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하온
김하온은 지난 1년간 변할 만큼 변했고, 앞으로 좀 더 변할 작정이다.
세 번째 만남이네요. 딱 일년이 지났고.
네, 아까 얼굴 보자마자 기억 났어요. <얼루어>로 옮기셨네요.
덕분에 또 만났죠. 하온의 회사는 여전히 하이어뮤직이죠?
저는 아직 회사를 옮기고 뭐 그런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있어요.
그럼 그동안 잘 지냈어요?
(한참 생각하다가) 아니요. 제 기준에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형식적으로 던진 인사인데 이렇게 나오면 오늘 얘기가 좀 달라져요.
잠깐만요. 좀 혼란스러워요. 지난 1년간 신인상도 2개나 받았고, 와우. 운동도 시작했어요. 아버지에게 자동차도 사드렸고, 가족과 함께 살던 남양주에 집도 해드렸어요. 그런 거 보면 아주 잘한 건 맞죠.
‘잘 지낸 것’과 ‘잘한 것’은 다른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는요. 잘 지냈다는 건 무탈하게,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환경 안에서 잘 쉬고, 잘 먹고 하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여유가 있었냐는 거거든요. 잘 지냈다고 반갑게 말씀드리면 좋을 텐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어쩌면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맞아요. 균형과 속도가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쉬는 날에도요. 멍하니 소파에 앉아서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는, 마음은 쉬지 못할 때가 더 많았어요. ‘아, 빨리 앨범 만들어야 하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저 사람들은 저렇게 빨리 앞에 가버렸는데, 난 어떡하지? 나는 가족을 돌봐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심장이 막 빨리 뛰어요. 컴퓨터로 치면요. 모니터는 꺼져 있는데 본체는 계속 돌고 있는 상태죠.
그새 집안을 책임지게 됐나 봐요?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일을 그만 하시더라고요. 형은 아직 학생이고요. 처음엔 좀 의아했죠. ‘아버지가 왜 일을 안 하시지, 그래도 되나’.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저뿐인 거예요. 그때 그냥 내가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아버지 평생 꿈이 딱 2개였대요. 하나는 벤츠 타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백수 되는 거. 제 덕분에 그 둘을 다 이뤘다고 행복해하시는데요. 고맙다고 막 그러시는데, 기분 좋더라고요. 저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린 아들이니까요. 감사한 삶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어요.
무겁거나 무섭진 않아요?
‘지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요. 저는 뭐 하나를 할 때 시간이 드는 타입이거든요. 가사를 쓰든, 사람을 만나면서 친해지든.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빨리, 균일한 속도로 쉬지 않고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어요. 그래야 잊히지 않는다는 게 저와 회사의 생각이거든요.
스무 살이 됐죠. 열아홉과 꽤 달라요?
자유롭죠, 훨씬. 자주 가진 않지만 클럽에 간다거나, 특히 새벽에 PC방, 찜질방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건 진짜 마음에 들어요.(웃음) 제가 진짜 놀란 게 뭔지 아세요? 즐겨 하는 게임이 있는데요. 현실의 돈을 게임상의 돈으로 바꾸는 거 있잖아요. 작년까진 그 절차가 너무 복잡했단 말이에요. 근데 올해 생일이 딱 지나니까 5초 만에 가능해졌어요. 그때 ‘이야, 어른 할 만하네’ 그런 생각 했어요.
보통의 스무 살과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삶을 동시에 살고 있네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주위에 나랑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 좀 있다면 힌트라도 얻을 텐데, 전혀 없으니까요. 전부 다 직접 부딪혀서 경험해봐야 하니까 어렵죠.
차라리 누군가 명쾌하고 단순한 답을 주기를 바랄 때도 있어요?
겁쟁이처럼 들리겠지만 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기도 해요. 그럼 오히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온 씨 마음대로 해주세요”라는 말이 요즘은 제일 어렵고 무서워요.
자꾸만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커지면 어떡해요?
전에는 그런 감정이 들면 최대한 떼어내려고 노력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렇게 관찰하곤 해요.
어떤 관찰이죠?
지금 드는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잘 기억해뒀다가 내가 하는 일에 써먹어야겠다. 그런 의미의 관찰이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이거를 없애거나 떨쳐버릴 순 없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내게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를 생각하고, 거기서 뭘 읽어내거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저 되게 생산적이지 않아요?(웃음)
어른의 말처럼 들려요. 어릴 땐 안 좋은 상황이 닥치면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대거나, 도망쳐버리고 마는데, 어른은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결한다잖아요.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저도 그런가 봐요. 성장통이라고 생각할래요. 내가 또 이만큼 자라고 있나 보다. 새로운 무대로 가려나 보구나.
