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CULTURE_#1 영화와 문학
공포와 불안, 무력감 휩싸인 2020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문화와 예술은 주변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2020년의 진정한 친구였다.
올해도 봉!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내 시청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기생충>이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미술상, 편집상 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 이 중 몇 개나 탈 것인가, 라이벌로 손꼽힌 <1917>과의 경쟁도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기생충>의 압도적 승.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영화 최초의 수상이자, 아카데미상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외국어 영화다. 이로써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 영화제 상까지 모두 받은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달변가인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은 영화를 사랑해온 팬들의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브라보, 봉준호! 한편,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불 꺼진 극장
위기라기보다 붕괴에 가깝다. 영화계와 극장업계 타격이 심각하다. 밀폐된 공간을 기피하는 시기인 데다, 영업 제한, 극장 내 거리 두기 등 방역 지침에 따라 관객 수가 감소했다. 할리우드를 포함한 국내 대작 등 신작 개봉이 거듭 연기돼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관객 수는 4986만 명, 매출액은 4243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70.8%와 70.7% 급감했다. 업계 1위인 CGV는 관람료를 인상하기로 한 데 이어 상영관 감축을 감행한다. 전국 직영점 119곳 중 35~40곳을 3년 안에 줄일 방침이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상상 마당 시네마, 씨네큐브 등 소규모 예술 영화관의 존립은 위태로워 보인다. 극장이 과거의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자각한 엄혹한 계절, 지금의 화두는 생존이다.
힘을 내요, 영화여
작년 무려 5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거나 조금 모자랐던 것을 기억하면 올해는 참혹하다. 그 속에도 관객을 만난 영화들이 있다. 올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남산의 부장들>은 운 좋게 코로나19를 피하며 약 47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반도>는 각각 430만, 380만 관객을 달성했지만 전염병만 아니었어도 1000만을 넘길 영화였다는 것이 중론. 해외 영화 중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 가장 많은 관객수를 모았다. 상영 중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34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 호평이 이어지는 만큼 더 많은 관객이 들 것으로 보인다. 힘을 내요!
좀비 떼가 나타났다!
올해 한국 영화계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좀비.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코로나 19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3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다. 한국뿐 아니라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좀비로 둘러싸인 아파트, 자신의 집에 고립된 인물의 탈출기를 그린 <#살아있다>는 자가격리를 연상하게 한다.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좀비 떼의 습격이 도사리고 있으니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재난의 상황에, 두 영화 모두 최후의 생존자는 존재한다. 1
BOX OFFICE
1위 남산의 부장들 475만
2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435만
3위 반도 381만
4위 히트맨 240만
5위 백두산 196만
6위 #살아있다 190만
7위 강철비2 : 정상회담 179만
8위 담보 171만
9위 정직한 후보 153만
10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34만
외화
1위 테넷 194만
2위 닥터 두리틀 160만
3위 1917 87만
4위 작은 아씨들 86만
5위 미드웨이 82만
⁎출처:한국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11월 12일 기준)
안방 개봉
개봉 시기를 미루고 미루다 개봉을 포기하는 영화도 있었다. 시작은 지난 5월 극장 개봉을 포기한 윤상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이다. 넷플릭스는 총 제작비 117억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사냥의 시간>의 순 제작비를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극장 대신 190여 개국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공개했다. 박신혜, 전종서가 주연을 맡은 이충현 감독의 <콜>은 개봉 예정일을 한참 지나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올여름 최고 기대작이었던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도 넷플릭스행을 협상 중이다. 240억원의 제작비에 송중기와 김태리, 유해진 등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가 총출동한 보기 드문 한국형 SF 장르물이다. 김태용 감독이 <만추>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원더랜드>와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은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도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의 서사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것일까? 충무로에 여성 감독이 많아지고, 여성 서사가 많아지고, 이를 연기할 수 있는 여성 배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밤>, <디바>, <69세>는 감독과 주연 배우 모두 여성이 주축이 되었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애비규환>, <내가 죽던 날>은 여성 배우가 그들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들려준다. 아직 작은 규모의 영화에 한정되어 있지만, 여성 영화인들은 앞을 향해 나아간다. 성장을 넘어 연대와 보편의 길을 향해.
어쩌면 당신이 놓친 영화
<트랜짓>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난민 문제를 다룬다. 감독의 태도는 조심스럽지만 유연하고 매혹적이다. 불안과 수치, 우정과 연대, 떠나는 것과 기다리는 일 사이의 모든 감정과 선택들에 대해, 무엇보다 파국적인 사랑의 열망을 생각하게 만든다.
