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정말 지겨워”라고 했더니, 까칠하고 부정적인 것이 영락없는 ENTP라고들 한다. MBTI의 장점은 뭐고 한계는 뭘까? 그게 너무 궁금해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언제는 혈액형, 언제는 별자리이더니 요즘은 사자성어처럼 자신의 MBTI를 읊어대는 시대가 왔다. 어느 열풍이거나 원인은 비슷하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탐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해 이후 놀이처럼 번져간다. 아이돌 역시 팬들을 위해 자신의 MBTI를 공개하고, 다양한 우스갯소리와 농담을 만들어낸다. 이 중 몇몇은 정말 웃기다. 날뛰는 ENFP 속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ISTJ 라거나, 세계를 구하러 모인 어벤저스는 모두 ‘E’로 합성된 이미지를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하고, 왜 다들 MBTI에 푹 빠져 있는지 삐딱하게 느껴지며, 다 틀린 이야기네 싶다가 결론적으로는 이 검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이것도 MBTI식으로 말하자면 지루함을 못 견디고, 호기심이 왕성하고, 분석하기를 좋아한다는 ‘ENTP’ 유형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 유형의 추천 직업에는 당당히 ‘언론인’이 올라와 있는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다니 다행일까.

질문을 안고 내가 찾아간 곳은 서초동의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전문의는 의사이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성실하게 책을 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대체 어떤 유형일까? 약간 내성적으로 보이기에 ‘I’일 것 같고, 직관이 발달했으니 ‘P’일 것 같다는 추측을 하며.

“저도 20여 년 전 정신과 전공의 시절에 검사를 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 결과를 보고 제 바로 위 선배가 “너의 검사 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설명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유형이다…” 라고 해석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검사를 해보고, 최근에 MBTI가 유행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또 한 번 검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요. 둘 다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기자님은 무슨 유형이라고요? ” 다음은 이어진 일문일답이다.

 

Q 자신의 유형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떤 심리일까요?
사람은 세상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고, 그 다음이 가까이 있는 질투의 대상에 대해 궁금해하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에 적합한 인물인가, 선망의 대상처럼 되기 위해 혹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본능이 심리검사나 성격검사를 하게 만드는 근원적 동기가 아니겠습니까.

Q MBTI, 일종의 심리 검사입니다. 진료 시 심리검사를 사용하시나요?
제 병원에서는 MBTI 검사를 활용하지 않아요. 우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이고, 인터넷으로도 쉽게 검사할 수 있는 것을, 병원에서 굳이 다시 검사를 할 이유가 없고요. 무엇보다 그것이 말해주는 결과가 정신병리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 그리고 예후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그것을 전문가들이 다수 인정한다면 활용해볼 계획도 있지만…제 생각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Q 다양한 심리검사 중에서 MBTI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MBTI는 오래된 검사이고, 저 역시 십수 년 전 학교에서 처음,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두 번을 더 해보았습니다. 모두 정식 검사였고요.
검사의 출발이 융의 성격 유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그래서 왠지 신빙성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외향성이나 내향성을 나누는 것은 분명 근거가 있고, 생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죠.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기질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니까요. 그리고 감각형이나 직관형이나 하는 것과 사고형과 감정형을 나누는 것도 융이 분류한 성격 유형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러나 그 기준이나 해석이 융이 제시한 본래의 그것과는 다르죠. 인기 요인은 검사 자체가 쉽고, 해석이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해석과 적용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검사의 뿌리와 의미를 이해하면 별다른 교육 없이도 쉽게 해석하고 자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Q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느끼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적당하게 복잡한 정도로 성격을 분류한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성격을 16가지(2 * 2 * 2 * 2)로 나눠서 설명해주고 검사하는 영역이 감각, 직관, 사고, 감정… 이므로 받아들이기가 쉬워요. 하지만 공신력 있는 다른 성격 검사에서 측정하는, 예를 들면 개방성, 성실성, 신경성… 이런 성격의 영역은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기가 어렵잖아요.

