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실적인 인테리어
한 사람은 신혼집을, 한 사람은 자신의 첫 매장을 내며 생애 첫 인테리어에 도전했다. 값비싼 물건과 자재로 채운 인테리어가 아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철학, 통장잔고를 반영한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 에디터 부부의 신혼집 ]
비판 없이 수용하자. 신혼집을 꾸미며 다짐했다. 우리 부부는 서울 변두리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20년 넘은 아파트인데 지난달 외부 도색을 해서 19년 정도 되어 보인다. 집 자랑에 앞서 굳이 TMI하자면 방 3칸짜리 25평형 전셋집이다.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전형적인 소형 아파트다.
집을 구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다. 서울의 저 많은 집 중 우리의 안식처는 어떤 곳일까. 아내는 전망이 좋았으면 했고, 나는 교통이 편리했으면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교통 좋고, 전망 좋은 집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신축 빌라를 돌아다니며 부동산 대란을 마주했다. 역세권 집은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전망 좋은 집은 가격이 부담이었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현실은 대출이었다. 가장 낮은 금리로 거하게 한몫 당겨서 전망만 좋은 아파트를 계약했다.
전 세입자는 폭풍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처음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분양 이래 한 번도 리모델링하지 않은 집이었다. 주방 가구와 신발장, 화장실에선 세기말의 감성이 느껴졌다. 와인색 세면대와 욕조, 변기, 먼지가 눌어붙은 싱크대, 노랗게 변한 벽지, 삐걱거리는 섀시, 줄눈이 검게 변한 타일이 우리를 반겼다. 집 보러 갔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신혼집의 처참한 실상에 아내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우울했다. 하지만 대출을 이보다 더 받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몇 날 동안 인테리어 시안을 모았다. 뉴욕의 아파트 인테리어 사진, 런던과 파리의 감각 있는 집의 사진을 모았다. 시안들을 띄워놓고 각자 원하는 스타일을 하나씩 꼽았다. 공통점은 어두운 공간이었다. 긍정적인 사람들인데, 집 안은 어두침침한 게 좋았다. 하얀 벽은 싫고, 나무 바닥도 싫었다. 나무 바닥이 싫은 이유는 남의 집에 진짜 나무를 깔 수 없었으니까. 가진 돈을 모두 쥐어짜서 전세금을 마련한 게 실수였다. 최소한 인테리어를 할 예산은 남겼어야 했다.
각자 모은 돈을 합쳤고, 부족한 예산은 은행에서 빌렸다. 혼수는 카드 한도가 남은 사람의 카드로 결제했다. 남편과 아내의 몫을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린애들이 아니다. 다 큰 성인 남녀가 함께 살고 싶어서,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은퇴 후 국민연금으로 연명하는 먼 거리의 부모님이 피땀 흘려 모은 노후자금을 받기 싫었다. 누가 얼마나 더 이 결혼에 투자했는지 지분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신혼집을 평화로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그저 우리 둘만의 공간, 둘만의 삶이었다.
예산은 부족했지만 콘셉트는 명확했다. ‘아프리카’. 신혼집 인테리어 주제였다. 표범무늬로 도배를 했다는 것은 아니고, 집 안 곳곳에 우리가 좋아하는 아프리카 아이템을 배치했다. 신혼여행 가서 찍은 세렝게티의 동물 사진과 기념품, 동물 모형을 배치했다. 꽃도 남아프리카 꽃만 꽂는데, 향기는 약하다. 이럴 거면 조화를 살걸 그랬나 후회도 가끔 한다. 문제는 욕실이었다. 여인숙 같은 욕실에서 2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리모델링을 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고 남의 집을 고쳐주는 꼴이 싫어 아서 알아보니 크리스털 코팅이라는 것이 있었다. 1백만원을 들여 와인색 욕실을 흰색으로 코팅했다. 변기도 바꿨다.
