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케빈의 용기 / 케빈 오

혼자서만 노래하던 케빈 오가 이제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대에 선다. 웬만해선 노래를 멈출 생각이 없다.

이너로 입은 티셔츠와 셔츠는 발렌티노(Valentino).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안경은 스틸러(Stealer).

어젯밤엔 잘 잤어요?
뉴욕에서 돌아온 지 이제 열흘 정도 됐는데요. 살면서 시차 적응 때문에 이렇게 힘든 적이 없어요. 그나마 오늘은 좀 푹 잔 거 같아요.

푸른 여름에 이어 앙상한 겨울에 다시 보네요.
그러게요. 꼭 어제 같은데 벌써 6개월 정도 지났어요. 그날이 <슈퍼밴드> 출연 중 거의 첫 화보여서 그런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해요. 그때 앞으로는 용기 내겠다고 말했잖아요. 제가 뱉은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여름, 가을, 겨울까지 어떻게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양한 걸 하면서 지냈어요. 용기 내서요.

꽤 많은 변화가 있었죠?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화보도 많이 찍고,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어요. 화보 찍는 건 항상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러운 척하면서 촬영하는 게 어색했는데 점점 편해지고요. 요즘은 하고 싶은 콘셉트가 생기기도 하고 그래요. 패션 행사도 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그쪽으로 조금씩 관심이 생기고 있어요. 원래 제가 여름을 싫어하거든요. 근데 우리가 만났던 그 여름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여름이었어요.

오늘 함께하는 스태프를 그날과 똑같이 모아봤어요.
그렇더라고요. 여름의 그 촬영이 되게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때 처음 함께한 스타일리스트와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옷이든 분위기든 그냥 다 믿고 가는 중이에요.

요즘은 뭘 좋아해요?
블루요. 원래 가장 좋아하는 컬러거든요. 마침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가 클래식 블루더라고요. 블루는 그냥 저예요. Blue is It’s Me. 제 곡 중에 ‘Baby Blue’란 노래도 있고 ‘Blue Dream’이라는 노래도 있어요. 가사에도 파란, 푸른, 그런 단어가 많아요. 올해의 컬러이기도 하니까 더 많이 쓰고, 더 자주 입어도 될 거 같아요. 아 참(자신의 휴대폰 배경 화면을 내보이며) 여기도 블루가 있어요. 클래식 블루.(웃음)

머플러 니트는 설밤 바이 아데쿠베 (Sulvam by Adekuver). 팬츠는 앤 드뮐미스터 바이 아데쿠베(Ann Demeulemeester by Adekuver). 슈즈는 닥터마틴(Dr. Martens).

파란색이 왜 그렇게 좋아요?
애매하니까요. 블루는 애매한 색이에요. 한국말로 표현해도 그렇지 않아요? 파란색, 시퍼런 색, 푸른색, 그게 다 블루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잖아요.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게 마음에 들어요.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되게 우울하기도 하거든요. 영어로 ‘I am Blue’는 좀 우울하다는 뜻이죠. 근데 ‘Out of the Blue’라는 말은 갑자기, 우연히 뭐 그런 뜻이 돼요. 베이비 블루는 차분하고 사랑스럽고요. 하나의 컬러에 이렇게 다양한 의미와 감정이 담긴 건 블루가 유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두 문화를 경험한 당신의 삶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죠. 지금도 그래요?
그럼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뉴욕에 열흘 정도 머물렀는데 원래 거기가 제 집이잖아요. 근데 오히려 좀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던 곳도 많이 변해 있었고, 뭐가 새로 많이 생기기도 했고요. 서울이 그립더라고요. 원래 안 그랬거든요. 뉴욕에 있다가 다시 한국에 오는 날 막 울고 그랬어요.

이제 서울이 좀 당신의 집 같아요?
아무래도요. 한국에서 생활한 지 4년 정도 됐어요. 솔직히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아직도 여기를 제 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건 좀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적응할 때도 됐어요.

지금 막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노스탤지어는 노스탤지어예요. 한국말로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요? 한국말로 하면 향수, 그리움 뭐 그런 거죠? 저도 그런 감정을 많이 느끼면서 살죠. 살짝 올드 소울인 거 같아요.(웃음) 근데 저는 향수라는 단어가 노스탤지어를 대체하기에 아주 정확한 단어라고 생각해요. 노스탤지어, 향수라는 건 그리움에 관한 감정일 텐데 그건 정확하거나 선명할 수 없잖아요. 아주 희미해요. 잔상이나 잔영처럼요. 향수라는 말이 더 정확한 거 같아요.

티셔츠, 재킷, 팬츠는 모두 구찌(Gucci). 슈즈는 에스.티. 듀퐁(S.T. Dupont).

묘하게 설득당했어요. 초겨울에는 첫 단독 콘서트를 했죠. 1분 만에 매진됐다는 기사를 보고 괜히 뿌듯했어요. 우리가 여름에 찍은 사진이 공연 포스터로 쓰였길래 더 그랬죠.
아, 맞아요. 그 사진이 좋았어요. 공연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는데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참 오래 걸렸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계속 모자란다는 생각을 했고요. 공연을 며칠 앞두고 심한 감기에 걸렸거든요. 링거를 맞으면서 누워 있는데 그제야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게 좀 싫더라고요. 그래서 공연 전날 마지막 합주를 취소했어요. 한 번 더 연습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에너지를 아끼는 게 더 나을 거로 생각했어요. 공연 제목이 ‘Here & Now’였는데요. 제목처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맞겠더라고요.

