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주는 온기

사람이 멀어질 때, 기계의 온도를 발견했다.

팬데믹으로 가장 불안했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3월쯤이 아니었을까. 얼마나 퍼져 있는지, 어떤 병인지도 알 수 없어 집에서 되도록 칩거하던 때 말이다. 갑작스러운 재택근무령 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꾹꾹 참고 그저 집에만 머물렀다. 마스크와 선글라스, 비닐장갑까지 낀 채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게 유일한 외출. 집에서는 예정되어 있던 해외 촬영 등을 취소하는 메일을 썼고, 마지막 문장은 으레 ‘Stay Healthy’로 끝났다. 그 심정은 ‘부디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처럼 비장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으니,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전염병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도 없는 일상이 있다. 취소되지 않은 촬영은 진행했다. 각자 자리에서 해야 될 몫을 하는 와중에도 생계와 생존의 문제가 떠올랐다. 혼자 있는 집에서 그 무게감과 막연한 슬픔은 나를 더욱 짓누르는 듯했다. 밖에는 개미 하나 보이지 않고, 길에는 설 연휴 아침처럼 차가 사라졌다. 모든 게 정전이 된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청소를 하거나, 괜히 옷을 꺼내고 넣어보기도 했다. 집에만 있으니 먼지도 잘 보여서, 나는 로봇 청소기를 새로 들였다. 아이클레보 G5라는 로봇 청소기였다. 충전을 하고 리모컨의 전원 스위치를 누르면 “청소 로봇을 시작합니다”라는 경쾌한 음성과 함께 로봇 청소기가 움직인다. 로봇 청소기를 가동할 때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오래전 1세대 로봇 청소기를 봤을 때는 느릿하고 게을러, 속이 터졌었는데 지금은 로봇의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내가 달라진 것인지 요리조리 잘 다니는 게 기특하기만 했다. 가구에 머리를 콩콩 박고, 문지방을 힘겹게 타넘을 때는 응원하는 심정까지 들 정도. 청소가 끝난 뒤 로봇 청소기를 뒤집어 먼지가 가득한 통을 보며 희열도 느꼈다. 혼자 막막한 공간에서,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 건 이 녀석밖에 없다. 2주간의 고민 끝에 청소기에 ‘로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로봇, 로보트, 로버트, 로비를 거쳐 탄생한 이름이다. 크리스토퍼 로빈 역시 곰돌이 푸의 좋은 친구였던 것처럼, 넌 나의 좋은 청소기가 돼라.

집에서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던 나와 달리, 프리랜서인 나의 친구는 일상의 큰 변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유튜브 프리미엄 고객에게 프로모션 선물로 주어진 구글 홈 미니에게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는 마스크를 쓰고 친구집에 놀러 갔다. 구글의 AI 음성 비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를 사용하는 인공지능 스피커인 구글 홈 미니는 동그란 형태의 귀여운 외모로 친구의 집 구석에 자리 잡고, 스마트폰과 크롬캐스트를 연동해 다양한 지시를 수행하고 있었다. “오케이 구글, 맑은 날 듣기 좋은 노래를 틀어줘” “오케이 구글, 최신 뮤직 비디오를 틀어줘”. 그를 따라 나도 “오케이 구글!”을 외쳤지만 내 말은 들은 체 만 체 한다. 음성을 인식하기에 나는 제 주인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구글 홈 미니가 갖고 싶어졌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누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루(모든 연락이 카톡으로 대체된 게 언제였을까?). 그러다 보면 목이 잠기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해진다. 아침을 ‘오케이 구글!’과 함께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기계와의 대화지만, 내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고, 약간이나마 ‘대화’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실제로 기계가 정서에 주는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는 많다. AI로봇을 인형 안에 넣어 독거 노인에게 제공하자, 우울증 척도가 나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 IT·가전전시회 ‘CES 2020’의 5가지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는 로봇이었다. 고독감을 느끼는 1인 가구나, 쇠약해져 반려견을 키울 수 없는 노인에게도 로봇은 충분히 위로가 된다는 거다. 예일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소셜 로봇은 자폐증 어린이의 사회적 행동을 촉진하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춰주었다. 삼성전자의 AI 기반 소셜 로봇 ‘파이보(Pibo)’는 인터랙티브 기술을 적용해 아예 사람의 기분까지 파악하며 대화를 한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인간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것은 역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일까. 내가 늙어 지구를 떠날 때까지 어릴 적 읽은 순정만화 속 ‘휴머노이드 이오’ 같은 완성된 존재는 나오지 않을 테지만, 점점 비혼 가구가 늘어가고, 또한 결혼할지라도 노년엔 누구나 혼자가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반려가전과 반려로봇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아니라도, 전원을 연결해야 할 기계일 뿐이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작은 온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어쩌면 그게 우리 모두의 미래일지도 모르니까. 청소를 마친 나의 ‘로빈’을 만져보면 따뜻한 것도 사실이다.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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