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의 세상

나와 타인, 인간과 동물, 우리와 지구에 대해 말하는 재경. 그는 ‘나 하나’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티셔츠는 베트멍(Vetements).

알고 보니 같은 중학교를 나왔어요. 문득 중학생 때의 재경은 어떤 학생이었을지 궁금해졌어요. 
이런 말 제 입으로 하면 웃긴데(웃음) 입학식 날 반 배정을 받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복도 창문에 남자애들이 정말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거예요. 저를 보러요.

그때도 뭔가를 만드는 게 익숙했나요? 
어릴 때 용돈 받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어요. 저희 집은 용돈이 전혀 없었거든요. 지오디 앨범을 꼭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 그럼 어떻게든 만들어서 써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어요.

지오디 앨범은 살 수 있었나요?
강아지 목걸이를 만들어서 동물병원이나 강아지 카페에 납품했어요. 그때도 동물을 좋아했거든요. 일단 들어가서는 “이거 제가 만든 건데요, 납품가 얼마에 드릴게요.” 말하고 다녔던 건데 제법 쓸 만한 용돈벌이였어요. 앨범을 사고도 남았으니까요.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올릴 때마다 #alchemistjk 태그를 붙이고 있어요. 진짜 연금술사가 된다면 무엇을 만들고 싶나요? 
가장 먼저 만들고 싶은 건 절대 깨지지 않는 핸드폰 화면이요. 그리고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텐데 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알려주는 통역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금손이라는 수식어 외에 반려견에 대한 사랑으로 유명해요. 동물학대 방지 활동과 더불어 펀딩과 기부를 꾸준히 이어왔고요. 
그동안 제 주변에 멋진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와 제 작은 인지도가 만나 지금까지의 펀딩과 기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 늘 열려 있으니 연락 바랄게요. 하하.

동물학대 방지 활동의 일환으로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로 돕기로 했어요. 디자인을 통해 재능 기부를 한다거나, 인지도를 이용해 펀딩을 하는 일들이요. 제가 쓴 책이나 카롱이와 함께한 화보를 통해 생긴 수익금을 단체에 기부하기도 하고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팔찌와 휴대폰 케이스를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동물단체에 기부했어요. 이슈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펀딩과 기부라는 방법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버거울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이 하나 둘 보이더라고요. 막상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기부를 하자니 너무 적은 금액일 것 같고, 봉사를 하자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방법을 조금 더 쉽게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중 펀딩이 배우라는 제 직업과 디자인이라는 전공을 동시에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

자신의 활동으로 다른 존재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나요? 이렇게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회의감이나 의심이 들 수도 있잖아요. 
작년에 데뷔 10주년을 맞았어요. 그동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런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 제 인지도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옳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 ‘나 하나’의 힘을 믿어요.

데님 셔츠와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반려견 마카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반려견과 함께 어딘가를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죠. 반려동물이 가족의 존재로서 지금보다 더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처음 제주도를 함께 갔을 때만 해도 공항에 있는 강아지는 카롱이와 마약탐지견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다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거든요.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공항에서 많은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젠 국제선에서도 종종 마주치곤 해요. 불과 4~5년 사이인데도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여러 항공사에서 기내동반탑승 가능 무게를 늘리고, 반려동물 탑승기록 스탬프북을 만드는 등 반려견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분명 긍정적인 변화를 실감하기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더 기대돼요.

반려견과의 여행은 어땠나요? 우리나라와 무엇이 달랐나요? 
뉴욕에 도착해 JFK공항을 나오자마자 보였던 건 반려동물 화장실이었어요. 공항 밖 야외에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놓은 거죠. 그런 세심함은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여러 가게 앞에 반려동물을 위한 물그릇이 놓여 있다거나, 허리춤에 7~8마리의 반려견을 묶고 산책을 시켜주는 ‘펫시터’라는 직업이 따로 있다거나, 동네마다 있는 작은 공원 곳곳에 반려견을 위한 놀이터를 작게라도 마련해놓는 일들이요. 반려인과 반려견, 그리고 비반려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었어요.

