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를 피부에 바른다고? 대마 화장품의 진실

대마를 피부에 바른다고?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장품 업계에 ‘그린 러시’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은 낯선 대마 화장품에 대하여.

현재 뷰티 시장은 ‘원료’ 전쟁 중이다. 클린 뷰티가 각광받고 있는 요즘, 소비자들은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쑥에서부터 호랑이풀, 유산균 등의 성분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분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대마’ 성분이다.

대마라고 다 같은 대마가 아니다

대마 화장품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몇 가지 용어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대마라고 다 같은 대마가 아니라는 사실. 식물의 한 부류인 대마는 2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으로 분류된다. 마리화나와 같은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류에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옷감을 짜는 삼 역시 이에 해당되는 것. 이들은 각 종에 따라 환각성이 높은 종과 환각성이 낮은 종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환각성은 대마 속에 들어 있는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 성분에 의해서 발현된다고. 즉 우리가 흔히 아는 ‘마리화나’는 THC의 양이 높은 종을 가공한 것이며, 최근 건강기능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햄프’는 환각성이 낮은 종을 가공한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마 속 또 하나의 성분이 있다. 이는 바로 ‘CBD’. ‘칸나비디올’이라고도 불리는 CBD는 오히려 THC의 환각 효과를 억제하는 동시에 항염, 항스트레스, 통증 경감 등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의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던 성분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농업법이 미국 연방 정부를 통과하며 대마 성분 중 THC 함량이 거의 없지만(0.3% 미만), CBD는 20% 이상 함유된 ‘햄프 추출물’이 마약류 규제에서 제외되며 식품과 음료, 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게 된 것이다.

CBD 화장품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마 화장품은 바로 이 햄프 추출물이 함유된 화장품으로 흔히, CBD 화장품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아직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CBD에 열려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인디 브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미국의 CBD 화장품을 손에 꼽자면, ‘CBD 데일리(CBD Daily)’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브랜드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비건 화장품을 내세우면서도 CBD라는 특이 성분을 적용해 차별성을 가져가고 있다. 이 밖에도 카누카(Cannuka), 라이프 엘리먼트(Life Elements)와 같은 브랜드도 CBD 성분을 메인으로 가져가며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필하는 브랜딩과 패키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글로벌 브랜드에서도 조심스럽게 CBD 뷰티 트렌드에 합류하고 있는 상황. 오리진스의 ‘릴렉싱 앤 하이드레이팅 페이스 마스크 위드 카나비스 사티바 시드 오일’과 키엘의 ‘카나비스 사티바 시드 페이셜 오일 허벌 컨센트레이트’, 그리고 이브롬의 ‘래디언스 페이스 오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의 뷰티 편집 매장에서 역시 CBD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세포라와 얼타는 2018년 말부터 하이 뷰티, 로드 존스, 카누카와 같은 인디 CBD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초 바니스 뉴욕 비벌리힐스 매장에서 역시 CBD 제품을 판매하는 ‘더 하이 엔드’ 섹션이 마련되었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각광받고 있는 CBD 뷰티 제품은 정작 피부에 어떠한 영향을 발휘할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CBD는 항염, 항스트레스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는 햄프 추출물이 지구상 가장 항염, 항스트레스 효과가 뛰어난 식물성 물질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효과가 강력하다고. 때문에 햄프 추출물이 함유된 CBD 화장품은 여드름 피부를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CBD 성분이 트러블의 원인이 되는 세포만을 대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건조하고 민감한 피부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햄프 추출물은 오메가 3, 6와 같은 필수지방산이 풍부해 피부를 촉촉하게 가꾸고 건선으로 인한 가려움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지녔다. 여기에 뛰어난 항산화 효능도 겸비하고 있어 각종 스킨케어에서부터 보디, 헤어 케어 제품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CBD 성분은 상용화된 기간이 짧아, 이러한 효능을 모두 맹신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정신행동학과 부교수인 더스틴 리(Dustin Lee)는 이렇게 말한다. “CBD는 심각한 소아간질 치료를 위한 처방약을 제외하고는 FDA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임상 실험을 거치지 않았어요. 우리가 CBD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대중에게 조언하기 전에 먼저 통제된 연구가 필요하죠.” 또한 미국 <얼루어> 9월호 기사에 따르면, 대마식물은 중금속이나 농약을 포함한 주변 토양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때문에, 햄프에서 추출한 CBD 제품은 유기농 인증을 확인하는 것 역시 중요한 포인트라고 조언한다. 품질이 좋은 CBD 제품은 제3자 연구기관의 인증서를 갖고 있다고. 제품의 하단이나 측면의 배치번호를 찾아 브랜드의 사이트에서 성분 분석 증명서를 체크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THC 함량이 0.3% 미만인지를 확인하고(농축은 다양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측정값은 0.3이하인 0.05에서 0.11 정도), 중금속, 살충제, 미생물 함유 여부도 살펴본다. 모든 조사 항목에서 불검출(ND, Not Detected) 판정을 받은 제품을 택하는 것이 좋다.

