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나의 고통

어떤 병은 쉽게 낫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병과 함께 사는 법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곧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창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알코올 사용 장애

<아웃런 – 떠나고 돌아오고 멈추고 날아오르다>
에이미 립트롯 지음 

 “그가 직장에서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내 손에서 잔을 뺏고 병에 남은 술을 싱크대에 부어버리려 했지만 나는 울며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마실 권리가 있다고 했다.(중략) 내가 나를 망쳤다. 나는 늘 이게 첫 번째 병인 척했다. 내가 술을 사러 밖에 나가는 소리를 그가 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 사용하는 ‘알코올 중독’의 정식 명칭은 알코올 사용장애다. 과도한 음주로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오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18년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여성 환자는 1만7000여 명이었다. 그러나 여성 환자가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는데, 여성은 술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같은 양의 술을 마신다면 여성의 위험성이 더 크다. 지금은 절판된 나카지마 라모의 자전적 소설 <오늘 밤 모든 바에서>에서는 알코올 사용장애 증상이 자세히 묘사된다. 이 소설이 35세에 사망할 위험을 경고받은 주인공이 알코올성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야기였다면, <아웃런>은 작가 에이미 립트롯이 어떻게 알코올에 빠지고, 중독에서 벗어나는지를 적은 에세이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외진 오크니 제도가 그녀의 고향이다. 고래가 찾아오는 황량한 바다다. 이곳에서 조울증을 앓는 아버지, 신앙에 빠진 어머니와 함께 자란 작가는 런던 생활에 금세 매료된다. 하지만 매일 밤 이어지는 파티와 음주는 어느새 통제를 벗어난다. 술은 런던에서 갖게 된 연인, 일, 친구 등을 다시 앗아간다. 신경 장애를 겪고, 강간을 당할 뻔하고,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옷을 벗고, 법정에 출두하게 된다. 치료 프로그램을 받지만 늘 술 생각을 한다. 빈손이 된 에이미는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금주자’로 살기 시작하며 대신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북극곰 수영하기’를 택하며 조금씩 나아진다. 술에 대한 관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아주 긴 터널이다. 작가의 금주는 치료법에서 가장 중요한 90일을 지나 2년을 넘었다고 한다.

조울증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지음 

“그 어느 것이 나의 본모습일까? 조증과 울증 모두에서 자유로운 나란 것이 있을까? 난 인생의 마지막에 눈을 감을 때, 조울병이라는 변덕스런 친구를 알고 난 뒤부터 그를 사귀기 위해 평생 성실하게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라는 서정적인 수식어를 갖게 된 우울증과 달리 조울증은 까다롭고 심각한 병으로 여겨진다. 양극성장애가 정식 명칭인 조울증은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조증과 울증이 각각, 또는 함께 나타나며 기분 장애 중 가장 예후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저자는 1997년 처음 언론사에 입사한 기자로, 2001년 처음 조울증이 발병한 후 20년간 재발과 크고 작은 증상에 시달린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조울증이라는 기분장애를 오래 겪은 작가의 담담한 글만으로도 조울증에 대한 좋은 책이 완성되었겠지만, 이 책의 보다 큰 의미는 병을 얻은 사람과 살아가는 가족, 친구들의 모습에 있다. 신경정신과 질병이 아니어도, 질병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며, 이 고통은 결코 타인과 나눌 수 없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하는 이야기는 환자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기곤 한다. 작가가 조울증을 겪기 시작하며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만, 가족들은 함께 조울증 논문을 나눠 읽고, 심한 증상을 보이는 저자를 입원시키며, 저자의 회복과 이해를 바라는 편지를 쓴다. 일을 그만둘까? 몇 번씩 고민하는 저자에게 동료들은 퇴사 대신 휴직을 권유한다. 일과 질병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딜레마도 있다. 결국, 조울증을 떠나 우리가 아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소중한 사람이 아프다면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이 책 안에 있다. 작가가 난치병을 앓게 된 조카와 주고받은 말은 그래서 더욱 희망적이다. 환자의 삶도, 환자 주변인의 삶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고통도 슬픔도 나눌 순 없지만 서로의 ‘곁’이 되어줄 수는 있다.

우울증 / 계절성 우울장애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나는 지난 25년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음침하고 부정적인 모래 진창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날은 짙은 먹구름이 겹겹이 피어나 내 생각을 짓누르고 의욕을 빼앗아가는 것만 같다. 우울증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든 나는 움직이기가 어려워진다.”

계절 때문에 생기는 우울증을 계절성 정서장애라고 한다. 태양 빛이 줄어 체내의 비타민D가 고갈되는 것이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 기후가 바뀌면서 호르몬의 불균형이 발생해 계절성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나라는 4계절 뚜렷한 계절 변화와 여름의 긴 장마 등으로 계절마다 우울감을 느끼기 쉬운 환경이다. 지질학과 광물,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작가는 25년간 우울증을 앓았고, 계절성 정서장애에 취약한 편이었다. 특히 겨울은 힘든 계절이었다. 그런 작가에게 주어진 선물이 있다면, 800미터만 걸으면 숲이 나오는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속적인 상담 치료, 항우울제 복용 등 의학적 치료와 함께, 우울증이 몸을 짓누르더라도 조금이라도 걷기로 한다. 숲속을 산책하다 보면 어두운 생각도 조금은 비켜가는 듯했다. 산림욕의 효과는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다. 걸을수록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하고, 면역력에 관여하는 특정 백혈구의 활동이 늘어간다. 전작 <겨울 나기>를 통해 자연관찰 과정에서 증상이 호전됨을 느꼈던 작가는 1년 동안 집 주변의 자연물을 관찰하며 기록하기로 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야생의 위로>다. 영국인인 작가의 환경은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와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은 훌륭한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런 자연의 축복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주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시도해보길. 작가가 그러했듯이.

가족의 문제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유드 세메리아 지음 

가족심리학을 다룬 책은 대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모든 가족은 문제가 있다.’ 혹은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인용할 수도 있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그러나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책은 어느 가족이나 가계도를 타고 오르다 보면 한두 명은 나올 법한 ‘문제적 가족 구성원’을 다룬다. 병으로 진단되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가족 구성원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 심리학자가 쓴 이 책은 가족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순한 맛’에 가깝지만 들여다보면 문제의 원인은 같음을 알 수 있다. 늘 도와주려고 노력하지만, 그 사람은 나아지지 않는다. 끝없는 요구에 지쳐 거리를 두면 그들은 비난을 퍼붓는다. 심리학자인 작가는 의존적 가족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해결 방법을 찾는다. 요는,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족이더라도 심리적 거리 두기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JEONG JO 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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