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가 아니다. 타고난 체질에 따라 오장육부의 강약, 적합한 음식과 운동, 체형, 심지어 성격까지 구별된다는 팔체질 의학의 세계.

 

“얼굴과 두피가 붉고 화가 자주 나는 편이면 토(土)나 목(木) 체질일 것 같아요. 한의원에 한번 가보는 게 어때요?” 지난달 옥주현과의 인터뷰 중 그녀가 역으로 내게 물었다. 그녀는 흔한 다이어트 식단 대신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붉은 고기와 뿌리 채소를 충분히 먹고, 넘치는 칼로리는 운동으로 소비하면 건강과 슬림한 보디라인을 모두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체질에 따라 맞는 음식이나 운동이 다르니 체크 먼저 하라는 것.

팔체질 의학은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뉘는 사상체질과 더불어 중의학(中醫學)과는 구별되는 한국의 독창적인 의학체계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권도원 박사가 일본에서 발표하고 8체질에 매료된 도올 김용옥과 그의 제자이자 8체질의 이론을 서적으로 펴낸 주석원에 의해 다듬어져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한의학적 장기인 5가지 장(간, 심장, 췌장, 폐, 신장)과 5가지 부(담낭, 소장, 위, 대장, 방광)에 각각 상대적인 강약이 있고 이에 따라 8가지 체질로 구분하며, 각 체질의 식성이나 체온, 체취, 체형, 더 나아가 재능과 성품까지 독립된 형태로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같은 약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기도 하고, 어떤 음식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 체질 감별을 하는 방법이 한의사들마다 다른 경우가 적지 않고 맥진 위주로 감별하다 보니 신뢰성 있는 감별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단순히 증상에 따른 일방적인 처방을 내리지 않고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므로 개인별 맞춤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 외에 스스로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는 섭생법, 체질에 맞는 운동 등으로 타고난 체질의 약점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른바 홈케어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팔체질 전문 한의원에 가면 우선 맥진으로 체질을 감별한다. 그리고 침자(순간적으로 튕겨나와 자극하는 침)로 경혈을 자극해 그 반응을 살피면서 판단한다. 침을 맞는 동안 가장 불편한 곳이 어디인지(내 경우에는 고질적인 지루성피부염과 안면 홍조, 화병 등)를 묻고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는지, 지금 하는 일은 어떤지, 잠은 잘 자는지 등의 질문이 30분 정도 이어졌다. 기분 상태까지 꽤나 꼼꼼하게 물은 후, 평소 식사할 때 즐겨 먹는 음식, 먹으면 불편했던 음식, 평소 소화 상태, 변을 보는 상태와 횟수, 두통의 횟수, 땀을 흘리는 정도 등 다양한 내용의 문진표를 작성한다. 보통 2~3번 정도 방문하며 같은 검사를 반복해 체질을 확인한 다음 알려준다. 3일 내내 아침마다 침을 맞으며 속사포 같은 질문에 답을 한 뒤에야 ‘토양체질’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토양체질-항상 여유 있는 마음으로 서둘지 않는 것이 당신의 건강법입니다. 술과 수영은 해가 됩니다’라며 유익한 음식과 해로운 음식 리스트가 적힌 종이도 함께. 토양체질은 췌장과 위가 잘 발달되어 소화력이 좋고, 성격이 급하고 무슨 일이든 주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스트레스도 잘 쌓이는 성향이라고. 육류와 채소는 대체로 다 잘 맞지만 흥분을 키우는 커피는 물론 닭고기, 고추, 생강, 파, 양파, 카레, 벌꿀, 옥수수 등 몸에 열을 돋우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치킨을 주식처럼 먹던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하루 2~3잔은 마시는 커피도 끊어야 한다니(한의사는 ‘줄이지 말고 끊으세요’라고 했다. 마치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체질식을 한 지는 일주일이 좀 넘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연어 등을 구워 잎채소, 밥 등과 함께 심플하게 먹고 체질식에 완벽히 적응할 때까지는 맞는 과일도 멀리하라는 엄명에 이 씁쓸하고 느끼하고 텁텁한 식단을 유지 중이다. 고추, 파, 양파, 마늘 등을 먹을 수 없으니 김치는 물론 피클도 안 된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는 벌써 물렸다. 그런데 몸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고 확실하다. 잠을 잘 자고, 식탐도 줄어들고, 살도 빠질 거라는 한의사의 말이 허경영의 ‘내 눈을 바라봐 너는 행복해지고’로 들렸는데 웬걸. 정말 잠을 잘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며,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지루성피부염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늘 열이 올라와 붉은 기가 돌던 안색도 좋아졌다. 아침부터 한숨을 내쉴 만큼 피로가 심했는데 커피 없이도 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 고기를 든든히 먹어서인지 간식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렵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한 달은 실천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WHAT’S YOUR TYPE? 