직업상 퇴근 후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투자한 곳은 거실이다. 우리의 생활에 맞춰 거실은 서재 겸 다이닝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 한 면은 책으로 채웠고, 중앙에는 3m길이의 긴 테이블을 설치했다. 테이블 끝에서 일하다가, 다른 쪽 끝에서 밥을 먹는 쉬지 않고 일하는 효율적인 구조다. 작업할 때 연료처럼 마시는 커피를 위해 콘솔 옆에는 작은 커피 테이블도 설치했다. 카페 못지않게 집중이 잘된다. 단점이라면 자꾸만 냉장고를 여는 습관이 생긴달까. 집에서는 휴식할 공간도 필요하기에 작은 방 하나는 게임룸으로 만들었다. 천장에 빔프로젝트를 설치해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거나, 영화를 보곤 한다. 게임룸에 걸맞게 수집한 피규어와 술도 구비했다. 술과 안주를 먹으며 게임을 하면 왜 집이 최고라고 하는지 공감된다. 참고로 예산이 부족해 작은 방과 옷방은 도배장판을 못했다. 대신 아내와 함께 종일 페인트칠을 했는데, 영화 <베티블루 37.2>가 떠올라 자꾸만 웃음이 났다.
글 | 조진혁(<아레나 옴므플러스> 피처 디렉터. 결혼 1년 차)
[ 술집을 냈습니다 ]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방문해 취재하는 것이 일이었던 잡지 에디터 출신이라, 이런 말을 종종 했다. “공간이 완성도가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직접 인테리어를 하게 될 줄 추호도 몰랐던 그때의 나에게 ‘완성도’는 폭신하게 구운 팬케이크만큼이나 휙휙 뒤집을 수 있는 말이었다. 직접 인테리어 전쟁터에 뛰어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행동이다. 그것도 넉넉지 않은, 아니 겨우 풀칠 정도만 할 자금을 가지고 전장에 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던….
지하 50평 공간에 평범한 바(Bar) 공간과 대관이 가능한 키친을 만드는 일은 말만 쉬웠다. 165제곱미터가 넘어가는 꽤 큰 공간의 지하였기 때문에 65제곱미터 이상의 지하공간에 필요한 까다로운(돈이 많이 드는) 소방 완비 증명서는 필수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드넓은 공간을 채우려면 드는 기본적인 인테리어 비용이었다. 대표 세 명이 각출한 다소 부끄러운 금액을 들고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와 줄줄이 미팅을 진행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어마어마한 유명한 스튜디오부터, 우리와 미팅 직후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아 ‘넘사벽’ 레벨이 된 스튜디오까지 다양하게 만났지만, 결론은 모두 같았다. 그 돈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 한 스튜디오는 우리에게 20평의 공간만 먼저 오픈하고, 나머지는 자금이 있을 때 확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그 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포기하고 시공과 설비에 방점을 찍는 인테리어 시공업체와 원하는 금액에 계약했다. 디자인은 스스로 해보겠다는 베팅을 한 셈이다.
부동산 계약과 설비의 산을 넘으면 끝도 알 수 없는 디자인의 세계가 펼쳐진다. ‘건물을 짓다 만 듯한 을지로풍은 피하자, 핀터레스트 카피캣은 되지 말자, 어둑하고 중후한 서재풍의 지하 바(Bar) 인테리어에서 벗어나자.’ 이 세 가지를 기둥 삼아 하나씩 세부를 쌓아 나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야망과 현실 사이의 틈새는 생각보다 크게 벌어졌다. 을지로풍은 자금이 부족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이었고, 핀터레스트는 시공업체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였으며, 어둑하고 침침해야 어설픈 디테일들이 가려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도 그간 좋고 근사한 것들에 집착하며 살았던 자존심은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행이 시작됐다. ‘멤피스 스타일(Memphis Style)’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포기해나가는 식으로 인테리어를 조각조각 맞춰나갔다. 멤피스 밀라노(memphis-milano.com) 웹사이트와 선명한 컬러로 귀여움을 더하는 브루클린의 빈티지 숍 홈유니언(instagram.com/homeunion)을 시시때때로 참고했다. 벽면의 컬러나 반원 디테일, 커튼의 주름이나 대리석의 모양 등을 정할 때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등대에 의지하는 마음으로 두 업체를 들여다봤다. 어쩔 수 없이 수도 없는 타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야망이라도 높아야 깎아내린 현실이 조금이라도 단단할까 싶어서 찾아본 잡지는 덴마크의 리빙지 <RUM>이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 사진은 3D 랜더링이에요. 실제로는 그렇게 깔끔하게 구현이 안 돼요.” 시공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넘쳐나는 요즘 인테리어 레퍼런스들의 상당 부분은 랜더링 자료다. 리터칭을 많이 한 연예인의 얼굴처럼 말끔하지만 현실에는 정말 없는 가상의 무엇이다. 그 이후로는 내 선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타협한 무엇을 들이밀었을 때 한 번도 단번에 ‘가능’ 사인이 떨어진 적이 없다. 그게 시공업체의 엄살인지 아닌지 체크하는 과정은 또 지난하고 피곤했다. 철거와 기초 시공이 시작된 이후에는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전투하듯 내 의견을 어필하고 의심증 환자처럼 두 번 세 번 체크한다. 물론 시공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길목이나 플로우를 이해하는 일, 디자인의 내구성을 고려하는 일 등은 시공팀의 안목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시공팀의 우려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태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왔을 때는 찰나의 팀워크를 맛보기도 했다. 물론 먼지 구덩이 속에서 서로 탁구공을 후려치듯 큰 소리가 오고 가는 난장의 토론이었지만 말이다.