<페인 앤 글로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 세계에서 새로운 분기점으로 기록될 작품이다. 늙음에 대한 고통의 발언이자, 그전까지 자신의 영화가 선사했던 영광에 대한 성찰마저 담겼다. 우리가 익히 접해온 알모도바르의 영화 같지만 잔잔한 주름이 느껴진다. 그 주름이 밉지 않은 건 섬세한 의미의 결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소년 아메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벨기에에 사는 무슬림 소년 아메드를 통해 어린 급진주의자들이 느낄 법한 어둠과 외로움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본다.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순간의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감독의 마지막 시선은 질문과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공포분자>
만들어진 지 34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한 아름다운 걸작이다. 등장인물 4명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데 형식주의자로서 에드워드 양이 이룬 완벽한 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에드워드 양이 그려내는 자본주의의 씁쓸하면서도 냉정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던 찬실은 갑자기 실업자가 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 싶지만, 친한 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장국영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김영민과 차진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는 강말금, 윤여정 등 주연 배우들의 개성 강한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감독은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 애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제의 실험
관객과 바이어, 레드 카펫을 유유히 걷는 배우가 있던 영화제가 사라졌다. 전 세계 대부분의 영화제는 비대면, 온라인, 무관객으로 진행되었고 개최 자체를 포기한 영화제도 많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20여 곳의 국제 영화제는 유튜브 채널을 주축으로 연대한 온라인 영화제 <We Are One>을 개최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온라인 상영과 함께 극장 내 거리 두기 등의 지침을 철저히 지키며 최소한의 관객으로 극장 상영의 전통을 이었다. 온라인 영화제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았다.
나는 안은영!
2015년 말에 출간된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월드’를 연 작품이다. 2010년 단편소설에서 탄생한 ‘안은영’은 장편소설로, 드라마 속 히어로로 종횡무진 중. 출간 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보건교사 안은영>은 올해 넷플릭스 드라마로 발표되며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올해 선보인 리커버 특별판은 일러스트레이터 람한이 표지를 그렸다. 리커버 특별판만 8만 부 판매를 기록하는 등 올해만 15만 부가 독자를 만났다.
35년 만에
여성을 통제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를 다룬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 <증언들>이 35년 만에 나왔다. 작년 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작품으로 한국에는 올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시녀 이야기> 이후 이야기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작가는 “35년은 가능한 대답을 생각하기에 긴 세월”이라고 말하며, <증언들>은 길리어드가 어떻게 붕괴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밝혔다. 한편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 단편을 모아 엮은 <도덕적 혼란>도 출간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작품으로, 여성의 삶을 단계적으로 따라간다.
황금손
출판계의 판매지수를 좌우하는 변인은 여러 개지만 유명인의 선택은 유독 강력하다.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4권의 책도 발표 즉시 주목받았다. <코로나 사피엔스>, <오늘부터의 세계>, <리더라면 정조처럼>, <홍범도 평전> 등으로 팬데믹이라는 위기 속에 좌표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평.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 역시 BTS 리얼리티 방송에서 멤버들이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등장하며 판매가 다시 급상승했다.
꿈 같은 성공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동화 같은 이야기뿐 아니라 출간 이야기마저도 독특하다.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 목표를 1812% 초과 달성한 후 전자책을 출판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독자들의 요구로 종이책까지 출간해 12만 부가 팔려나갔다.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백화점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꿀 꿈을 산다. 꿈을 만드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리포터가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상상력으로 꾸민 이야기가 따스하고 즐겁다. 작가는 현재 속편을 집필 중이다.
도서관을 구독하기
올해 줄곧 개관과 휴관을 반복하고 있는 전국의 도서관. 그중 평촌 도서관은 ‘장서구독’이라는 서비스를 시험 운영 중이다. 도서관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책을 직접 보내주는 서비스다. 관심 분야와 키워드를 적어서 신청하면, 도서관에서는 이에 맞추어 큐레이팅한 책을 도서 소개글과 함께 월 2회 택배로 보낸다. 이후 반납은 도서관으로 직접 하면 된다. 이 서비스는 신청을 시작하자마자 마감되었다.
문학상의 향방
대산 문학상 소설 부문 김혜진 <9번의 일>
젊은 작가상 대상 강화길 <음복>
만해문학상 대상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노벨 문학상 루이즈 글릭(시인)
주제는 ‘팬데믹’
올해 출판계의 화두는 역시 팬데믹.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를 대비할 수 있는 교양서가 발 빠르게 등장했다. 의료계의 현실과 숙제를 다룬 <포스트 코로나 사회>, 지금을 바라본 사상가들의 대화를 옮긴 <오늘부터의 세계>, 만연한 차별과 배제를 고발하는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경제경영연구소가 코로나로 앞당겨진 비대면 시대의 ICT산업과 한국형 뉴딜에 집중한 <코로나 이코노믹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 혼란 속의 시장과 경제를 읽는 <부의 골든 타임> 등이 그것이다. 문학계 역시 팬데믹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를 펴냈다.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전염병을 주제로 한 SF앤솔로지로 김초엽, 듀나 등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쓰지 않을 이야기>는 팬데믹 재난부터 N번방까지 지금 이 시대를 담은 소설집으로 박서련, 송지현, 조수경, 김유담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다.
