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간다. 방에서 논다. 방에서 잔다. 룸서비스를 시킨 다음 방에서 먹는다. 청결하고 안전하고 포근한 그곳에서. 그러고 나면 나은 듯했다. 비접촉의 시대에, 나와 타인을 위해 좀 써도 좋은 돈 아닐까?

 

 

레스케이프 호텔의 프랑스식 아침

명동과 숭례문의 중간, 벨 에포크 시대의 휘황함을 이어받은 레스케이프 호텔은 어떤 방향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든 판타지 같다. 각종 난데없음이 불쑥불쑥 솟아 저마다의 에너지를 폭발하는 서울 스타일과 벨 에포크 스타일을 엮어보려다 관두고 문득,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묵는다. 아침에는 뭘 먹나. 손종현 셰프가 이끄는 26층 레스토랑 ‘라망시크레’에 전화를 걸어 방으로 한 상 시킨다. “레스케이프 호텔의 조식은 양보다 질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단일 메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죠. 클래식 오믈렛과 에그 베네딕트, 프렌치토스트 등의 메뉴를 선택하면 크루아상을 비롯한 다양한 기본 빵과 계절 과일, 음료, 잼과 버터가 함께 나갑니다. 파리의 어느 호텔에 온 것처럼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좋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길. 저기 남대문 시장에서부터 갈치조림 냄새가 진동하지만 넘어갈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여기는 파리다.

 

콘래드 서울의 정석

여의도가 섬이라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새삼스럽다. 섬이란 모름지기 육지와 거리를 둔 채 혼자서만 두둥실 떠 있는 은신처 아닌가. 섬 위로 금융과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마천루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보지만, 첨예한 섬 하나 더하는 식일 뿐. 섬은 그렇게 자신이 섬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야 만다. 수많은 빌딩 숲, IFC 서울을 이루는 네 개의 빌딩 중 한 동에 자리한 콘래드 서울은 메뉴 구성에서부터 식기 세팅, 담음새 등 ‘외국 영화’ 속에서나 목격한 룸서비스의 정석을 선보인다. “콘래드 서울의 시그니처 메뉴인 ‘콘래드 브렉퍼스트’는 신선한 과일과 요거트, 갓 구워낸 빵과 취향에 따른 달걀 요리를 선보입니다. 올 데이 다이닝 메뉴로 닭고기와 베이컨, 달걀과 채소를 듬뿍 넣은 클럽 샌드위치도 인기가 많아요. 여기에 샴페인 한 잔을 곁들이는 것도 좋죠. 꼭 밤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콘래드 서울의 이승찬 셰프는 브런치와 함께 낮 샴페인 한 잔을 권한다. 저 멀리 잠실 롯데타워에서 바로 앞의 63빌딩까지 서울의 동과 서를 한눈에 경계할 수 있는 방이라면 낮이나 밤이나 먹고 마실 수 있겠다. 섬에서.

 

안다즈 서울 강남의 오밤중 라면

늦은 오후, 전통 문양인 조각보와 보자기에서 착안한 묘한 노란색이 점령한 방으로 오늘의 마지막 햇살이 짧고 굵게 들이치더니 밑으로 뚝 떨어진다. 해는 졌지만, 신사동에서 청담동까지 밤이면 밤일수록 불야성을 이루니 말하자면 이 동네는 24시간 내내 잠들지 않는 셈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한국 전통의 유산에 윤기를 더한 안다즈 서울 강남은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내뿜는 압구정동의 장기를 그대로 살린다. 최고의 럭셔리를 추구하지만 위압감을 선택하진 않는다. 그건 너무 쉽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딱 느낌이 온다. 룸서비스 메뉴도 그와 닮았다. “남녀노소 입맛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두툼한 패티의 안다즈 버거와 LA 갈비는 스테디셀러입니다. 서울의 밤을 실컷 즐기고 돌아왔다면 해물라면을 추천해요. 완도에서 올라온 전복을 주축으로 각종 신선한 해산물을 푸짐하게 담아 얼큰하고 시원하거든요.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딱 맞죠. 해장에도 좋고요.” 하미쉬 닐 총괄 셰프의 추천 메뉴는 이토록 사소하고 푸근하다. 진정한 럭셔리는 티 내지 않는 법이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주안상

언젠가 파크 하얏트 서울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코너스톤’에서 패션 브랜드 디스퀘어드의 쌍둥이 형제 딘과 댄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약속한 시각이 한참 지나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입장한 형제는 레몬 티에 꿀을 왕창 쏟아 마셨다. 전날 강남의 수많은 클럽을 옮겨 다니며 서울의 밤을 제대로 맛봤다나. 저 유명한 디자이너와 셀럽이 서울에 머물 땐 많이들 파크 하얏트 서울을 택했다. 그 방에선 어느 정도의 세탁을 거친 윤택하고 압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서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사람은 안다. 그건 서울의 민얼굴이 아니라, 단지 ‘강남’을 상징하는 파사드라는 사실을. 정상협 셰프가 차린 룸서비스는 서울과 강남을 지나 다른 지점을 건드린다. “깐풍기와 떡볶이 스낵 박스는 파크 하얏트 호텔이 자랑하는 야식 인기 메뉴입니다. 우리의 강점은 한식입니다. 올해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지의 ‘2020 골드 리스트’ 심사위원도 수준 높은 한식 룸서비스를 언급했을 정도예요. 가을을 맞아 프리미엄 모둠 전과 우곡주를 새로 준비했습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도심 뷰와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죠.” 비행길도 막힌 마당에 취기까지 돈다면 여기가 어디든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