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할 때마다 천우희는 매번 진짜가 된다. 스스로에 대해 인정하는 건 그것뿐이라고 했다.

 

스루 원피스, 이너는 순수(Soonsu).

우리끼리 얘기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발리에 있어야 했죠. 강남의 스튜디오에서 만나게 됐네요. 
발리에서 화보 찍으면 진짜 좋겠다 싶었는데요.(웃음) 저도 많이 기대했는데 아쉬워요.

딱 1년 만에 다시 만났어요. 예전 인터뷰를 다시 보니 그때 <멜로가 체질> 촬영을 앞두고 있어서 그 이야길 많이 했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새롭더라고요.
맞아요. 하이텐션이다, 새로운 역할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죠?

<멜로가 체질>은 신기한 작품이에요. 제 주변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하며 시청했는데 실제 시청률은 매우 낮았어요. 대체 누가 보고, 누가 안 본 걸까요? 
저도 주변에서 잘 봤다고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시청률이 항상 1%대인 거예요. 드라마 타깃층이 주말에 집에 있지 않고 재방이나,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으로 많이 보셔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간대가 조금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실망했어요? 
실망하진 않았어요. 작품 자체에 대해 만족도가 컸고 저는 너무 즐겁게 한 작품이에요. 저희끼리 시청률에 대한 의아함은 있었지만 항상 실망스럽지는 않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했던 작품과는 다른 결이고 도전이어서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어요.

지난번에 했던 인터뷰와 이어지는 이야기네요. 친구들과 플랫 셰어하는 것도 한번쯤 꿈꿔보는 이야기죠. 
살아보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같은 또래가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설정 자체가 좋더라고요. 배우들도 비슷한 또래였고 지은이 같은 경우에는 저랑 동갑이었고 여빈이는 두 살 동생이어서 별 차이가 없었어요.

퍼프 소매 블라우스, 스커트는 레지나 표(Rejina Pyo).

그런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과 지금까지 영화에서 해온 극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다른 점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캐릭터를 ‘리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표현의 차이는 없었어요. 항상 느끼는 대로 하고 작위적으로 설정해서 연기를 하지 않거든요. 역할보다는 드라마와 영화라는 다른 현장에서 오는 미세한 연기의 차이는 느꼈어요. 영화는 감독님과 현장에서 모니터링하고 의논하면서 만들어가는 반면 드라마는 순간적으로 제 걸 꺼내 쓸 때도 많고, 즉흥적인 게 나오다 보니까 리액션이 달랐던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영화계는 직격탄을 맞았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자영업하는 분들도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제 경우는 가족이 자영업을 하니까, 피부로 와 닿으니까요. 모든 생활권이나 경기가 침체되니까 걱정이에요. 동료 선후배들 영화 제작이나 개봉의 어려움도 정말 피부에 와 닿아요. 다들 그 한 작품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그날만을 기다렸을 텐데 안타깝죠. 어서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갔음 좋겠어요. 자연재해급의 어려움이지만 현명하게 잘 넘기길 바라고 있어요.

얼마 전 ‘세계 여성의 날’에는 인스타그램으로 여성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포스팅을 올렸었죠? 
보셨어요? 제가 앞장서서 뭘 할 만큼은 못 되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담는 거죠.

<윤희에게>, <우리들> 같은 영화를 함께 올리니까 반갑더라고요. 
<윤희에게>가 너무 좋았어요. 담담하고 서정적이었고요. 사실 제목만 봤을 땐 어떤 영화인지 가늠이 안 됐는데 섬세한 영화더라고요. 여성 감독님이나 신인 감독님이나 응원을 많이 해드리고 싶고 힘이 돼드리고 싶어요. 그것만으로 작품을 선정하는 건 아니고, 우선 시나리오가 흥미로워야 하지만 그 이후에 결정되면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하죠.

당신 역시 작은 영화에서부터 연기를 해왔기에 기회의 중요성을 잘 알 것 같아요. 
지금도 작은 영화에서 많이 연락이 와요. 그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것도 감사하고 그 기회를 저버리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좋은 작품만 있다면 늘 하고 싶어요.

옐로 원숄더 원피스는 에스와이지(SYZ). 봄 데일리 룩에 포인트가 되어줄 미니수지 백은 15만 9천원, 이네스(IINES).

연기를 워낙 잘하니, 누군가에게는 천우희와 함께 작품을 하는 게 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도 않아요. 연기를 정말 열심히는 하는데,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뭐가 잘하고 좋은 건지… 제가 진짜 느끼고 실제로 그 안에 녹아들었을 때가 제일 좋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관객이 봤을 땐 아닐 수도 있잖아요? 반대로 마음이 아닌 스킬적으로 연기를 했는데 반응이 좋을 수도 있는 거고요.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고, 잘하는 연기인지는 아직도 찾아가고 있어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스스로의 기준이 높네요. 그럼 스스로를 어떤 배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는 배우? 
그런데 또 제가 진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가 문득 ‘다 이 정도는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배우들 다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제 강점이라면, 진심으로 진실로 연기하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건 자신 있어요.