그건 좋은 마음이네요. 피처링에 참여한 곡 말고, 올해 지금까지 김하온의 이름으로 나온 노래는 <꽃>과 <BwB>이죠?
아, 그거밖에 없다니 너무 슬프다. 근데 저 이제부터 그걸 안 하기로 했어요. 적어도 음악적으로는요. 사람들이 원하는 거에 나를 끼워 맞추는 거요. 제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하려고요. 최대한. 딱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할 거예요. 그렇게 안 하면 터져버릴 것 같더라고요.
언제부터 그 마음을 먹었어요?
올해 초에 나온 <꽃> 이후부터인 거 같아요. 그전까지 나온 노래는 완전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좀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내 것’이라는 주인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신감이 없었어요. 여러 의미에서요.
그럼 7월 7일 김하온의 스무 살 생일에 나온 노래 <BwB>는 어때요?
떳떳해요. 저 자신에게요. 애썼다. 고생했다. 스스로 말해줄 수 있어요. 그건 내 것이에요 내 것. 이제 그렇게 할 거예요. 그대로 멈춰 있길 바라지 않아요.
술은 좀 마셔요?
아직 즐기진 않아요. 굳이 찾아 마시는 일도 없고요. 같이 있는 사람들이 권하면 분위기에 맞게 좀 마시는 정도?
취할 때도 있어요?
당연하죠. 저는 취하면 주로 업되는 편이긴 한데, 그날 분위기에 따라 오히려 진지해질 때도 있고요. 파티에서는 춤을 열심히 추게 돼요.(웃음) 그리고 이제 그건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술에 기대고 의지하는지요. 별 생각이 없어지고 좀 멍해지더라고요. 걱정도, 고통도 사라지고 무뎌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맛에 술을 마시나 봐요.
요즘 누구에게 기대고 의지해요? 하이어 뮤직의 형들?
맞아요. 형들이 지금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작업도 함께 하고, 행사도 다니면 되게 든든해요. 내 형들이고, 내 사람들이고 그런 마음이 막 들거든요. 무적이 된 것처럼 절대 망하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이요. 제가 이렇게 강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형이 그렇게 좋아요?
재범이 형과 식케이 형은 지금 저에게는 어떤 기준이라고 할 수 있어요. pH-1형도 좋아해요. <Halo> 앨범 들어보셨어요? 와 진짜 경외심이 들어요. 진짜 잘해요. 휴.
이 한숨은 뭐죠?
몰라요. 그렇게 잘하는 사람 보면 좀 그래요.
누가 김하온의 인터뷰를 나보다 잘 썼을 때의 기분 같은 건가? 참 잘한다, 인정하지만 뭔지 모를 경쟁과 짜증과 질투와 반성이 동시에 밀려오는?
으, 제가 원래 진짜 안 그런 애였거든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우직하게 내 스탠스를 잘 유지하던 애였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가 사라졌어요. 지금은 잘하는 사람 보면 딱 말씀하신 그 감정이 다 들어요.
여전히 스탠리 큐브릭 좋아해요? 스무 살이 되면 그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꼭 보겠다고 했잖아요.
당연하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인걸요. 하하하. 봤지, 봤지. 봤어요! 진짜 미친 거 같아요.(웃음) 뭐랄까, 특유의 이상한 게 있잖아요. 캐릭터, 스토리, 미장센 전부요. 물론 영화가 그리는 폭력이나 도덕성에 관한 건 말 그대로 역겨운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큐브릭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대요.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이 치를 떨며 도망칠 정도로. 하온은 어때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뭐든지 흐르는 대로 놔두는 편이죠. 함께 일하는 누군가 실수를 해도 그러려니 해요. 그냥 그게 운명이었나 보다. 넘어가는 편이거든요. 저는 완벽주의자는 될 수 없을 거예요. 일단 게으른 편이라서요.(웃음)
김하온 하면 또 명상인데 오늘 명상의 ‘ㅁ’도 안 꺼냈어요. 이제 명상은 그만뒀어요?
솔직히요. 아직 하긴 해요. 근데 확실히 전처럼 열심히 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내년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땐 정말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제가 어떻게 변할지 저도 몰라요.
오늘 인터뷰를 영화로 치고 ‘스무 살 여름의 하온이 어디까지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한 줄 평 어때요?
그럼 저는 <풀 메탈 재킷> 과 <샤이닝> 이라고 말할래요. 큐브릭의 영화 중 가장 혼란스럽잖아요. 지금의 저처럼요. 물론 둘 중 하나만 고를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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