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또 무엇이 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원 또는 정제원. 이 두 이름을 오가는 한 남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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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은 캘빈 클라인 205W39NYC 바이 분더샵 (Calvin Klein 205W39NYC by Boon the Shop).

한 컷, 한 컷마다 원의 얼굴은 그대로 도화지가 되었다. 마르살라 컬러의 블러셔, 눈두덩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금빛, 이탈리아 소년의 주근깨와 반짝이는 입술. 여느 남자라면 어색함에 이 말 저 말을 쏟아냈을 테지만 원은 마스카라를 바른 마지막 컷을 찍을 때가 되어서야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눈이 무거워요.”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만 보며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에 빠져 있던 날들을 지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힙합 뮤지션 원이 되었고, 또한 정제원이라는 이름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확실한 건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야망뿐.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또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촬영이 새벽 2시가 넘어 끝난 후에도 곡 작업이 남았다면서 다시 혼자만의 작업실로 향했다.

최근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어요. 배우와 예능인 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심경의 변화가 많았어요. 굳이 제가 ‘래퍼 애티튜드’를 가졌던 건 아닌데, 작년에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힘들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제 실제 모습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음악도 많이 갖고 있었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방송이나 연기보다 음악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다른 방송 활동을 안 했었죠. 하지만 음악을 내려면 내가 노출이 많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전략적인 선택이네요?
그렇죠.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제 음악을 들어주시진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연기는 좀 달라요. 어릴 때 꿈이 영화감독이었거든요. 열일곱 살의 나이에 감독이 하고 싶어서 학교를 그만뒀었는데, 그때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부에 지원도 하고 단역으로 연기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학교를 그만둔 것은 즉흥적인 선택이었나요?
즉흥적인 건 아니었어요. 그만두고선 1년 동안 하루에 영화를 네 편씩 봤어요. 짐 자무쉬 영화를 좋아했고, 아무도 안 보는 영화도 찾아보았죠. 지나고 보니 그 1년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음원을 발표했잖아요? 그럼에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나요?
제가 쉬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다른 쪽에 에너지를 쏟고 싶어서 회사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해서 <문집>을 하게 된 거군요. 좋은 작품이었어요.
오디션을 봤지만 제가 될 줄 몰랐어요. 감독님도 제가 가수인 줄 모르셨어요. 다행히 좋게 봐주셔서 캐스팅이 됐어요. 그동안 웹 드라마 같은 작품이 들어왔었지만 <문집>이라는 작품은 감독님도 작품도 너무 좋았어요. 저를 제외하곤 모두가 베테랑이었어요. 같이 연기한 신은수라는 친구를 몰랐었는데 영화 <가려진 시간>을 보고 완전히 팬이 되었어요.

<문집>을 하면서 떠올린 영화도 있어요?
한국 작품 중에서는 <그해 여름>과 <도마뱀>을 봤어요. 해외 작품 중에서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문집>도 어느 정도 아픔이 있는 캐릭터니까. 또 오래전에 본 <허공의 질주>도 다시 보고 싶어서 봤어요.

또 <화유기>에서는 의외의 사연이 있는 방물장수 손자 역으로 등장했잖아요.
제가 우마왕(차승원)의 아들인지 전혀 몰랐어요.(웃음) 원래 6화까지만 나오는 작은 역할이었는데, 대선배님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 배우자는 마인드로 했어요. 제 연기가 되게 어색했는데 갈수록 좀 나아져요. <화유기>를 하면서 배우분들과 한 번씩은 다 촬영했거든요. 각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서 그 점이 저는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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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폴 하덴 슈메이커 바이 10꼬르소 꼬모(Paul Harnden Shoemaker by 10 Corso C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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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은 어떤 가사를 쓰고 있어요?
연기 활동 전까지는 저보다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요즘은 저를 위로하는 가사를 많이 쓰고,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있어요. 사실, 나오지 못할 노래들을 만들고 있어요. 어차피 제가 선택한 시스템 안에 있는 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업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면요? 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요?
원래는 코드 찍는 것부터 혼자 작업하는데, 혼자 작업하다 보니 너무 가라앉는 것 같아서 최근에는 프로듀서와 함께 하는 걸 시도해보고 있어요. 회사에서는 곡을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하는데, 저도 욕심이 있어서 그건 내키지 않더라고요. 전에 만들었던 곡들까지 생각을 많이 열어놓고 있어요. 어떤 창구를 통해서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제가 듣고 싶은 노래,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노래.

