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주는 쇼핑에도 이유는 있다

잘 빠진 하얀색 티셔츠 한 장의 위력. 철저한 자기만족 쇼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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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티셔츠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하얀색 티셔츠 한 장 입고 거리를 거닐기 좋은 계절이 온다. 에디터는 조금만 기온이 오른다 싶으면 티셔츠를 하나 둘 구입한다. 그것도 하얀색으로. 여름을 준비하는 의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유니클로 남성용 라운드 티셔츠의 스몰 사이즈와 미디엄 사이즈를 하나씩 사거나(사이즈마다 매치하는 용도가 다르다) 헤인즈나 지오다노의 ‘3개 묶음’ 티셔츠를 구입하는 건 어느새 여름을 맞이하는 루틴처럼 되어버렸다.

에디터도 매일 아침 뭘 입을지 고민하는 건 마찬가지. 전쟁 같은 출근 준비 속에서 시간을 절약해주는 데에 하얀색 티셔츠만 한 게 없다. 데님이나 스커트, 심지어 그 어떤 현란하고 복잡한 프린트 아이템을 매치해도 무리가 없다. 그만큼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나와도 ‘평타!’는 치는 아이템이라는 얘기.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꼭 저렴한 아이템만 돌려(?) 입는 건 아니다. 간혹 기십만원이 훌쩍 넘는 하얀색 무지 티셔츠를 사기도 하는데, 이 쇼핑에도 나름 이유는 있다. 패션 에디터로서 본능적 허세랄까. 나는 체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하얀색 티셔츠에도 여지없이 담긴다. ‘비싼 건 역시 달라!’라며 스스로 하이퀄리티 감촉을 찬양하고, 왼쪽 가슴팍에 보일 듯 말 듯한 로고에 목숨을 거는가 하면, 옆선에 들어간 절개는 전위적인 디자인을 표방한다고 믿는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5천원짜리를 입었는지, 17만원짜리를 입었는지. 하지만 진짜 멋은 한 끗 차이라는 것과 17만원이라는 금액에는 그만큼 디자인 가치와 철학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가격이 모든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취향과 소비 성향은 강요할 수 없는 거니까.

이토록 타당성 있는 소비에 걸맞은 하얀색 티셔츠 스타일링은 과연 특별할까? 대답 먼저 하자면 멋 내지 말고 심심하게 입을 것. 너무 타이트한 것 말고, 로고는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겠다. 여기에 넉넉한 청바지나 A라인 데님 스커트, 굽이 낮은 베이지색 투박한 샌들을 매치하자. 지금 생각하고 있는 가장 편하고 가벼운 룩. 그게 가장 좋다. 올해도 자발적 자기만족의 시간이 왔다.

    에디터
    이하얀
    포토그래퍼
    Kim Myung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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