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일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되고 싶은가? 치앙마이는 영육의 소립자까지 피곤한 이들에게 평온한 휴식을 선사하는 파라다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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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리트리트의 메카다. 교외의 명상 사원에서 ‘마인드풀니스’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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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커가 모이는 동네, 밍므앙의 어느 카페에서 발견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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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대학교 카페. 로컬들의 아지트다.

오래 머물 휴가지를 찾다가 어떤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 잎과 색색의 꽃이 가득한 정원, 반얀나무 그늘 아래 매트 한 장 깔아놓고 요가를 하는 사람들. 도시 여성에게 그보다 더 달콤한 판타지가 있을까? 치앙마이행 항공권을 끊고 일주일 후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 다음 날부터 거짓말 같은 일이, 그러니까 늘 부러워했지만 내 것으론 만들 수 없을 줄 알았던 일상이 생겼다. 수영장과 요가원 가기, 건강하고 예쁜 먹거리 즐기기. 주말엔 시장을 보고 현지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한 달쯤 그런 날을 보내고 오니, 인생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과 놓쳤던 것이 조금씩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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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족이 재배하는 커피는 치앙마이 카페 투어를 더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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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들으며 요가를 할 수 있는 사트바 요가원.

요가의 천국

요가 수행자에게 치앙마이는 떠오르는 별이다. 치앙마이는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한, 빈야사 요가와 하타 요가가 어떻게 다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요가를 운동과 취미로 경험하는 이들이 부담 없이 넘을 수 있는 문턱이다(물론 상급자를 위한 전문적인 코스도 갖췄다). 발리와 치앙마이를 오가며 요가와 명상 수업을 진행하는 조윤지 요가 마스터는 “따뜻한 날씨의 공이 가장 크죠.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햇빛과 기온이 우리 몸을 요가 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주거든요. 요가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많이 살면서 실력 있는 요가 마스터들이 연 요가원도 많고요. 태국인 요가 선생님들의 실력도 꽤 좋은 편이라 다양한 요가, 명상 수업을 접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치앙마이는 나에게 집중하고, 내 자신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에요.”

시내 안에는 구글에 등록된 요가원만 스무 곳 남짓이다. 강남구만 한 면적, 인구 17만의 작은 도시에선 적지 않은 숫자다. 대부분의 요가원은 길거나 짧게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다. 1회, 5회, 10회 등 횟수 단위로 분류된 수강권은 체험 삼아 요가를 한 번 해보고 싶은 사람, 요가원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공간, 분위기, 커리큘럼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요긴하다. 가장 매력적인 건 200~300바트(한화 약 6천7백원~1만원) 정도의 저렴한 수강료다. 디지털 노매드의 도시답게 대부분의 요가원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요가 트리(Yoga Tree)’는 초심자가 접근하기 좋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동네 님만해민(Nimman Haemin), 올드타운에서 가깝다. 울창한 나무, 열대의 꽃과 풀이 가득한 정원은 ‘이런 곳에서 꼭 한번 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들의 환상을 충족시킨다. 적당히 낡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나무 바닥, 큰 창으로 한껏 들어오는 오후 나절의 선선한 빛, 나보다 훨씬 더 굳은 몸을 가진 (적어도 꼴찌는 면하게 해주는) 기골장대한 북유럽 언니들…. 문어처럼 멋대로 사지를 놀려도 “뷰리풀~”을 연발하는 사려 깊은 요가 마스터. 덕분에 첫 수업부터 잔뜩 굳은 어깨와 긴장감으로 날 선 신경이 기분 좋게 몸을 적신 땀과 함께 스르륵 풀렸다.

따뜻한 볕으로 데워진 바깥에서 요가를 하고 싶다면 사트바 요가(Satva Yoga)도 괜찮은 선택지다. 요즘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빠진 우리나라 디지털 노매드들이 몰리는 동네, 산티탐에 위치해 있다. 근육과 뼈 속 깊숙이 잠재한 긴장을 풀고, 몸의 직접적인 치료에 좋은 ‘아헹가 요가’, 플라잉 요가로 알려진 ‘에어리얼 요가’를 전문으로 한다. 북적이는 것보다는 소수와 조용히 수련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이 친절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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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로컬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채식 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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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밍므앙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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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싱싱한 열매를 게워내는 나무들.