Q 또 다른 성격 검사로는 뭐가 있나요?
현재까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연구가 가장 많이 되어 있는 성격 검사는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와 NEO(Big Five)입니다. 제가 정신의학 박사 과정에서 연구했던 주제 중에 하나가 NEO 성격 유형에 따라 조울증 환자의 질환 특성과 경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 NEO 성격 검사 결과와 연관되는 유전자가 있는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유전자는 찾지 못했지만, 성격 검사 결과에 따라서 조울증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임상의학 연구에서 성격 검사가 활용되려면 그것의 개발과 검증 과정이 철저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개발된 것이라면 번역, 역변역을 통해 신뢰도와 타당도를 연구하고, 그것이 원문을 잘 반영하고, 원래 검사가 의도했던 바를 번역된 검사 도구도 잘 반영하는지를 또다시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성격 검사는 현재까지 위의 두 가지 TCI와 NEO밖에 없습니다.

Q 그렇군요. MBTI의 한계로 자기 보고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닌 지향점으로 답을 하는 경우를 실제로도 흔하게 보십니까?
아주 흔합니다. 성격 검사를 자가 보고로 하게 하면, 실제 자기 모습보다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 맞춰 답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MBTI도, 자기 자신이 하기도 하지만, 옆의 동료로 하여금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MBTI 기준에 맞춰 해달라고 해보고, 그 둘의 결과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재미가 있죠. 해보시면 알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얼마나 다른지, 혹은 같은지, 그것이 어느 영역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보는 것도 무척 의미가 있어요.

Q 시간이 지나면 유형도 달라질까요? 학생 때 저는 ENFP였습니다만, 회사를 다니면서 ENTP로 나오더니 다시는 바뀌지 않더군요.
시간을 두고 검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에 다시 해보고, 그것이 일관되게 유지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변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할 때마다 다르게 나온다면, 그건 검사에 임할 때 본인이 솔직하게 자기 모습을 반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Q 어떤 항목이 가장 변하기 어렵나요?
당연히 어느 정도는 변합니다. 인간의 성격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외향성 내향성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유전적 생물학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BTI에서 말하는 감각/직관, 사고/감정 유형을 분류하는 것에는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근거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NEO 검사는 비교적 생물학적 기반이 갖춰진 검사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일관된 검사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정형에서 사고형으로 변했다고요? 감정/사고는 융의 이야기에 따르면 판단 기능입니다. 어떤 사건과 대상을 판단할 때 감정 기능을 많이 활용하는지, 사고 기능을 많이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그 성격 유형이 달라지는데요. 대학 때는 감정을 세상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기능으로 자주 활용했다면, 나이가 들면서 사고 기능이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일 텐데요. 이건 충분히 변할 수 있고, 앞으로 또다시 변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인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답니다.

Q MBTI를 놀이처럼 활용할 때 우리는 어떤 점을 경계해야 할까요?
인간은 하나하나가 고유한 개체입니다. 누구도 누구와 같을 수 없습니다. 특정한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 이 ENTP 같은 녀석아, 너 그럴 줄 알았어!”라고 분류하고 규격화해서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죠.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타인에 의해서 혹은 어떤 검사를 통해서 그 실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절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입니다. 우주에 대해서는 그 어떤 도구도 정확히 측정할 수 없죠. 무한하기 때문이죠.
인간이라는 우주는 너무나도 광활하여, 우리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 수 없어서 친구에게, 점쟁이에게, 4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성격 유형에 기댄다. 그게 나를 설명해줄 거라고. 그러나 또 우리는 얼마든지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내가 되고 싶은 나로 가장하기도 한다. MBTI의 열풍을 보면서 노파심인 양 걱정스러웠던 건, “이 유형인 나와 저 유형인 너는 상극이다, 원래 맞지 않는다”, “직원으로 INFP”는 두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적용이었다. 제대로 된 검사도 신뢰도가 떨어질 판에, 휴대폰으로 하는 간이 검사를 토대로 한다는 우려는 차치하고도 말이다. 나의 유형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위험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성격은 변화합니다. 사춘기와 중년기를 거치면서 변하고, 노년이 되면서도 변하고요. 살다 보면 환경적인 압력을 많이 받는데, 그중에서 자신이 속한 회사나 집단의 가치관에 순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전문의의 말을 한번 더 떠올리며, 나는 카카오톡 채팅창에서 받은 ‘ENTP 빙고표’라는 것을 그냥 넘겨버렸다. 절대로, 절대로, 좋은 말이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