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식 아나바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사고, 저렇게 팝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실현하는 2020년식 아나바다.
빈티지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종로5가 광장시장 안에서의 쿰쿰한 냄새와 함께한다. 싼 게 비지떡이었던 고등학생에게 브랜드 옷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구제시장은 매력적인 쇼핑 스팟이었지만, 몇 번 입지도 않고 버리는 게 태반이라 성인이 되고 나선, 구매하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 얼마 전까지 좋은 옷을 사서 오래 입자는 마음으로 쇼핑을 하곤 했는데, 최근 1980~90년대 패션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세컨드 핸드 제품에 다시금 눈길이 갔다. 오버사이즈 블레이저, 바게트백 등 과감하거나 빈티지한 디자인이라 구매하긴 부담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세컨드 핸드 제품으로 유행에 탑승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벨라 하디드가 빈티지 샤넬백, 오버사이즈의 레더 블레이저 등으로 1990년대 패션을 연출한 것을 보고 더욱 구미가 당겼다. 웹사이트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세컨드 핸드 제품을 취급하는 곳은 여럿이었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물건의 양이 방대한 중고 온라인 플랫폼 ‘더 리얼 리얼’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를 둘러봤다. 이제는 살 수 없는 올드 셀린느부터, 고민만 하다 결국 품절되고 말았던 로에베의 플랫 슈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장바구니에 물건을 마구 담을 수밖에 없었다.
두 플랫폼은 모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해주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이 조금 다르다. 먼저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의 장점 중 하나는 판매자와 흥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가격을 보내면 판매자가 승낙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만약 운 좋게 흥정에 성공하고 결제를 진행하면, 판매자가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 물건을 보내고, 제품의 정품 여부와 상태 등을 확인한다. 판매자가 갑자기 판매를 취소해버리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제품은 무사히 내 손에 들어온다. 대신, 판매자가 물건을 중개자에게 보내고 검수하는 시간이 있어 배송 기간을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직접 컬렉팅한 ‘We Loved’ 카테고리가 있다는 거다. 물건이 너무 많아 아이쇼핑조차도 버거울 때, 상태도 좋고 희소가치가 있는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딱히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없어도 구경하기 좋다. 또한 구매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다시 베스티에르에 판매할 수 있고 이 경우엔, 판매 수수료를 조금 할인해주기도 한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와 달리 더 리얼 리얼은 판매자가 보낸 제품을 먼저 검증한 뒤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방식이다. 중간 과정을 이미 초반에 진행하니 배송이 좀 더 빠르기도 하고, 모델이 입거나 들고 있는 것처럼 가상으로 피팅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제품의 크기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스텔라 매카트니, 버버리 등의 럭셔리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제품을 위탁하고 구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몇 년 전, 샤넬과의 위조품 소송 후, 꼼꼼한 검수 과정을 거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품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가격적인 측면 외에도 중고 온라인 플랫폼이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여럿이다. 온라인 리세일 플랫폼인 트레드업은 10년 이내에 패스트 패션을 구매하는 사람들보다 세컨드 핸드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패션계의 화두인 환경 이슈와 맞물려 대량으로 생산되고 빠르게 소비되는 패스트 패션보단,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품질의 세컨드 핸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환경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한 소비자들 때문. 그리고 이 소비를 주도하는 세대는 바로 MZ세대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총칭하는 MZ세대들은 SNS를 기반으로 한 소비에 최적화된 세대임은 물론, 사회적 가치나 메시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해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 소비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환경을 위한 가치 있는 소비, 돌아온 1990년대 트렌드, 남들과는 다른 레어템을 장착할 수 있다는 면에서 중고 온라인 플랫폼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건 당연한 일. 부모님 세대가 IMF 외환위기에 맞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했다면, 지금의 세대는 우리에게 친숙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아나바다를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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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다솔
- 포토그래퍼
- HYUN KYUNG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