진실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믿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을 믿어요? 
작품도 그렇고 감독, 배우, 같이 하는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도 그렇고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는 순간부터 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공간에 있는 걸 느끼다 보면 그땐 그게 진짜라고 믿어요.

1년 새 <멜로가 체질>을 했고 최근에는 영화 <앵커> 촬영도 마쳤어요. 정말 쉬는 기간이 없군요? 
정말 쉬려고 했어요.(웃음) 매년 바쁘고 알차게 보내서 정말 이제는 쉴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맘에 드는 작품을 보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이것만 하고 쉬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어요.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항상 같은 기회는 아니잖아요? 마음을 잘 다잡고 해보자.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겠지만 흥미가 있으면 다 잊게 돼요. 그래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화이트 드레스는 미스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슈즈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컬러 블록과 슬로건 프린팅으로 위트를 더한 캔버스 소재 미니데이 백은 12만 9천원, 함께 레이어드한 가볍고 컴팩트한 사이즈의 포케 백은 4만 9천원, 모두 이네스(IINES).

<앵커>는 어떤 점이 흥미로웠어요? 
우선 <앵커>는 저를 많이 기다려주셨어요. 여성 감독이신데 그 작품을 여러 번 제안받았고, 감독님께서 포기하시지 않은 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처음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장르물을 혼자 끌어간다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점점 이야기가 디벨로프되고 감독님이 각색하실 때마다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 정도로 의지가 있고,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감독님이라면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같이 했던 선배님들이 너무 좋기도 했고 이야기 자체도 제가 처음 해보는 거라 좋았어요.

방송국의 간판 앵커 역할을 맡았어요. 이번에도 도전이었나요? 
지금까지는 항상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초년생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역할을 맡은 것도 스스로는 도전이었어요. 항상 좌충우돌하고 미성숙한 캐릭터만 하다가 ‘완생’ 느낌의 캐릭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커리어를 쌓은 인물을 연기하면 어떻게 나올까? 연기라는 게 평생 삶이랑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연기를 10년 했어도 아직 모자라고 어리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저도 직업으로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있는데 그걸 역할에 녹여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스스로 못 미더운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어린데? 너무 부족한데?’ 지금까지는 캐릭터가 강렬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역할을 주로 해왔다면 이번엔 한발 더 도전해보자 싶었어요.

아나운서 발음을 구현하는 건 어땠어요? 
시간이 너무 없어서 20일 안에 모든 걸 마스터했어야 해서 매일 3~4시간씩 수업하고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해서 6개월 치를 20일 안에 해냈어요.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어요. 현장에서 물론 괜찮다고는 했지만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해주신 건지 그냥 독려해주신 건지는 영화를 봐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저는 꽤나 열심히 노력했어요.(웃음)

일반 발음과 다른가요? 
발성부터가 전혀 다르더라고요. 흉내를 낸다고 나름 열심히 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해오신 분을 한두 달 만에 따라 하는 건 말도 안 되더라고요.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지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역할을 맡고 아나운서분들이 아나운싱을 하는 자세나 메이크업, 디테일이 다 다르다 보니까 그걸 찾아보는 재미가 생겼어요. 예전엔 뉴스의 내용만 들었다면 이젠 아나운서분들이 보여요. 목소리, 발음이나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자세나 의상은 어떤지가 눈에 들어오니까 요즘 뉴스가 재미있어요.

핑크 체크 재킷, 팬츠는 모두 MSGM 바이 한스타일(MSGM by Hanstyle). 슈즈는 멀버리 (Mulberry). 도시적인 에나멜 소재와 캐주얼한 모양이 인상적인 시티 백은 14만 9천원, 이네스(IINES).

그 외에는 어떤 점이 달랐어요?
제 경우엔 프롬포터 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대본을 다 외웠는데, 현장에서 실제 아나운서처럼 프롬포터를 보면 연기하기가 더 쉬울 거라고 준비해주셨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해보니까 그게 오히려 제 시선을 방해해서 연기에 개입이 되더라고요. 둘째 날부터는 그냥 안 보고 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편하게 되더라고요. 첫날을 다시 찍고 싶었어요.(웃음)

영화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네요. 시놉시스 두 줄 소개가 전부라,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어요. 스릴러 장르인데 이번에도 무서운 영화인가요? <곡성>은 너무 무서워서 중간에 도망갈까 했거든요. 
이게 심리 스릴러다 보니까 노출이 적어요.(웃음) 정말 심리를 많이 따라가기는 해요.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 <곡성>이랑은 다른 긴장감이 있어요. <곡성>이 무서웠단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저는 작품 내용을 다 알고 보니까 관객으로는 느낄 수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기생충>을 관객 입장에서 보는 것과 직접 출연한 배우 입장에서 보는 건 다르겠죠. 스포일러가 없었다면 문광이 나타났을 때부터 모두가 긴장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요! 이정은 배우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정말 감탄하면서 봤어요.

