀르적인 감성을 더하기도 했다. 이때 퓨잡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넓은 칼라와 퀼팅 디테일을 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2020 가을/겨울에는 패션하우스 끌로에와 캘래버레이션 라인을 출시해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배가했는데, 톤 다운된 컬러 팔레트와 사선 처리한 컬러 블록, 우아한 보색 대비 등은 그야말로 스포티 시크라 부를 만하다.

3 몽클레르 그레노블 역시 슬로프 안팎에서 활약하는 고성능 겨울 스포츠웨어다. 몽클레르에서 겨울 스포츠 정신만 모아 만든 브랜드이므로 태생적으로 성능이 뛰어나고 실용적이며 유연한 스타일을 지녔다.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직전 다녀온 마지막 출장이 2020 가을/겨울 밀라노 패션위크다. 그때 3 몽클레르 그레노블의 퍼포먼스를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 천장에 매단 끈을 엉덩이나 허리, 가슴 등에 차고 벽과 90도 균형을 이루며 걷던 남다른 캣워크. 딱 보기에도 거친 슬로프를 힘겹게, 그러나 전투적으로 극복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초반의 그래피티 프린트를 필두로 한 의상, 사인펜으로 슥슥 그린 것 같은 패턴, 허리춤 위로 올라오는 깜찍한 패딩 점퍼, 격자무늬 팬츠 등은 20여 년 전 우스꽝스러운 사고로 스키와 손절한 나에게조차 구매욕구를 샘솟게 했다. 또 후반부의 하얀색으로 이뤄진 스키웨어는 마치 스키 학교의 숙련된 강사들이나 활강 경기의 선수들만 입을 것 같았는데, 이 대단한 패브릭이 일반 나일론보다 30배 더 가볍고 강철보다 15배 더 밀도가 높은 합성섬유였다고. 디자인과 소재 개발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몽클레르의 혁신적인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스키 선수이자 스포츠 필름 제작자이기도 한 티에리 도나드에 의해 탄생한 퍼펙트 모먼트의 스키웨어도 눈여겨볼 만하다. 창립자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기능을 모두 만족시키면서도 트렌디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대로 많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퍼펙트 모먼트. 국내에서도 여러 셀럽이 방송 미디어에 입고 나와 직구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감한 컬러 사용을 비롯해 볼드한 별 모양 패턴이나 클래식한 의상에나 쓰일 법한 하운즈투스 패턴, 깜찍한 동물 그림을 시크하게 재해석한 패턴 등은 퍼펙트 모먼트가 바라보는 스키웨어 디자인의 방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바. 모자와 장갑, 헬멧, 고글, 서스펜더에 이르기까지 의상과 어울리는 액세서리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풀룩으로 스타일링하기에 제격이다.

뿐만 아니라, 하이패션에서도 스키 룩의 터치를 찾을 수 있다. 워크웨어 풍의 점프슈트에 스키 슈즈를 연상케 하는 부츠를 매치한 루이 비통, 나일론 소재의 스노우 부츠를 소개한 이자벨 마랑, 디올의 스포티한 틴트 바이저 역시 당장 스키복과 함께 연출해도 전혀 이질감 없는 액세서리다. 프라다의 나일론 장갑과 팔에 착용하는 무선이어폰 케이스, 보테가 베네타의 고글형 안경 또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 함께하면 더욱 편리한 아이템이다.

스키장에서 한겨울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렇게나 멋진 스키웨어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길. 하나 둘 따져보고 비교해보고 장바구니에 넣다 보면 미련이 남아 서운한 마음도 덜해지지 않을까.

 

폼폼 장식의 니트 모자는 13만원대, 퍼펙트 모먼트 바이 매치스패션(Perfect Moment by Matchesfashion).

 

고글형 선글라스는 가격미정,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실버 포일 소재의 오버사이즈 스키 점퍼는 70만원대 퍼펙트 모멘트.

 

플레어 라인의 하이웨이스트 스키 팬츠는 60만원대, 퍼펙트 모멘트(Perfect Moment).

 

 

나일론 소재의 브론즈 컬러 스노우 부츠는 73만원대,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무선 이어폰을 넣을 수 있는 액세서리는 가격미정, 프라다(Prada).

 

스포티한 나일론 장갑은 49만원, 프라다.

 

허리 라인이 돋보이는 스키 점퍼는 1백80만원대, 퓨잡(Fusalp).

 

스포티한 느낌의 틴트 바이저는 30만원대, 디올 바이 매치스패션 (Dior by Matchesfashion).

 

가볍고 강력한 스키를 필요로 하는 숙련된 스키어에게 제격인 스키와 부츠는 가격미정, 헤드(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