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심쩍은 시작

미래를 향한 기대와 흥분으로 2020년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난 연말에 이어 연초까지 그간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뻗어가며 눈부신 성과를 거둔 케이팝의 이면과 어두운 진실이 긴 시간 유실된 지뢰가 발견된 듯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 조작부터 전설처럼, 유령처럼 떠돌던 음원 사재기 의혹의 실체까지,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 노력으로 공고히 쌓아 올린 케이팝의 긍정적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였다. 결국 ‘국민 프로듀서’는 없었다. 아이돌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을 배출한 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투표 조작 정황이 사실로 밝혀지며 프로그램을 제작 및 방영한 CJ ENM과 안준영 PD 등 제작진은 <프로듀스 101> 시즌 1~4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순위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CJ ENM은 가장 최근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엑스원의 지속적인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며칠 뒤 팬들에게 돌아온 건 갑작스러운 공식 해체 발표다. 한편, 듣도 보도 못한 무명 가수의 차트 역주행 현상으로 그동안 꾸준히 문제가 제기된 ‘음원 사재기’ 의혹이 그룹 블락비 박경의 발언으로 도마 위로, 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SNS에 차트 역주행으로 유명한 가수들의 의혹을 제기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를 방송화했다. 언급된 가수들은 사실무근, 명예 훼손 등을 주장하며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음원 사재기 의혹에 관한 의심과 정황, 증언이 현재까지 여기저기서 더해지는 중이다. 과연 실체도, 존재도, 증거도 없는 유령 같은 얼굴이 밝혀질 수 있을까. 케이팝의 명성이 바닥을 치고 지하까지 떨어져도 좋으니 이번 기회에 어둠의 그림자가 전부 뿌리 뽑힐 수 있기를. 무너진 탑은 다시 세우면 그만이다.

 

헤이, 잭보이즈

트래비스 스콧은 단순한 래퍼, 혹은 뮤지션 그 이상이다. 그는 이제 하나의 아이콘이다. 나이키를 비롯한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등 그의 음악과 스타일은 하나의 현상이 돼버렸다. 트래비스 스콧은 2017년 자신의 레이블 ‘Cactus Jack Records’를 설립했는데, 래퍼 돈 톨리버, 셱 웨스, DJ 체이스 비, 옥타비안, 스모크 펄프 등이 그의 가족이 됐다. 그 이름은 ‘Jackboys’. 같은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은 애매한 마음이 드는 겨울과 봄 사이 리스너들의 몸과 귀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랑으로

한류의 최전선에 아이돌이 자리매김할 때, 밴드 혁오는 지난 한 해 국내외를 아우르며 조용하지만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블랙핑크와 함께 코첼라 무대에 오르더니, 뜨거운 여름에는 네덜란드의 로랜즈, 벨기에의 펄크팝, 노르웨이의 오야 페스티벌 등 유럽의 대표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리즈 <경계선의 남자>의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했다. 2020년에도 혁오는 멈추지 않을 셈이다. 새 앨범 <사랑으로(Through Love)> 발매와 함께 서울을 시작으로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총 19개국, 42개 도시를 도는 월드 투어에 나선다. 특히 공연 포스터로 사용된 영국 최고의 현대 예술상인 터너상을 받은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은 하염없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