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손을 잡고 거리거리를 쏘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덧 집에서만 만난다.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오늘 뭐 할까? 눈을 뜨면 그녀에게 묻는다. 전시를 보러 가거나, 극장을 가거나, 공연을 보거나, 아니면 무슨 무슨 길을 걷기라도 하거나. 이러면 좋겠지만 함께 살다 보면 그게 잘 안 된다. 주중에 미뤄둔 집안일 때문에? 결코 아니다.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등등 가정화된 터미네이터들이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치우고 있기에, 사라와 존은 아니 나와 그녀는 뭘 먹을지만 고민한다. 그러면 음식 하느라 외출을 안 할까? 새벽배송을 애용하면서 마트에 자주 가지 않는다. 잦아야 한두 번이다. 그럼 왜 우리는 주말에 바깥 데이트를 안 하는 걸까. 꽤 오래 생각해보니 게을러서다. 주말 그러니까 집에서 하는 데이트의 가장 달콤한 꿀은 마음껏 게으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이라고 해봤자 겨우 48시간 남짓이다. 나태함을 100% 발휘하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 우리는 평일에 ‘빡’세게 근로하며 모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쏟아붓는다.

먼저 늦은 오전에 눈을 뜨면, 서로 자는 척하며 슬그머니 각자의 스마트폰을 짚는다. 그리고 밤새 있었던 사건들을 훑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사고 싶은 옷을 발견하게 되고, 커튼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아 2020년 가을/겨울 커튼 트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흐른 뒤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뭐 먹을까?

게으름을 피우는 우리가 체력을 발휘하는 공간은 주방이 유일하다. 주방은 짓눌려 있던 창의력을 발산하는 공간이다. 냉장고에 얼어붙은 재료는 대부분 지난 주말에 배송받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해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아침은 시리얼로 충당하기로 한다. 볼에 옥수수 시리얼과 초코볼 시리얼을 반반씩 섞어주고, 몸에 좋다는 견과류도 넣고, 냉동된 스트로베리, 블루베리를 넣고, 우유를 붓는다. 잠이 덜 깼으니 음악은 살짝 경쾌한 비밥으로 튼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어제 오늘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예인 가십이나, 다리 하나 건너 아는 친구의 사연, 회사 상사에 대한 불평 등. 식사 뒤에는 차를 마시며 미뤄둔 잡지를 읽기도 한다.

정신이 또렷해지면, 해야만 하는 집안일이 생각난다. 화초에 물을 주고, 꽉 찬 쓰레기통도 비운다. 그리고 옷장 정리나 해볼까 하지만 그러기엔 주말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켜고, 함께 볼 영화를 고른다. 이건 너무 무서워, 저건 별로 재미없어, 이건 예전에 본 거야. 그렇게 한참 페이지를 넘기다가 그냥 이거라도 봐볼까 하며 재생을 시작한다. 테이블에는 커피도 있고, 과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잠이 들어도 좋다. 이보다 얼마나 더 게을러야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소파에 기댄 몸을 비스듬히 눕혀본다. 누워서 영화 두 편을 보면 노을이 드리울 낌새가 보인다.

발간 노을이 주방에 올려둔 냉동 삼겹살을 비춘다. 이번엔 삼겹살에 꿀을 발라볼까. 어떻게 생각해? 물으면 그녀는 이미 잠이 들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나와 주방에서 삼겹살을 손질한다. 소금도 치고, 올리브 오일도 바르고, 유튜브에서 본 미쉐린 스타 셰프의 조리법을 복기하며 오븐을 데운다. 주말 저녁만큼은 근사하고 싶어 초에 불을 붙여본다. 음악 소리에 깬 그녀가 다 마신 커피잔을 들고 나온다. 와인도 하나 따야겠다는 생각에 묵혀둔 와인을 꺼내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하게 코르크를 뽑을 수 있을지 상의한다. 평화는 게으름을 타고 온다는 걸 상기하면서 수저를 놓는다.

아, 집에서 하는 데이트의 단점도 있다. 이건 너무 명확한데, 게으른 날도 이틀이 넘으면 지루하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게 회사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한 자유의 몸짓이었다면, 이틀이 지나면 집 안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말은 언제나 이틀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한다. 요즘 살찐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