국내 시장의 현실, CBD 대신 햄프 시드

그렇다면, 대마에 보수적인 국내에서도 CBD 화장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CBD 화장품 유통은 불법이다. 현재 국내의 현행 법률에 따르면 ‘대마초 또는 그 수지를 원료로 제조된 모든 제품’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것. 하지만 한국에서 장기 투병을 하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CBD 합법화에 대한 청원은 계속되어온 것이 사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되는 추세를 보이자 국내에서도 2018년 11월 23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며 제한적으로 의료용 CBD 제품을 개방하게 되었다. 국내 대체 의약품이 없는 희귀난치성 환자에 한해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직은 제한적인 만큼 국내에서 대마 화장품을 만나볼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일까? 그 힌트는 식약처의 대답에서 찾아볼 수 있다. ‘CBD 추출물은 안 되지만, 대마씨유와 아마씨 같은 순수한 원료를 추출한 성분이 함유된 제품은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즉 ‘햄프’ 추출물은 안 되지만, ‘햄프 시드’ 추출물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햄프 추출물은 대부분 줄기, 의료용으로 사용될 경우 잎이나 꽃에서 추출하는 반면, 햄프 시드 추출물은 말 그대로, 햄프 식물의 ‘씨앗’에서만 추출한 오일이다. 이러한 햄프 시드 추출물(THC 0%, CBD 미량 함유)은 햄프 추출물(THC 0.3% 이하, CBD 20% 이상)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화장품은 물론 건강기능식품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힘입어 국내 뷰티 시장에서도 햄프 시드 오일이 함유된 뷰티 제품이 속속 눈에 띄고 있다. 더바디샵의 햄프 라인이 국내에 수입되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젠틀프로젝트라는 신규 브랜드에서 햄프 시드 오일 성분을 함유한 남성 스킨케어 라인을 선보였다. 이 뒤를 이어 올 12월 중순에는 햄프 시드 오일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스킨케어 브랜드, 베네픽시엄이 론칭할 예정이다. 베네픽시엄의 에스더 김 대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마 성분을 국내 실정에 맞게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브랜드 스토리 역시 햄프 시드에서 영감을 얻어, ‘숲속의 마녀들이 늙지 않기 위해 개발한 마법약’이라는 재미있는 의미를 담았다고.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CBD 뷰티 제품에 비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햄프 시드 성분은 효과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식물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해 CBD 못지않은 효능을 발휘한다고 자부했다.
이렇게 국내 시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대마 화장품. 그 어떤 화장품 성분보다 까다롭고 조심스럽게 채택된 만큼, 아직은 국내 대마 화장품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세계적인 뷰티 트렌드를 이끄는 K-뷰티에서 이를 놓치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이다. 특히 햄프 시드가 건강 식품으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만큼 국내 뷰티 시장에서도 곧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HAMP SEED ITEM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햄프 시드 오일이 함유된 뷰티 제품들.

THE BODY SHOP 

더바디샵에서 전개하는 햄프 라인 제품들. ‘햄프 하드 워킹 풋 프로텍터’와 ‘햄프 핸드 프로텍터’, ‘햄프 립 컨디셔너’ 제품으로 선보인다. 필수 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된 햄프 시드 오일이 함유되어 있어 피부 표면에 보호막을 생성하여 수분을 유지시킨다. 각각 100ml 2만원, 100ml 만8천5백원, 4.2g 9천9백원.

VENEFIXIUM 

햄프 시드 오일을 메인 성분으로 한 스킨케어 브랜드 베네픽시엄의 제품들. 자연유래 오일이 99% 함유되어 피부 친화적인 ‘헴파이어 베리어 페이셜 오일’과 햄프 시드 오일을 함유한 영양 캡슐이 깊은 보습감을 전하는 ‘헴파이어 버터 크림’ 두 가지 제품으로 출시한다. 가격미정.

GENTLE PROJECT 

남자들의 면도 후 관리를 돕는 제품. 햄프 시드 오일에 병풀 추출물을 더해 피부에 수분감을 선사하고 자극받은 피부를 빠르게 진정시킨다. 햄프 시드 쉐이빙 오일(95ml)과 햄프 시드 젠틀 크림(50ml), 햄프씨드 젠틀 페이스 워시(80ml)로 구성된 ‘젠틀 올인원 패키지’의 가격은 5만5천9백원.

BORREGO BY DR.ORGA 

닥터올가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보레고의 ‘100% 퓨어 햄프 시드 오일’. 비정제 냉압착 추출을 통해 얻은 프랑스산 햄프 시드 오일로, 풍부한 영양이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림에 섞어서 사용하거나, 아주 건조한 부위에 직접 바르면 피부를 윤기 있게 가꾼다. 60ml 4만3천원.

    에디터
    서혜원
    포토그래퍼
    WILL ANDERSON, KIM MYUNG SUNG
    스타일리스트
    GOZDE EKER
    참고 사이트
    대한 화장품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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