금양 체질
폐 › 췌장 › 심장 › 신장 › 간
폐가 크고 간이 약한 체질로 주로 키가 크고 늘씬한 사람이 많다. 수영과 마라톤 같은 폐활량을 요구하는 운동이 잘 맞고, 건강을 위해 일광욕이나 땀을 많이 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간이 약하므로 육식 및 인공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몸에 이롭지 않다. 생선, 갑각류, 조개 등과 푸른 잎 채소 및 메밀, 팥, 녹두 등이 체질에 잘 맞는다.

금음 체질
대장 › 방광 › 위 › 소장 › 담낭
대장이 강하고 다른 체질보다 대장의 길이도 긴 편이나 담낭이 약한 체질이다. 대장의 에너지가 과해지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나 궤양성 대장염 등으로 고생할 수 있다. 수영과 냉수욕이 잘 맞으며 명상, 요가 등으로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것이 좋다. 육식을 많이 하면 화를 잘 내게 되므로 육식을 금할 것. 잘 맞는 음식은 생선, 조개류, 메밀, 푸른 잎 채소 등.

목양 체질
간 › 신장 › 심장 › 췌장 › 폐
간이 가장 강하고 폐가 가장 약하다. 땀을 많이 흘리며, 사우나, 반신욕 같은 땀흘리는 활동을 하면 몸이 가벼워진다. 평소 말이 적고 숨이 짧은 편이며, 기침이나 가래,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대체로 육식이 잘 맞고 뿌리채소, 견과류, 우유, 인삼, 대추 등 따뜻한 음식이 좋다. 생선 및 조개류, 술, 메밀, 포도, 오이 등은 금물.

목음 체질
담낭 › 소장 › 위장 › 방광 › 대장
담낭이 가장 강하고 대장이 약한 체질로, 대장의 길이도 다른 체질에 비해 짧아 대장이 무기력해지기 쉽다. 평소 배가 차고 맥주나 찬 음식을 먹으면 배앓이를 자주 하는 편. 몸을 따뜻하게 하는 소고기, 돼지고기, 모든 뿌리채소와 마늘, 파, 양파, 계피, 녹용 등이 잘 맞는다. 바다 생선, 조개류, 굴, 갑각류, 메밀, 맥주, 초콜릿, 등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의 음식은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토양 체질
췌장 › 심장 › 간 › 폐 › 신장
췌장의 힘이 가장 강하고 신장이 약한 체질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화병과 우울증이 올 수 있으므로 느긋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냉수욕이나 수영같이 땀 배출을 막는 운동은 금물. 등산이나 러닝 등 체온을 올려주고 땀을 흘릴 수 있는 운동이 좋다. 소고기, 돼지고기 등 붉은 육류와 콩, 팥, 바다생선, 푸른 잎 채소 등이 잘 맞으며 닭고기, 파, 양파, 고추, 인삼, 술 등은 금물.

토음 체질
위 › 대장 › 소장 › 담낭 › 방광
10만 명 중 한 명꼴로 나오는 드문 체질. 위장이 강하고 방광과 신장이 약한 유형으로 음식이나 약의 부작용이 심하니 주의해야 한다. 땀을 내는 운동이 좋지만 하체가 약해 자전거 타기처럼 하체 근력을 많이 쓰는 운동은 좋지 않다. 위장의 열을 식혀주는 돼지고기, 메밀, 보리, 팥, 녹두, 오이, 바다생선 및 조개류 등이 적합하며 닭고기, 감자, 고구마, 후추, 파, 양파, 생강, 인삼, 홍삼은 피할 것.

수양 체질
신장 › 폐 › 간 › 심장 › 췌장
소화기가 약해 식욕부진, 설사, 소화장애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하체가 발달하고 운동 신경이 좋다. 건강할 때는 땀을 거의 흘리지 않지만 몸이 허해지면 땀이 난다. 냉수욕과 냉수마찰 등으로 땀을 내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 닭고기, 인삼, 대추, 계피, 생강, 벌꿀 등 속을 따뜻하게 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음식이 적합하다. 속을 차게 하고 소화에 부담을 주는 음식은 상극이다.

수음 체질
방광 › 담낭 › 소장 › 대장 › 위
방광이 강하고 위가 약한 체질로 위장장애가 발생하기 쉽고 설사나 배앓이도 잦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마르고 내성적인 성격인 사람이 많다. 무리한 운동보다는 요가와 명상 같은 정적인 운동이 잘 맞는다. 돼지고기, 굴 등 차가운 음식이 특히 독이 되므로 따뜻한 기운을 보태주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고 적게 먹는 편이 낫다. 소고기, 닭고기, 현미, 찹쌀, 생강, 대추 등이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