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앤 해서웨이. 그녀만큼 팬과 안티팬을 두루 거느리고 있는 유명인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비춰지는 명과 암을 온몸으로 맞으며 담담히 자신의 인생과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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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슈트는 베르사체 (Versace). 귀고리는 아넬리스 미켈슨(Annelise Mich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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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저, 팬츠는 에카우스 라타(Eckhaus Latta). 후드 티는 아이비파크(Ivy Park). 벨트로 맨 스카프는 록킨스(Rockins). 귀고리와 반지는 캐슬린 휘테이커(Kathleen Whitaker). 진주 귀고리는 사라 & 세바스티앙(Sarah & Sebastian). 금색 반지는 아이 엠 바이 일리아나 마크리. 팔찌는 앤 해서웨이의 것.

뉴욕에는 카페 룩셈부르크만 한 곳이 없다. 오래된 정겨운 의자가 있고 환한 낮에 실컷 와인을 마셔도 되는 이곳의 가게 주인에게 앤 해서웨이를 만날 거라 얘기하면 “오, 그녀는 백만 번도 더 왔어요”라 말할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급스럽지만 자유롭고, 레프트 뱅크와 어퍼 웨스트 사이드가 만난 듯한 느낌이다. 마침내 앤이 들어설 때에도 별달리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아무도 고개를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의 단골 손님들은 오스카 수상자들을 수도 없이 봤을 거다.

앤 해서웨이를 싫어한다는 뜻의 신조어 ‘#HathaHate’가 생겨난 지 5년이 흘렀다. 2013년 <레미제라블>의 판틴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너무 과장되게 털털한 척, 올바른 척한다’는 안티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35세의 배우는 간단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코트 드 프로방스와 오가닉 로제 와인의 장점에 대해 얘기를 나눈 직후 그녀는 말했다. “정직한 삶을 사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왜 그것이 절 지루한 사람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이랬다. “필요한 부분만 말하거나 아예 더 심술 맞게 구는 걸 택했더라면 훨씬 쉬웠을 거예요. 그게 어떤 효력을 지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전 순진한 바보가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더 못되게 군다면 사람들은 ‘오, 그녀는 재밌어, 와서 한잔해요!’라 말할지도 몰라요. 그럼 뒷얘길 나누면서 오해를 풀 수도 있을 거고요.”

앤 해서웨이는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 어머니는 여배우였다. 6살 때 뉴저지 밀번으로 이사를 했다. 오빠와 남동생이 있고 한 명은 게이인데, 한때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개종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떤 종교에 속해 있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하자는 것이 가족의 모토다. “그건 10대 시절부터 시작되었어요. 아버지는 ‘3가지 약속을 지켜라. 23살 때까지 문신을 하지 말 것. 오토바이를 타지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 것!’이라 말씀하셨죠.” 그녀는 28살 때 왼쪽 손목 안쪽에 작은 필기체 M자 문신을 새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을 다니다가 자유전공이 가능한 뉴욕대로 옮겼지만 졸업하진 못했다. 대신에 유명해졌다. 폭스사의 TV 시리즈 <겟 리얼>을 시작으로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비평가의 호평을 얻은 <브로크백 마운틴>, 상업적으로 성공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흔히 말하는 ‘A 리스트’ 배우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여러 구설수와 사건 사고가 있었다. 오스카의 역풍 외에도, 4년 6개월간 사귄 이탈리아 사업가 남자친구가 6백만 달러의 투자 음모와 사기죄로 체포되었다. 이후 앤 해서웨이는 2012년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프로듀서인 애덤 셜먼과 결혼했고 4년 후에 아들 조니가 태어났다. 엄마가 된다는 건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이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을 조니도 고스란히 느껴요. 그래서인지 불안해지면 그걸 보여주지 않으려 조심하죠. 그동안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고 필사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 덕분에 더 많은 사랑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어요. 나 자신에 대한 사랑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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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라코스테(Lacoste). 스카프는 록킨스. 귀고리는 셀린느.

어떤 이슈가 있든 앤 해서웨이는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35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20대에는 의도적으로 많은 감독과 다양한 역할을 맡으려 노력했어요. 더 나은 여배우가 되고 싶어서였죠.” 그녀가 말한다. “목표가 있으면 사람들이 ‘마침내 해냈어!’라는 말을 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 해요.” 물론 일이 늘 잘 풀리는 건 아니었다. “20여 년간 일을 하면서 정말이지 나쁜 경험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성별을 떠나 좋은 경험도 많았죠.” 그녀가 좋지 않은 경험들을 말하는 걸 주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몇 달간 수많은 끔찍한 스토리들이 공유되었어요. 저 역시 촬영장에서 불미스러운 경험을 했고, 일부는 성적인 본성에 관한 거죠.일부는 초창기에, 일부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었다.

앤은 긍정적인 경험과 우리가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더 행복해 보였다.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예술을 만드는 데 협업의 중요성을 아는 <세레니티>의 감독 스티븐 나이트도 그런 사람이다. 매튜 맥커너히와 제이슨 클락도. 그녀는 이렇게 좋은 경험이 미국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연대단체 ‘타임즈업(Time’s Up)’ 활동의 좋은 바탕이 되었다고 말한다. 촬영장의 해로운 관계,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경험이 타임즈업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여배우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일상을 겪으면서 세상의 성적 불균형을 아는 모든 시스젠더들과 관련된 것이죠. 변화 운동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포함해, 누군가에겐 제가 상상하거나 겪은 세상보다 훨씬 더 최악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그들을 돕고 싶어요.”