인테리어에 뛰어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조언 중에 가장 많이 들어본 두 가지는 “현장에 꼭 매일 나가서 체크하라”와 “두 번째 할 때는 잘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첫 번째 조언에 대해서는 썩 공감하지 않는다. 현장에 나가더라도 서로 외계어 같은 말을 주고받고, 그마저도 문서로 남기기는커녕 서로 슬렁슬렁 교류하는 것처럼 보여 내가 뭘 보태거나 조일 수가 없다. 꼼꼼하게 체크하려고 해도, 뭘 어디서 어떻게 얼마큼 체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시공 전에 서로가 서로를 너덜너덜하게 만들 만큼 설계와 시공을 꼼꼼히 체크하는 편이 훨씬 낫다. 두 번째 조언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감한다. 인테리어는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워드에 써 내려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합 기예에 가깝다. 해보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 한번 부딪혀봐야 동서남북을 파악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후기를 많이 접해보면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나도 했지만, 절대 글로는 다 알 수가 없다.
시공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될 즈음에는 기물 갖추는 작업이 시작된다. 식탁, 의자, 조명과 같은 가구와 잔, 커틀러리, 그릇 같은 소품까지 사야 할 것 리스트가 끝도 없이 늘어진다. 조명은 미리 해외 주문을 해두고 기다리던 것이 있어 ‘걱정 카테고리’에서 제외됐지만 의자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일단 개수가 많아 돈을 선뜻 투자해 제대로 갖추기에 부담스러운 가구가 바로 의자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괜찮은 의자를 고르자니 ‘짝퉁’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거의 계약 직전까지 진행됐지만,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를 고대로 베낀 제품인 것을 알게 돼 취소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 결국 몇 개의 의자만 근사하고 좋은 것을 사고, 나머지는 검정고무신처럼 평범한 것으로 구입했다. 사야 할 것들 리스트보다 ‘돈 벌면 바꾸고 싶은 것들’ 리스트가 더 길어지고 말았다. 매일 밤 퓨처퍼펙트(thefutureperfect.com) 웹사이트를 보면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이라고 하루가 순탄한 건 아니었다. 주방에 냉장고와 냉동고가 들어왔는데 한쪽 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 대형 설계 사고도 있었다. 트럭으로 운반해오던 긴 대리석 한 판이 두 동강으로 부러지면서 우리 모두의 무릎에도 힘이 탁 풀리고 만 일도 있었다. 해외에서 드디어 도착한 조명을 달던 작업자가 실수로 힌지를 똑 부러뜨린 일이라든지 대리석 광택제를 잘못 먹여 아까운 천연 대리석이 시트지처럼 번쩍번쩍 광이 나버린 일도 있었다.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턱이 발견돼 추가로 목공작업을 하거나 소방점검 기준에 미비한 부분을 뒤늦게 알아채 문을 하나 더 만드는 일도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사건사고가 생길까 걱정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손님이라잖아요”라고 웃는 주변 지인의 말을 그때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괴로운 마음만이 매일 더 부풀었다. 하지만 오픈파티 직전, 마지막으로 공간에 음악과 식물을 채우고 정말로 손님까지 들어서니 웃음이 나왔다. 기쁨과 안도와 탄식과 부끄러움과 개운함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글 |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술 중심의 문화공간 ‘라꾸쁘’ 대표)
최신기사
-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CHO JIN HYUK, SON KI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