음악은 당신에게 여전히 중요한가요?
정말 중요해요. 음악이 중요해서 연기를 시작한 거니까. 연기나 예능을 하다 보면 음악이 다시 재미있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두 가지 다 너무 좋아요. 이 두 가지를 잘 가져가고 싶어요. 요즘은 독립 영화도 알아보고 있어요.

무대와 연기, 예능은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무대는 일단 그냥 즐기는 것 같아요. 연기는 할 땐 정말 힘들거든요. 하지만 끝난 후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너무 짜릿해요. 이 일을 오래 진지하게 더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예능으로는 최대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제 모습도 좋아해주신다면 예능도 계속 하고 싶어요.

뮤지션으로 활동할 때에는 무엇을 하든 잘생겼다는 찬사가 따라다녔잖아요. 어떤 마음인가요?
잘생겼단 말은 추상적인 표현이잖아요. 음악을 할 때엔 나의 성격과 생김새를 음악에 녹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오히려 연기할 때 자연스럽게 저를 녹여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가까운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부르나요? 스태프들은 ‘원이’라고 많이 부르던데요.
원이는 제 초등학생 때 별명이에요. 제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제원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해요. ‘제원’이라고 불러주면 인간 ‘정제원’처럼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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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팬츠,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물다섯이죠. 인생에서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되게 컸어요. 목표가 너무 컸고, 그러다 보니 조그마한 목표를 이룰 때 그만큼의 행복감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만약 열일곱 살의 저를 만난다면 ‘꿈을 크게 가져라’란 말은 잘못됐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꿈이 크면 행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어요. 오히려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내는 행복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줄래요.

오늘은 ‘뷰티’를 주제로 촬영했어요. 비주얼 작업에도 흥미가 있나요?
디자이너 톰 포드가 만드는 영화를 보면 영화가 무척 스타일리시하잖아요. 미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되게 커요. 인테리어부터 미술, 옷, 헤어스타일 등. 저도 편한 게 좋고 평소에는 나이키 트레이닝복을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생 로랑의 모델이 어떤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지 찾아볼 만큼의 관심이 있어요.

욕심이 많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는데,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어요?
예를 들면 서른 살에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는 꿈도 있죠. 소피아 코폴라나 웨스 앤더슨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해요. 장 미셸 바스키아처럼 자신만의 멋을 가진 사람들이 멋있어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집에 있는 것과 외출하는 것 중에서는 무엇을 좋아해요?
저는 완전히 ‘집돌이’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요. 어디 여행 가도 호텔에 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집에 있는 것 중 가장 대범하게 투자해서 마련한 것은 무엇이에요?
얼마 전에 1백50만원 주고 오렌지색 의자를 하나 샀어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다른 오렌지색 의자를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또 LP 전시하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보려고 거실에 빔 프로젝트를 설치했어요. 그게 최근 저의 가장 큰 힐링 아이템이 아닐까 해요.

올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요. 쉬고 싶지 않아요. 배우로, 가수로 작게라도 자리를 잡고 싶어요. 그리고 조그마한 목표에 성취감을 느끼고 제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얼마 전에는 팔에 ‘Today’라는 타투를 했어요.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뜻으로요. 너무나 쉬운 말이지만 그렇게 살기 어렵잖아요. 평생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요즘은 저를 위로하는 가사를 많이 쓰고,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있어요. 생각을 많이 열어 놓고 있어요. 어떤 창구를 통해서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제가 듣고 싶은 노래,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노래.