에세이 시리즈
마치 경량 패딩 조끼처럼 가볍게. 작은 책이 인기를 끌며 가벼움을 강조한 에세이 시리즈도 탄생했다. 세미콜론의 음식 에세이 시리즈 <띵 시리즈>와 드렁큰 에디터의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가 그것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에세이 시리즈는 언제 어디서나 꺼내 읽기 좋은 사이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을 기획 의도로 한 <띵 시리즈>는 치즈, 조식, 그리너리 푸드 등을 주제로 순항 중이다. 먼슬리 에세이 시리즈는 시즌 1 욕망 시리즈로 물욕, 식욕, 출세욕 등을 선보였다.
듣는 콘텐츠
올해 구글 미니 등과 같은 인공지능(AI) 스피커의 국내 보급량이 800만 대를 넘어섰고, 팬데믹으로 듣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오디오북 구독 서비스 윌라 운영업체인 인플루엔셜은 올해 배우 김혜수를 내세운 광고 활동을 펼치며 누적 앱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 김혜수는 故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직접 오디오북으로 읽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도 인기 작가의 작품을 발 빠르게 소개했다. ‘듣는 연재 소설’, ‘듣는 연재 에세이’ 등이 그것으로 김연수 작가는 8년 만의 신작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직접 녹음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책
출판편집자들이 선택한, 놓치지 말아야 할 올해의 소설.
<더 셜리 클럽> | 박서련
사랑 앞에서 작아지고 두려워지는 마음, “이런 나라도” 사랑받을 수 있는지 불안한 마음에는, 어쩌면 순간순간 홀로 맞서야 하는 고독이 함께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에는 늘 ‘응원’이 필요했던 것 같다. ‘Fun, Food, Friend’를 외치는 이토록 귀여운 친구들이 있다면, 낯선 타국에서도 용감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떠올리면 설레고, 뭉클하고, 푸근해지는 이야기다. – 이정미(프리랜스 편집자)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지금 한국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SF 소설을 읽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어코 연안까지 밀려든 SF의 큰 파도에 몸을 싣는 건 어떨까. 김초엽으로 시작했다면 이 파도 타기의 성공 확률은 이미 매우 높다. 이어서 천선란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을 읽는 것이다. SF든 아니든 소설은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소설을 읽으며 당신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러니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꼭 SF 독자가 이제껏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 서효인(민음사 편집자)
<우리는 같은 곳에서> | 박선우
수많은 예술 작품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왔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할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할까?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이 질문이 기대하는 (혹은 기대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무채색의 글자들이 이토록 총천연색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기쁨과 슬픔이, 반가움과 그리움이 하나의 감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도. 특히 ‘느리게 추는 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단편이다. – 정영수(문학동네 편집자)
<자두> | 이주혜
하나의 상처가 하나의 색깔이라면 인생은 결코 원색일 수 없다. 우리는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허락하며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자기만의 색깔을 완성해간다. 인생의 오브제로 검붉은 자두 이상의 과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주혜의 <자두>는 각자 복잡한 상처를 지닌 두 여성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위로를 주고받는 이야기다. 올해 이 성숙한 관계에 대한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인생에 대해 한참 더 오해할 뻔했다. 어떤 인생도 원색일 수 없고 각자의 상처를 바탕으로 타인의 상처에 공감함으로써만 우리는 간신히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 박혜진(민음사 편집자)
우리들의 책
N번방을 세상에 꺼낸 추적단 불꽃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끔찍한 범죄 N번방을 낱낱이 알린 최초 보도자인 추적단 불꽃은 취업을 위한 탐사 심층 르포 공모전을 위해 처음 취재를 시작하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것은 믿을 수 없는 지옥도였다. 1부에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2, 3부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우리가 아파했고, 우리가 분노하고 연대한 이야기다.
‘까치’가 남긴 것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여기에 더한다면 출판인에게는 책이 남는다. 까치글방의 창업주 박종만 대표의 부음이 뒤늦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것은 까치글방으로 발표된 수많은 책이었다. 제각기 사랑해온 까치글방의 책으로 고인을 추모했고, 그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평생 책을 사랑한 사람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송가였다. 나 역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었다. 지난 책의 날 시상식에서 故 박종만 창업자는 문예출판사 故 전병석 창업자와 함께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 에디터
- 허윤선, 최지웅, 정지원
- 포토그래퍼
- KIM MYUNG SUNG, JEONG JO SEPH, COURTESY OF WELAAA, GETTYIMAGESKOREA, UNISEF
- 일러스트레이션
- HEO JEONG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