무대에 서니까 어땠어요?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래서 말을 엄청 많이 했더라고요.(웃음) 살면서 처음으로 버벅거리지도 않으면서 농담도 많이 했어요. 저는 원래 공연이 끝나면 객관적으로 그날의 공연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편인데요. 그 이틀의 공연은 전부 다 만족스러웠어요. 객관적으로 잘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마음이 그랬어요. 마음이 너무 좋아서 뭘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울진 않았고?
이튿날 공연에서 ‘Be My Light’라는 곡을 부르면서 막 울었어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클립이 많이 떠돌아다니더라고요.(웃음)

<슈퍼밴드>를 통해 친구들을 만나게 돼서 가장 기쁘다고 했잖아요. 이기고 지고는 아무 상관없을 정도로. 그때 만난 친구들과 진짜 ‘애프터문’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던데요?
밴드 친구들은 매일 봐요. 함께한 다른 친구들도 자주 만나서 음악 이야기하면서 지내고요. 너무 소중하죠. 애프터눈은 좀 더 완성도 높은 밴드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요. 잘하고 싶거든요. 케빈 오라는 이름의 솔로는 그냥 저니까 ‘Just Me’, 좀 자유롭고 내추럴해도 되는데요. 밴드는 팀이니까 더 정확해야 해요. 사운드라든가 분위기라든가 콘셉트라든가. 그래서 요즘 좀 힘들어요.

방금 얼굴에 스트레스가 팍 지나갔어요. 근데 아주 긍정적인 스트레스처럼 보여요.
그럼요. 그러니까 하죠. 작업하면서 맨날 싸우고 부딪히고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버리는 곡이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해야 진짜 좋은 게 나오니까요.

머플러 니트는 설밤 바이 아데쿠베.

케빈 오라는 뮤지션이 다시 새로운 도전, 시작 앞에 선 것처럼 보이네요.
정말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아마 봄에는 솔로 앨범이 먼저 나올 예정인데요. 주로 그동안 쌓인 미발표곡을 제대로 레코딩할 예정이에요. 어쨌든 이미 완성된 노래들이어서 한결 마음이 편하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밴드의 이름으로 따뜻한 봄에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거예요. 그게 되려면 이 겨울을 잘 보내야만 해요. 그런 프레셔가 좋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요.(웃음)

그럼 우선 봄에 나올 솔로 앨범, 새 노래의 제목은 뭐예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제가 쓴 한국어 발라드곡이라는 건 알려드릴 수 있어요. 정통 발라드라기보다는 팝 발라드에 가까워요. 제 노래 중에 영어로 된 곡이 많은데 우리말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거든요.

혹시 밥 딜런 좋아해요?
밥 딜런, 조지 해리슨, 제프 버클리는 제 히어로예요.

촬영 시안에 밥 딜런의 젊은 시절과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봤어요. 당신을 생각하니까 떠오른 인물들이죠. 어제 저녁에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의 전기 영화에 출연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났더군요.
저도 봤어요. 신기한 우연이네요. 한동안 밥 딜런에 빠져 지낸 적이 있어요. 음악뿐 아니라 다큐멘터리나 영화도 다 찾아보고요. 그에 관한 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티모시 샬라메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뉴욕 출신이잖아요. 뉴욕의 액팅 스쿨을 다니는 친구들 특유의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신은 정말 대박이죠. 저도 거의 울 뻔했어요. <뷰티풀 보이>도 의미 있게 봤고요. 정말 잘하더라고요. 근데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을 연기했을 때 잘 나올지 궁금하긴 하네요.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는 전 좀 별로였거든요.(웃음)

<아임 낫 데어>는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그에 관한 은유와 비유의 영화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저는 밥 딜런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좀 그랬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하도 기이한 행동을 하고 다니니까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하잖아요. 언론이나 미디어와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의 밥 딜런은 꼭 애덤 샌들러 같아요.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요. 현재의 밥 딜런에 관한 영화가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셔츠는 유저(Youser).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신발은 렉켄(Rekken).

몇 년 전 그의 공연을 봤는데 좀 슬프더라고요.
이제 노래를 정말 못하시잖아요. 왜 노래를 부르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저도 그게 참 슬프기도 한데 멋있지 않아요? 아름답기도 해요.

밥 딜런의 노래 중에 ‘Forever Young’이라고 있죠. 지난 콘서트 앙코르 곡으로 당신의 미발표곡 ’Forever Young, Forever in My Mind’를 불렀다면서요?
밥 딜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야겠죠. 저도 ‘Forever Young’을 좋아해요. ’Forever Young, Forever in My Mind’는 노스탤지어, 향수가 담긴 곡인데요. 모두에게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내용이에요. 이번에 제대로 레코딩할 예정이에요.

지금 당신을 뜨겁게 하는 건 뭐예요?
음, 제가 팬들이라고 말하면 정말 믿으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오글거리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하실 건가요?(웃음) 지난날의 제가 단지 저를 위해 노래했다면요. 이제 누군가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선명하게요.

뮤지션 케빈 오가 서른 살 여름에 내게 말했어요. ‘아직도 길을 찾고 있지만 이제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 것 같다고, 외부의 어떤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생겼다’라고요. 막 서른한 살이 된 지금은 어때요?
여전해요. 계속해서 용기 내려고요. 용기라는 게 잠깐만 쉬면 금세 또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에디터
    최지웅
    포토그래퍼
    KIM YEONG JUN
    스타일리스트
    남주희
    헤어
    백흥권
    메이크업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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