몸이 좋아하는 맛

치앙마이에서 먹을 것을 살 때마다 쾌재를 불렀다. 라임 몇 알, 유기농 타이 바질 한 줌, 유기농 방울토마토 한 봉지, 마늘 한 주먹, 닭가슴살 두 덩어리, 고수, 셀러리, 버터 콘 헤드 양상추 같은 식재료가 몇백원, 혹은 몇천원을 넘긴 적이 거의 없다. ‘사 먹는 게 낫다’는 말이흘러나오는 서울과 달리, 산과 논과 들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싱싱하고 건강한 식재료는 치앙마이를 타이 안에서도 손꼽히는 미식 도시로 만든 비결이다.

치앙마이는 채식자의 파라다이스다. 동물권리보호단체 PETA는 이 도시를 타이베이,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3대 비건 친화 도시’로 꼽았다. 불교 나라에서 신심이 가장 깊은 사람들이 모인 도시답게(치앙마이엔 세계적인 불교 성지, 도이수텝을 비롯해 수백여 개의 불교 사원이 있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까닭. 태국 왕실이 고산족의 아편 생산과 그로 인한 마약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로열 힐 트라이브 프로젝트(Royal Hill Tribe Project)’는 치앙마이를 유기농 과일과 채소가 넘쳐나는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물론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요가에 살짝 발을 담그며, 노화와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엔 채식으로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맛도 뛰어나다.

북부식 채식 요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승려들이 즐겨 먹는 걸 찾으면 된다. 치앙마이 어느 시장에 가도 찹쌀가루 반죽에 땅콩, 참깨, 콩을 섞어 만든 소를 채워 넣고 바나나 잎에 찐 ‘카놈촉(Khanom Chok)’, 소금물에 불린 찹쌀을 죽통에 채워 굽는 찹쌀밥 ‘카오람(Khao Lam)’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내 곳곳에 즐비한 채식 레스토랑에선 팟타이, 카오팟, 쏨땀 같은 대중적인 타이 요리를 채소로 만들어 저렴하게 낸다.

란나푸드(Lanna Food)도 놓치지 말 것. 태국 북부 전통 요리다. 재료와 조리법이 고유해서 타이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산에서 자란 야성적인 식재료, 맵고 강한 풍미의 소스를 사용해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한국의 ‘된장 밥상’ 같은 몇 첩 반상 요리, ‘칸톡’을 내는 식당을 찾으면 북부 음식의 정수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타마린, 땅콩, 생강 커리 페이스트, 돼지 뱃살에 버무려 뭉근하게 끓여낸 깽항레이(Kaeng Hang Lay), 풋내 나는 고추와 마늘, 샬롯, 고수, 라임즙 등을 넣고 갈아 만든 남쁘릭눔(Nam Prik Num)에 치앙마이산 채소와 찰밥을 곁들이면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으로도 거뜬하다. 면 성애자라면 달걀, 쌀가루로 빚은 면과 튀긴 달걀 면을 얹어 내는 란나식 커리 국수 ‘카오쏘이(KhaoSoi)’가 소울푸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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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디자이너 부부가 만든 디자인 숍, 페이퍼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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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디자이너 부부가 만든 디자인 숍, 페이퍼스푼

로컬 아지트 속으로

치앙마이에 제법 익숙해지고 구글맵을 켜지 않아도 웬만한 동네를 척척 찾을 수 있게 됐을 때쯤, 슬슬 이 도시의 로컬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노는지 궁금해졌다. 숍과 레스토랑, 카페, 클럽 등이 몰려 있는 님만해민은 원래부터 치앙마이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지만 올해 4월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원 님만(One Nimman)’ 덕에 유동인구 밀도가 더 높아졌다. 타이에서 손꼽히는 슈퍼 리치, 이치탄 그룹 탄 파사콘나티 회장의 야심작으로 쇼핑, 예술, 문화, 미식 등 먹고 놀고 즐기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공간을 구경하다 보면 타이의 감각 좋은 로컬 디자이너들의 독립 라이프스타일 숍, 지금 치앙마이에서 가장 ‘핫’한 카페와 디저트 브랜드, 유기농 마켓, 갤러리 등의 요긴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브리핑할 수 있다. 주관적인 블로그, 고리타분한 가이드북보다 더 생생한 치앙마이 ‘맛집’ 정보가 궁금하다면 이 도시의 인기 식당들을 모아 구성한 원 님만 푸드코트를 찾을 것. 주머니가 가난하다면 원 님만의 광장에 주목하자. 매주 특정 요일마다 요가, 스윙 댄스, 살사 댄스 클래스가 ‘무료’로 열린다. 이 수업들은 이름뿐인 허술한 모임이 아니라, 로컬과 여행자들이 앞다퉈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진화하고 있다.