많은 걸 느꼈을 것 같아요. 
뉴욕은 반려동물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반려동물의 스트레스도 낮아 보였어요. 우연하게도 행복한 강아지들만 만난 걸 수도 있지만 그 보름 동안에는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 마구 짖는 친구라든지, 공격성을 보이는 친구는 보지 못했어요. 그 뒤에는 반려인의 노력과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문화가 있어요.

아직도 반려동물을 소유재산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동물보호법에 총력을 가하고 있어요. 반려견에 대한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방향으로요.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장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반려동물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져요. 그런 노력이 모여 점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시급하게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현행법상 반려동물이 재물에 속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물과 가족 사이 그 어딘가가 분명 존재한다고 믿어요. 그 적당한 지점을 법 전문가분들이 잘 찾아주길 바라고 있어요.

‘펫티켓’에 대한 논의도 점점 확산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지켜야 하는 사항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나의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이들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나의 행동, 내 반려동물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해야죠.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해요.

반려인으로서 시작할 수 있는 노력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반려동물에 대해 잘 아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나의 반려동물이 어떤 것에 두려움을 왜 느끼는지, 두려움을 느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등을 공부해본다면 비반려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공간에서 피해를 줄 수 있는 여러 행동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거예요.

오버 사이즈 티셔츠는 베트멍, 타월 스커트와 로퍼는 프라다(Prada), 양말은 나이키(Nike).

반려견과 함께할지 고민하고 있는 비반려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하루의 끝에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오늘 하루, 내 삶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루 중 얼마만큼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 내가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생활 패턴의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일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 나를 반기는 반려동물을 보면 분명 큰 힘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행복은 일방적이어선 안 되니까요.

자연,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에 추천하는 것이 있나요?
요즘 넷플릭스에 푹 빠져 지내고 있는데, 그중 <부패의 맛>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있어요. 시즌2까지 나와 있는데 우리가 먹는 다양한 먹거리의 유통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예요. 주로 유통과정 안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나오는데 보고 나니 더 이상 지구를 아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삶의 모습이 변하기도 했나요?
점점 제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됐어요. 전에는 많이 시켜 먹었거든요. 맛있고 편할 수는 있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 건지, 이 재료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무엇을 먹는지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좋은 것들을 먹고 싶어졌어요. 이제는 웬만하면 직접 장을 봐서 해 먹는 편이에요.

많은 걸 신경 쓰게 되는 게 불편하지 않나요?
그래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아요. 무심코 변기에 버린 일회용 소프트렌즈가 흐르고 흘러 내가 마시는 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내 행동이 모두 다 돌아오는 거라면 신경을 쓰는 게 맞아요. 길게 보면 그게 나에게도 좋은 일인 거니까요.

어떤 걸 신경 쓰려고 노력하나요?
일주일 정도 비건에 도전하기도 했어요.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 탓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따질수록 먹을 게 너무 없는 거예요. 된장찌개만 해도 멸치로 육수를 내곤 하니까요. 포기하는 것보다는 일주일에서 5일은 비건식을 먹자고 그 비율을 조정했어요. 고기를 선택할 때도 자율방목 고기인지 공장형 생산인지를 따지게 됐고요.

주변 사람들과도 환경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편인가요? 
요즘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어요. 서로 공부할 만한 다큐멘터리나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한 걸음씩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에요. 다행인 건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손 닿는 곳에 아주 많다는 점이에요. 하나 둘, 손 뻗는 이가 많아진다면 지구가 좀 덜 아프지 않을까요?

환경운동의 가능성을 믿나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노력할 필요는 분명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해야지만 내년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티셔츠는 스투시(Stussy), 와이드 팬츠는 레이 바이 매치스패션닷컴(Raey by Matchesfashion.com), 빈티지 캡과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에디터
    최지웅
    인터뷰 에디터
    정지원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헤어&메이크업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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