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잠을 잠식한다? 생각이 많아서, 잠 못 드는 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없는데, 약간의 피로와 약간의 걱정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다. 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서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그냥, 생각이 많아서 그래.”

또 새벽이다. 평균적으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1시, 2시지만 언제 잠들 수 있을지는 모른다. 3시면 무난하고. 때로는 새벽 4시, 5시에 이르기도 한다. 운 좋게 새벽 2시쯤 잠이 들기도 하는데, 깨어보면 한 2시간쯤 지날 때의 슬픔이란. 어떨 때는 아침이 올 때까지 내가 잠이 든 것인지 안 든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현실의 고민이 꿈속으로 이어진 걸까? 꿈에서도 고민을 하는 걸까? 어쨌든 날이 밝으면 알람은 울리고, 회사는 가야 한다. 집 앞 카페에서 2천5백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운전대를 잡으며 멍한 정신을 카페인으로 깨우는 게 올해의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수면 부족으로 알레르기가 심해져, 몇 년 만에 다시 피부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진료를 봐준 선생님은 시간을 자주 내기 어려운 회사원임을 배려해 한 달 치 약을 지어준다. 알레르기 증상에는 항히스타민제가 필수다. 의사와 약사는 항상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졸릴 수 있어요.” 나의 대답은 항상 그렇다. “많이 졸린 약으로 주세요, 선생님.”

나는 항히스타민제 중에서도 졸음을 많이 유발한다는 성분을 외운다. 디펜히드라민. 1세대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의 부작용은 졸음이라, 요즘은 알레르기 치료제보다 수면유도제로 더 자주 쓰인다. 비행기 안에서 재채기가 잦은 나는 장거리 비행으로 출장을 갈 때면 일부러 디펜히드라민을 찾아 먹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소용이 없다. 잠을 못 자는 새벽이면 피부는 더욱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항히스타민제가 아니라 안정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피부과 선생님은 농담으로 듣고 웃는다. 농담이 아닌데요.

잠 못 이루지만 불면증은 아니야

이번에는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김병수 원장에게 나의 증상을 털어놓았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고. 때로는 잠을 자고 있는지,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게 계속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그래요. 현실에서 있었던 고민이 꿈에서 반복되는 겁니다.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수면 위생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수면 환경이 잘 구성되어 있는지, 적절한 온도, 빛, 소음이 차단되어 있는지. 자기 전에 반신욕이나 이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등. 술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숙면에 방해가 됩니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서 주인공은 현실의 괴로움,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잠’을 선택한다.

주인공은 깨지 않고 오래오래 잠들기 위해 약물의 힘을 빌린다.

대상포진 후유증을 치료하던 때가 떠올랐다. 휴식과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저녁용 약에는 안정제가 1개도 아니고 겨우 절반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잠시 안정제의 위력을 느껴봤다. 쉽게 잠에 도달했고, 아침까지 푹 잤다. 좀처럼 열리지 않은 잠의 문에서 서성거리는 밤이면 종종 그 마법의 알약을 떠올린다. 생각이 많아서 잠을 설치는 건 사실 나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예민해서’거나 ‘생각이 많아서’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병은 아니다. 수면다원검사에서도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냥 내 머릿속이 문제인 것이다.

과거 <센서티브>라는 책이 출간되자 모두가 자신이 민감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반대였다. 나는 항상 내가 털털하고 담담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피곤하게 예민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한 책에 실린 ‘매우 예민한 사람’ 자가 테스트를 해보았다. 7개가 넘으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데 아무리 보수적으로 따져보아도 10개는 해당되었다. 이런 책은 항상 위로를 한다. 매우 예민한 사람은 섬세하게 주변을 살피기에 높은 성취를 이룬다고. 특히 사람을 대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분야에 강하다고.

전문의 관점에서 민감한 사람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나 될까?

“민감함, 예민함을 정의하는 기준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연구자 나름의 기준을 정해서 민감함을 정의하는데요. 대략 10~40%까지 다양하게 보고되어 있습니다. 민감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연구자는 걱정이 많은 것을 기준 삼기도 하고, 감정 기복이나 ‘청각 과민성’ 같은 감각의 예민함을 기준 삼기도 해요.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신경증적 경향(Neuroticism)을 기준 삼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민감한 사람들이 여러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향이 더 많을까?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지만, 항상 기질이나 성격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자극이나 스트레스, 환경 변화가 있을 때 민감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불안 반응, 공포 반응을 더 많이 보이는 것이지요. 작은 자극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그래서 두근거리고,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뇌가 “이건 무슨 큰 일이 생긴 거야” 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불안이 잠을 잠식한다

