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수상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애인의 이중생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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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대박 사건 하나 있었잖아. 가끔 만나서 잠자리를 하던 친구가 내 여자친구에게 우리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거야. 등골이 서늘하더라고. 퇴근하자마자 달려가서 어르고 달래고 왔지 뭐야. 당분간 몸조심 해야겠어.” “형, 그건 일도 아니에요. 삼자대면해보셨어요? 진짜 난리 나요. 양다리 걸치다가 현장에서 걸렸을 때. 정말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어요. 저는 그날 맞은 뺨이 지금도 얼얼해요.” 대학교 동기 두 명이 바람피우다가 걸린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놨다. 공덕에서 ‘천하제일병신대회’가 열렸나. 목소리 톤만 들으면 어디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따고 금의환향한 것처럼 우쭐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가서 <방구석 1열>을 보는 게 더 유익하겠다 싶어 계산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혹 이렇게 양다리를 걸친 게 대단한 경험인 양 떠드는 이들이 많다. 그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 현장에서 딱 걸렸다는 그 친구는 그렇게 따귀를 후려 맞고도 “그래도 둘 다 사랑했어”라며 희대의 개소리를 내뱉었다. 왜 나는 그때 따귀를 한 대 더 때리지 못했나.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남녀의 30%가 연인의 바람으로 이별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연애를 하다 보면 가끔 수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신기하리만큼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이래서 촉이 무섭다. 대놓고 ‘바람이냐’고 물어보기는 힘들고 의심하는 분위기라도 풍기면 ‘나 못 믿어?’라며 정색한다. 그래서 현장을 덮치거나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비등비등하다. 증거를 찾으려는 자와 목숨 걸고 숨기려는 자. 그래서 바람둥이는 멘사 회원보다 똑똑하고 신창원보다 주도면밀한 이들이 많다. 바람피워본 사람, 그리고 바람맞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한 가지로 귀결된다.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한다’. 그럼 십중팔구 바람이다. 이를테면 새벽까지 게임하던 사람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일찍 잔다고 한다든가. 통화 내역을 싹 지우거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이 바뀌거나, 갑자기 회사가 바빠지고 모임이 많아지거나, 휴대폰을 가보처럼 소중히 다뤄 늘 뒤집어두거나 주머니에 넣어두고 운전할 때는 운전석 왼쪽에 둔다든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데 안 받거나, 답답하니 구속하지 말라고 성을 내거나, 갑자기 미래에 대한 슬픈 분위기를 잡는다거나, 지나치게 잘해주거나, 혹은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화를 내는 등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몇 개월 부대끼고 만나다 보면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수상한 낌새는 르라보 향수보다 은은하게 퍼지게 마련이다. 설문조사 인원 중 90%가 넘는 사람이 ‘바람은 습관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롤러코스터 노래에도 나온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고. 바람피우다 걸린 이들의 항변은 하나같이 병신 같다. ‘외로워서 그랬다’, ‘너를 만나면서도 공허한 감정이 들었다’,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등.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임성한 작가도 손사래를 칠 막장 대사들을 쏟아낸다. 평균 10.9%의 사람이 바람피운 연인을 용서하고 다시 만난다고 한다. 주변에 바람피우는 남자친구를 세 번이나 용서하고 계속 만나고 있는 보살 같은 동생이 있다. 심지어 그놈은 그녀의 절친이랑도 잠자리를 가졌는데 그것까지 용서했다. “다시는 안 그런다고 했으니 믿어야지. 바람을 피운 게 내 탓인 것 같은 생각도 들어.” 내 딸이었으면 보따리를 싸 들고 쫓아다니며 말렸을 거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SNS로 DM을 보내고 술 한 잔 걸치고는 “자니?”라며 여성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고. 부모님 어깨는 한 번도 주무른 적이 없으면서 안마방을 그리 좋아한다는 소문이 돈다. 장미칼로 음경을 난도질해야 그 짓을 좀 멈추려나. 박명수 말이 맞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밖에서 새는 바가지 안에서도 새고, 깨진 그릇은 다시 붙여도 티가 나는 법이다. ‘바람피우다 걸리면 뚝배기를 깨도 무죄’. 청와대 국민청원이라도 넣어야 바람이 잦아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