반 깡왓(Baan Kang Wat)은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예술 마을이다. 치앙마이를 여행한 적 있는 이라면 한번쯤 들렀거나, 적어도 들어본 적은 있는 명소다. 현대적인 감각을 입은 타이 전통 공예 상점, 예술가의의 작업실, 고산지 커피와 차를 파는 카페, 타이식 웨스턴 레스토랑 등이 사이 좋은 이웃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반 깡왓의 또 다른 매력은 이 공간이 들어서면 서 활기를 띠는 주변 동네를 산보할 수 있다는 점. 타이의 화가, 디자이너 부부가 소꿉장난하듯 만든 ‘페이퍼 스푼(Paper Spoon)’은 셀렉션이 돋보이는 디자인 상점과 수제 잼, 스콘, 파이 외에 간단한 식사를 파는 카페가 들어서 있다. 젊은 건축가들이 꾸민 독특한 건축물 안에 스튜디오, 작업실, 콘셉트 숍이 들어선 ‘펭귄 빌리지(Pengguin Village)’, 치앙마이 대학교 교수이자 예술가 수파차이 사트사라가 전 세계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만든 람쁭 아트 스페이스(Rumpueng Art Space)까지, 모든 크고 작은 ‘예술 마을’이 몇백 보 안에 모여 있다. 치앙마이가 왜 ‘예술가의 도시’인지 애쓰지 않아도 숨쉬듯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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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만든 아트 빌리지, 반 깡왓.

요가 트리
현지인보다는 외국인 수련생 비율이 더 높다. 오전과 오후에만 수업을 여는 대부분의 요가원과 달리 하루 3~6개의 클래스가 열려 선택폭이 넓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하타, 빈야사 요가 외에도 이너 댄스, 댄스 만달라와 같은 ‘춤’ 수행,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 등을 접할 수 있다. theyogatree.org

사트바 요가
사트바 요가원엔 30년 경력의 요가 마스터가 직접 제작한 도구가 가득하다. 아사나가 서투른 이들, 굳은 근육을 풀고, 비틀어진 몸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의 회복을 돕는 도우미. 에어리얼 요가, 아헹가 요가 외에도 프라이빗한 클래스를 진행한다. 홈페이지에서 매달의 커리큘럼과 스케줄을 확인하고 찾을 것. www.yogachiangmaithailand.com

임 아임 베지테리언 앤드 바이크 카페
현지인들, 장기 체류자들이 즐겨 찾는 채식 식당이다. 관광객들이 발견하기엔 다소 외진 곳에 위치했다. 70~100바트(한화 약 3천원~4천원)의 메뉴가 대부분. 아보카도 피타 샌드위치, 참깨와 바나나, 코코넛을 갈아 만든 스무디 등이 인기. 게스트 하우스와 함께 운영한다.

러스틱 앤 블루
치앙마이 토박이 로컬은 거의 없다. 현지 물가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음식을 선보이지만, 채식으로 근사한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면 찾을 만하다. 홀 안쪽 숨은 정원에 앉아 치앙마이식 웨스턴의 세련된 문화를 만끽해볼 것.

원 님만
치앙마이의 명실상부한 뉴 랜드마크. 파머스 마켓, 푸드 트럭 등 ‘팝-업’으로 들어섰다 사라지는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스파, 기념품 쇼핑 등 관광객이 원하는 인프라를 모두 갖췄다. 지금 치앙마이에서 가장 ‘핫’한 그래프 카페 2호점에서 독창적인 칵테일 커피는 꼭 마셔볼 것. www.onenimman.com

반 깡왓
치앙마이 색 짙은 공예품이나 친구나 연인, 가족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사고 싶다면 반 깡왓으로. 태국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운영하는 이너프 포 라이프는 서울의 힙스터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게스트 하우스, 고산족에게 직접 주문해 만든 공예품점이 함께 있다. www.facebook.com/baan-kang-w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