“불안은 생리적 불안과 인지적 불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생리적 불안은 몸이 불안한 거죠. 두근거림, 떨림, 흥분된 상태 등. 인지적 불안은 걱정 염려, 불길한 생각 등 인지적으로 불안해하는 겁니다. 안정제는 어느 정도 이 두 가지 다에 작용합니다. 하지만 불길한 생각이 많아서 잠이 오지 않는데,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다, 라고 했을 때 안정제만으로 조절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시 내 심사를 들여다보니, 나의 불면도 불안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소한 불안과 막연한 불안이 섞여 있다. 많은 사람과 상황이 얽혀 있는 화보가 망할까봐, 섭외가 안 될까봐, 독자들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집값은 오르는데 집이 없어서, 삶에서 느끼는 어떤 환멸, 코로나 시대에 어떤 기사를 만들고, 올해 매출은 어떻게 될까 싶은 걱정은 다시 이름을 붙인다면 ‘불안’이기도 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아무리 물어도 나의 이성은 그저 ‘괜찮다’고만 하지만 어떤 신체적 지표나 검사를 해보면 스트레스 수치는 항상 높다. ‘어른의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혼자 잠드는 밤에는 나의 기질과 무의식이 걱정과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그걸 불면으로 표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우리 인간이 심리적, 정신적 괴로움에 휩싸이는 근원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자아를 어떤 역할과 동일시하는 데서 옵니다. 나라는 사람을 사회적 역할과 동일한 것으로, 혹은 같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심리적 괴로움이 생깁니다. 어머니다워야 하고, 아이다워야 하고, 팀장다워야 하고. 물론 이것은 사회화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동일시하면 심리적으로 경직되지요.”

안정제를 처방받을까? 싶다가 말기로 한다. 사실 나도 잠 못 드는 밤의 규칙을 발견했다. 마감이 끝나면 잠을 잘 잔다. 그렇게 잘 잘 수가 없다. 금요일, 토요일에는 잠이 잘 오다가,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잠을 설친다. “이런 분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안정제도 꼭 일요일 밤에만 먹고요. 불면증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깝기 때문이죠. 직장인 중에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다음 날 골프 약속이 있는데 잠을 못 잘까봐 먹기도 해요.”

이게 다 팬데믹 때문이다 싶기도 하다. 올해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내 개인에게 리프레시를 주지 않았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일만 하고 일 걱정만 했다. 여럿이 모여 회포를 푸는 일도 줄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도 서로 걱정거리만 나눈다. 그럼에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시대에 대한 걱정이다. 다시 말해 불면은 ‘코로나 블루’ 증상이기도 한 것이다. 김병수 원장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이럴 때일수록 작은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죠. 어린 시절에 즐겁게 했던 놀이를 떠올려보세요. 어릴 때 색칠 놀이를 좋아했는지,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는지, 글을 쓰며 놀았는지, 레고 블럭 맞췄는지. 어린 시절에 순수하게 즐겼던 놀이를 성인 버전으로 다시 해보면 그게 제일 잘 맞아요.” 어린 시절에 난 뭘 좋아했지? 어린 시절에도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했다. 저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김병수 전문의의 조언

Q 생각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데, 이제 잠이 잘 안 올까봐 하는 생각에 더욱 잠이 안 오는 것 같다.
불면증은 잠이 안 오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 못 자면 어쩌지” 하는 불안 때문에 불면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못 자도 상관없다. 잠이 들지 않더라도 누워서 쉰다”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야만 한다”라고 강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긴장해서 더 잠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 못 자도 괜찮다, 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잠이 안 오는 현상에 나이, 계절 등도 영향을 미칠까?
나이가 들수록 수면도 노화합니다. 노인들이 새벽잠이 많아졌다, 라고 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수면 위상이 앞으로 당겨집니다. 그래서 초저녁에 잠이 오고, 새벽에 일찍 잠이 깹니다. 수면의 깊이도 얕아지고, 자주 깨게 됩니다. 이것도 수면의 노화 현상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꿈도 많이 꾸죠. 계절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포유류라서 그런지 겨울이 되면 수면이 대체로 좀 길어집니다. 일조량과도 관련이 있죠. 동면하듯이 겨울에는 잠이 좀 늘어나고, 해도 늦게 뜨니까. 여름이 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Q 잠이 안 오니까 책도 읽고, 유튜브 같은 콘텐츠도 보다 보면 새벽 4시가 되기 일쑤다. 가만히 잠을 기다리는 편이 좋을까?
절대로 금기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인터넷, 텔레비전 등을 보면 수면에 방해가 됩니다. 문제가 더 생기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습관이 오히려 불면증을 유발합니다. 젊은 분들 중에 이렇게 해서 수면을 더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30분 전부터 전자 기기를 멀리하고, 코드도 뽑아놓아야 합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조용한 라디오, 클래식 음악, 성경이나 불경 말씀, 고요한 자연의 소리 같은 ASMR 같은 소리를 틀어놓는 게 좋습니다.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SHUTTERSTOCK
    도움말
    김병수(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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