할리우드의 뿌리 깊은 성차별과 성폭력은 그녀를 고민에 빠뜨렸다. “권력을 남용하는 일부 남자들의 왜곡된 행태가 마치 메아리처럼 퍼져갔어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에요. 제가 부딪히는 한 가지는 나 역시 편견을 갖고 이 분야의 일원이 되길 열망했다는 것이죠. 그 안이 어떤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요. 하지만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불편해져야 해요. 우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 해요.” 제작에도 관여하길 시작하면서 그녀는 다른 종류의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기획 중인 작품이 제대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진실의 여러 가지 버전에 관한 거예요. 누군가에 의해 상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도덕성이 판단되는 것에 관한 거죠. 그건 언제든지 여러분이 될 수도 있고요.”

최근 그녀는 <오션스 8>에 출연했다.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리한나 등이 벌이는 다이아몬드 범죄단에 휘말리는 여배우 다프네 클루거 역할이었다. “팀에 합류했을 때 굉장히 흥분되었어요. 어디에도 없을, 엄청난 제안이었거든요. 그녀들 앞에서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를 마음속으로 되뇌었어요.” 가끔씩 그녀는 비평가와 안티들을 의식하듯 말을 멈췄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관찰당한 사람들이 느끼는 자기분석과 반작용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최근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워크아웃 영상의 캡션을 떠올렸다. “새 역할을 위해 최근 몸무게를 늘리고 있어요. 잘 진행되고 있죠.” 새로운 사이클에 적응하기 위한 그녀만의 컨트롤 방식이다. “임신 루머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새로운 코미디 영화 <더 허슬>에 함께 출연한 배우 레벨 윌슨은 앤 해서웨이가 보이지 않는 장벽과 싸우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레벨 윌슨은 말했다. “앤 해서웨이는 농담을 잘해요. 저는 그녀의 농담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그걸 트위터에 쓰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하죠. 사람들은 그녀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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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리바이스 리미티드(Levi’s Limited). 드레스는 발렌티노(Valentino). 귀고리는 셀린느. 반지는 아이 엠 바이 일리아나 마크리. 양말은 볼콤(Volcom). 신발은 아쉬(Ash).

오후를 함께 보낸 앤 해서웨이의 모습은 이렇다. 한낮에 마시는 로제 와인을 좋아하고 굴 요리를 좋아한다. 긴장하면 목에 두드러기가 돋고 라이언 고슬링,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레베카 솔닛 등의 이름을 떠올리면 편안해진다. ‘일할 준비’를 할 때는 재밌는 사진들을 찾아놓는다. “제 인생에 낯선 사람들은 없어요. 사람들은 종종 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다이빙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말이죠.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곧바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죠.”

“‘30일 중 29일은 기분 좋게, 하지만 하루는 화를 낼 완벽한 자유를 주자!’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감정을 솔직하게 다룰 수 있다면 이 하루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노는 결코 평화로운 곳으로 이끌지 않아요. 제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평화예요.” 하지만 평화는 성공과 마찬가지로, 목적지가 아닌 여행에 가깝다. “케이트 블란쳇이 ‘내가 도착했다는 걸 느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도착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도 언제나 같은 걸 느끼고 있어요. 산꼭대기에 다다르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요. 산꼭대기에 산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더 허슬>의 한 장면을 모니터할 때였다. “크리스 에디슨 감독이 제가 움찔하는 걸 보더니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단지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서요’라고 말했어요. 제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은 이제 익숙해요. 길 끝에서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는 순간이죠. 그렇다고 해서 좋은 배우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언제나 고민하는 거예요. 지금이나 오늘 이 순간을 빠져나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말이에요. 그러곤 장면이 되살아나죠!”

결국 이런 자아성찰과 자기객관화가 그녀를 더 나아지게 만들었다. 더 나은 엄마, 더 나은 배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 “앤은 지독하게 자기를 객관화해요.” <오션스8>의 감독 게리 로스가 말한다. “앤과 작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녀의 용기예요. 캐릭터에 헌신하고 허세도 부리면서 자기보호가 없어요. 뛰어난 연기는 결코 소심한 연기가 아니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죠.”

카페를 나와 두 블럭 떨어진 업타운의 아파트로 향했다. LA에 머물지 않을 때 그녀가 가족과 함께 사는 곳이다. 헤어지기 전, 명성과 모순과 아우성 그리고 자기반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린 포옹을 했다. 잠시 동안 절친이 된 듯한, 전혀 소극적이지 않은 따뜻한 포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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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없는 재킷, 드레스, 신발은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팬츠는 쥬시 바이 쥬시 꾸뛰르 (Juicy by Juicy Couture). 귀고리는 벤 아문 바이 아이삭 마네비츠(Ben-Amun by Issac Manevitz). 반지는 오렐리 비더만(Aurelie Bider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