<앵커>에서도 신하균, 이혜영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했는데요. 
두 분을 더 많이 만나지 못해 아쉬워요. 이제 좀 친해져서 수다도 떨고 할 즈음에 끝나서 서로 아쉽다고 할 정도였어요. 두 분 다 베테랑이시니까 너무 좋았어요. 특히 혜영 선배님 같은 경우는 영화가 오랜만이라 설레어하시기도 했고요. 신하균 선배님은 워낙 말씀이 없으신데 나중엔 같이 수다를 너무 많이 떨어서 수다 떨다 촬영하러 가고 그랬어요.

레드 원피스는 멀버리.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당장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촬영을 앞두고 있어요. 이번엔 강하늘, 강소라와 함께하죠. 
바이러스로 조금 미뤄졌는데 그래도 곧 들어갈 것 같아요. 소라가 된 건 저도 요 근래에 알았어요. 저도 듣고 너무 반갑더라고요. 세 사람의 이야기가 각자 다르게 흘러가는데 오랜만에 작품에서 만나니까 너무 반가워요. 20대 때 만나고 거의 10년 만이라 너무 좋고 강하늘 씨와는 처음이라서 그것도 좋기도 하고요. 요즘 볼 수 없는 서정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앵커>가 극적이고 강렬한 느낌이 있다면, 요즘 멜로물이 잘 제작되지 않는데 이 작품에서 오랜만에 따뜻한 느낌을 받았어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엔 다정하고 서정적인 로맨스 영화가 많았죠. 가끔 그리워지기도 해요. 
맞아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런 영화가 되게 많고 좋았어요.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워낙 매체가 많고 영화가 아니어도 즐길 만한 게 많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오랜만에 이런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나와서 좋더라고요. 항상 좀 새롭고 싶은 것도 있어요. 새로운 것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번에도 좀 다르게 보이고 싶거든요. 그래서 해보고 싶죠. 그런데 작품에서 스물한 살을 연기해야 돼서 부담이 커요.

오늘 화보를 보니 스물한 살 같던데요? 
다행이다!(웃음) 제가 작품을 할 때 설정해두는 체중이 있거든요. 이번엔 워낙 어린 역할을 해야 하니까 체중을 넉넉하게 두고 있어요. 인공적으로 뭘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고, 앳됨을 연기해야 하니 메이크업의 도움을 받아야겠죠.(웃음)

새로운 작품에 대한 설렘이 느껴지네요. 
항상 재미있어요. 새로운 작품을 접했을 때 문득 연상되는 게 있는데, 떠오르는 걸 메모해두거든요. 그런 메모하고 관찰하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을 때 재미있어요.

핑크 셔츠, 레더 쇼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최근에는 뭘 메모했어요? 
음… ‘생동감을 어떻게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게 제일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이 역할은 제가 어떻게 활력과 생기를 넣을 수 있을까가 포인트인 것 같아요. 또 이야기가 각자 흐르는 작품이다 보니까 톤을 어떻게 맞추면 좋을까 하는 것들. 여러 가지 문득 생각나는 것이 많은데 촬영하다 보면 정리가 좀 되겠죠. 영화 속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각자가 아니면 어떤 타인에 의해 서로 받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저도 들으면서 운명이나 인연이란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우희가 살아가며 만들고 있는 이야기도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마음에 들죠. 하지만 다시 똑같이 살라면 못 하겠지만요. 지금까지 모든 게 제가 선택한 게 있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어떻게든 완성돼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후회는 없는데 모든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잖아요. 물론 지나고 나서는 다 좋은 경험이란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다 없어져버렸음 좋겠는 순간도 있고. 그래도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이 영화들을 언제 볼 수 있으려나요. 
저도 모르겠어요. 올해 개봉하려고 했던 영화들이 전체적으로 개봉이 밀리면서 제가 찍은 영화나 촬영할 영화도 다 조금씩 밀리지 않을까 싶어요. 기다려봐야죠. 기다려주세요.

크롭트 셔츠, 플리츠 스커트는 에스와이지. 슈즈는 지미추 (Jimmy Choo). 스타일에 무게를 더해주는 미니수지 백은 15만 9천원, 이네스(I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